담배의 해악을 증명한 과학적 근거
"폐암에 걸릴 확률 26배 상승, 그래도 피우시겠습니까?" 요즘 담뱃갑에는 무시무시한 사진과 함께 이런 문구가 씌여있지요. 담배가 몸에 해로운 줄 모르면서 피우는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담배 피우면 몸에 해롭다는 건 언제 어떻게 알게 됐을까요? 1차세계대전 당시 미국에서는 전장의 군인들에게 위문품으로 담배를 보내주는 운동이 있었다고 하니 이때까지만 해도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걸 딱히 알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20세기 초반에는 흡연이 건강에 좋다는 담배 광고들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호흡기에 좋은 xx담배! 의사들이 추천하는 yy담배! zz담배 피우고 날씬해지세요! 여성이나 어린이에게까지 흡연을 권장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양차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전세계적으로 흡연률이 크게 증가했고 담배회사들이 크게 성장했습니다. 흡연이 폐암을 일으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학자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수십년의 세월이 지난 후였습니다.
1950년 "영국의학잡지(BMJ)"에 흡연이 폐암을 일으킨다는 논지의 논문이 실립니다. 암환자 1732명과 암이 아닌 다른 질병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 743명을 대상으로 흡연습관을 조사한 결과, 폐암환자의 경우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흡연율이 더 높다는 사실을 관찰하고 이를 근거로 흡연이 폐암을 일으킨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지요. 이런 종류의 연구를 환자-대조군연구(case-control study)라고 합니다. A라는 위험물질이 B라는 질병의 원인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B에 걸린 집단(환자군)과 건강한 집단(대조군)으로 나누어 A에 노출된 비율을 비교하는 방법입니다. 만약 B에 걸린 사람들이 대조군에 비해 훨씬 높은 비율로 A에 노출되었다면 A가 B의 원인이라고 판단하게 됩니다.
이런 방식의 연구는 이미 질병에 걸린 시점에서 과거의 경험을 묻는다는 점에서, 정확한 답변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폐암환자들은 내가 왜 이런 몹쓸 병에 걸렸는지 이리저리 고민하게 마련이므로 암환자가 아닌 사람들보다 과거의 흡연습관을 더 열심히 기억해내려 노력할테니까요. 만약 이런 이유로 환자군에서 흡연율이 높게 나온 거라면 이를 근거로 흡연이 폐암을 일으킨다고 결론을 내려서는 곤란하겠지요. 얼마나 과거인지도 중요합니다. 너무 옛날에 대해 물어보면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져서 자료의 신빙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한편 현재의 흡연습관에 대해서만 묻는 것도 잘못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폐암진단을 받은 이후에 담배를 끊은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흡연이 폐암의 원인인지 여부를 알아보려는 연구에서는 현재 담배를 피우는지 여부만 물어서는 안됩니다. 환자군과 대조군이 흡연습관 뿐 아니라 다른 건강상 차이가 있는 경우에도 올바른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만약에 환자군은 모두 노인들인데 대조군은 청년들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젊은 나이에 폐암이 발병하는 경우는 워낙 드물기 때문에, 청년들은 흡연습관과 상관없이 폐암에 걸렸을 확률이 훨씬 낮을 겁니다. 물론 좋은 환자-대조군연구는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앞서 언급한 1950년 논문의 경우 환자군과 대조군이 가능한 한 비슷한 집단이 되도록 암환자 한 명 당 나이와 성별이 같은 환자 한 명씩을 같은 병원에서 골랐습니다. 현재의 흡연습관 뿐 아니라 평생에 걸친 흡연량을 조사한 것은 물론 시간을 두고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얼마나 신빙성있는 답변을 하는지도 확인했지요. 덕분에 꽤나 신빙성있는 연구성과로 받아들여진답니다.
이런 문제점이 생기지 않는 더 좋은 연구방법이 있습니다. 암에 걸리지 않은 건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흡연습관을 조사한 다음 흡연자와 비흡연자 사이에 폐암 발병률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현재의 흡연습관을 묻는 것이므로 부정확한 기억에 근거할 필요가 없고, 환자군과 비슷한 대조군을 찾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어집니다. 이런 연구를 코호트연구(cohort study)라고 합니다. 다만 이 방법은 실제 폐암이 발병할 때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폐암처럼 흔하지 않은 질병을 연구하려면 애초에 아주 많은 사람들을 추적조사해야만 한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천 명당 한 명 꼴로 발병하는 질병을 연구하려면 적어도 수천명을 조사해야 하는 것이지요. 앞서 말한 환자-대조군연구를 발표한 연구자들도 흡연이 폐암을 일으킨다는 점을 보다 분명히 밝히기 위해 이듬해 코호트연구를 시작했습니다. 4만 명이 넘는 영국의사들을 5년간 추적조사한 끝에 다시 한 번 흡연이 폐암을 일으킨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앞서 출판된 환자-대조군연구에 비해 훨씬 강력한 증거입니다.
