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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gsun Oct 20. 2020

아프리카의 가장 큰 적은 아프리카 타임

아프리카에서 무언가를 기다린다면..

셰익스피어는 약속에 1분은 늦는 것보다 3시간 일찍 도착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아마도 그 반대가 성립하는 듯 하다. 


아프리카에서 무언가가 제 시간에 일어나기를 기다려 본 적이 있다면, 그래서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분노와 짜증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아프리카 타임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겪은 셈이다. 


African Time이라는 표현은 CNN, BBC 등에서도 다룬 적이 있는 아프리카인들의 시간 개념이다. 또는 무개념이다. 이는 실재하지는 않지만, 아프리카 공무원, 정치인, 사업가 등과 미팅을 잡아본 사람이라면 살갗으로 분명 느낀적인 있는 실체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저녁 파티에 시간에 맞춰 갔다가, 가장 먼저온 손님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파티 준비를 이제 시작하려는 참인데 나타난 손님 때문에 당황하는 주최자를 보고 본인도 민망한 상황을 맞게 된다. 이럴 경우에는 차라리 집에 돌아갔다가 뒤에 돌아오는 것이 낫다. '다른 손님들도 곧 오겠지'하고 기다렸다가는 혼자서 서너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혼자 기다리는 것이 민망해서 같이 오기로 했던 현지 친구들한테 전화를 해보면, '응 금방 갈께', '거의다 왔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물론 거짓말이다. 그들은 이제 슬슬 외출 준비를 시작할 것이다. 

좋은 얘기다. 그런데, 민원인들이 며칠째 대기하고 있는데, 공무원들이 이러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정말로 불편한 사실은 정치지도자들이나 큰사업체의 경영자들은 마치 늦은 것을 본인의 권위를 드러내는 행위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습관적인 지각은 정말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들이 대부분 사이카의 호위를 받으며 교통지옥을 가로질러 도심을 휘젓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렇다. 


2003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가나 무역 박람회(Ghana Expo 2003)에서 언론사들의 기자들은 아샨티부족의 왕인 Otumfuo Osei Tutu II이 오전 11시에 도착하다는 전갈을 받았다. 이후, 기자들은 오후 2시로 시간이 미뤄졌다는 소식을 들었고, 오후 4시경에 왕이 박람회장에 등장했을 때에는 모든 기자들이 짐을 싸서 돌아간 뒤였다. 나는 나이지리아의 한 공공기관 대기실에서 노트북과 영화 DVD를 잔뜩 들고와서 미팅을 기다리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이미 며칠째 미팅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더욱 어이가 없는 것은 미팅에 늦게 나타난 사람들이 주로 손목시계를 보면서 시간이 없다고 서둘러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는 사실이다. 그제서야 우리는 그들도 시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한번 절망하게 된다. 

 

2007년 10월에 아이보리코스트의 대통령 로랑 그바그보(Laurent Gbagbo)는 시간약속을 잘지키는 공무원과 사업가들에게 상을 주는 '시간엄수의 밤(Punctuality Night) 행사를 개최했다. 그 날 행사의 슬로건은 "아프리카 타임이 아프리카를 죽이고 있습니다 (African Time is killing Africa-let's fight it)" 이었다. 주최측은 이 행사의 목적이 "만성적인 태만함이 퍼져있는 이곳에서 시간약속을 지킴으로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 이라고 했다. 이 행사에서 최우수상으로 $60,000 상당의 주택을 포상으로 받은 Narcisse Aca는 변호사로 근무하면서 동료들로 부터 "백인시간을 지키는 사람(Mr. White Man's Time)"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고 한다. 

웃기다. 하지만, 당해보면 죽고싶을 때도 있다. 

나는 시간개념이 없음 또는 시간을 지키지 않음을 '사회적 인프라가 허용하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아프리카에서는 버스가 오지 않아서, 차가 고장나서, 길이 막혀서, 비가 와서, 핸드폰을 충전하지 못해서 등등 약속시간에 늦을 이유가 수백가지에 이르고, 그런 문제가 불시에 닥치기 때문에, 오히려 쌍방이 제시간에 약속장소에 나타나는 것은 요행이 따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프리카에서는 시간을 지키지 않을 핑계가 많고, 다음번에는 나도 기다리기 싫어서 늦게 출발하고, 늦게 출발해도 약속장소에서 기다리는 경험을 하면, 서로 더 늦기 경쟁을 하다가 급기야 시간약속이 의미없는 지경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이런 시간약속 불이행이 사회적으로 묵시적 약속(norm)으로 자리 잡으면 급기야 시간을 지키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 취급을 받고, 한두시간 늦게 나타