이후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습니다. 폐암 뿐 아니라 다른 종류의 질병에 대해서도 흡연이 원인이라는 증거가 차곡차곡 쌓였지요. 그 결과 미국에서는 1964년 의학자문위원회(Surgeon General's Advisory Committee)가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라는 공식 보고서를 발간하게 됩니다. 담배회사들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지요. 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증명하는 연구결과들이 쌓여가는 것을 알고 있었던 미국의 거대 담배회사들은 1950년대 말에 이미 담배연구소를 세워 입맛에 맞는 연구결과를 만들어내려 노력하던 중이었습니다. 명목상으로는 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악영향이 있다면 줄이는 방향으로 제품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소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담배판매량이 줄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습니다. 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결과들 중 조금 애매하거나 상반되는 결과를 모아서 보고서를 만들고, 연구자들에게 남몰래 돈을 주고 담배의 해악을 축소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하도록 한다거나 하는 활동을 했지요. 이런 노력은 1990년대까지도 지속되었습니다. 담배회사로부터 연구비를 받아놓고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흡연에 호의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행태가 문제가 되는 바람에 학술잡지에 논문을 발표할 때에는 누구에게서 연구비를 지원받았는지를 반드시 밝혀야 한다는 규정이 자리잡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요.
담배연구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담배가 건강을 해친다는 연구결과는 쌓이고 쌓여서 오늘날에는 흡연이 폐암 뿐 아니라 후두암, 구강암, 식도암, 췌장암, 위암, 간암, 신장암, 신장암, 자궁암, 대장암 등 각종 암과 뇌졸중, 동맥경화 등 각종 심장질환, 폐렴 및 천식 등 각종 호흡기질환은 물론 당뇨나 실명까지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수많은 환자-대조군연구와 코호트연구 덕분이지요. 1986년에는 국제암연구소(International Agency for Research on Cancer; IARC)에서 공식적으로 흡연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2004년에는 간접흡연까지 1급발암물질로 지정되었고요.
오늘날에는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튼튼한 과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흡연으로 인한 국민건강 악화를 막기 위한 정책을 시행해오고 있습니다. 미성년자에게 판매를 금지하고, 담배자판기를 없애고, 담배광고를 금지하고,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금지하고, 금연캠페인을 벌이고, 담배 가격을 인상하는 등의 정책이 그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몇해 전에 담배가격을 큰 폭으로 올려서 논란이 되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담배가격을 올리는 정책은 특히 주머니가 가벼운 소비자들에게 큰 부담이 된다는 것과 실제로 담배 소비를 줄이는 데 큰 효과가 없다는 점에서 주로 비판을 받았습니다. 소득이 낮은 계층이 담배 소비를 많이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자의 비판은 생각해봄직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담배가격을 올리는 정책은 담배 소비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이 여러 나라에서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담배가격을 큰 폭으로 올린 이후 담배 소비가 실제로 줄었지요.
전세계적으로 흡연인구의 분포를 보면, 소득수준이 높은 국가보다는 소득수준이 낮은 국가의 흡연율이 높게 나타납니다. 국가별 분포를 보아도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흡연율이 높은 경향을 보입니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이 건강에 해로운 습관을 갖게 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에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이 훨씬 높고, 암과 같은 중병에 걸리면 경제활동을 하기 어렵게 될 뿐 아니라 병원비며 약값으로 큰 돈을 쓰게 되어 가난해지기 십상이니 아주 걱정스러운 상황입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데에는 담배회사들의 책임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담배 소비를 줄이기 위한 여러 나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거대 담배회사들은 건재하지요. 담배회사들 입장에서는 국민 건강을 지키려는 이런 캠페인의 결과로 흡연인구가 줄어드는 것, 특히 어린이청소년이 아예 흡연을 시작하지 않게 되는 것이 가장 두려운 일일 거예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광고 규제가 느슨한 국가들에서 특히 어린이청소년을 대상으로 마케팅에 돈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담배회사들이 쓰는 광고비만 매년 수십 조 원에 달한다고 해요. 우리나라에도 KT&G라는 세계적 규모의 담배회사가 있습니다. 2018년 1월에는 "해외 매출 사상 최대 실적" "역대 최고 수량 554억 개비 해외 판매" 등 수출 실적을 자랑하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지요.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에서 큰 돈을 벌었다니 기뻐해야하는 일인 걸까요? 554억 개비의 담배를, 우리나라보다 담배 관련 규제가 느슨한 어느 나라의 누군가가 피웠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백만 개비의 담배가 평균 한 명의 추가 사망자를 낸다고 하니, 계산해보면 오만 명의 생명과 맞먹는 실적인 셈입니다.
미국의 최근 연구결과를 보면 현재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대부분은 끊고 싶어하며, 애초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것을 후회한다고 합니다. 니코틴에는 중독성이 있어서 한번 피우기 시작하면 끊기가 어렵지요.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전세계 어린이청소년 모두가 흡연을 시작하지 않게 되어서 앞으로 반세기 후에는 담배로 인한 폐암환자는 역사책 속에서나 나오는 일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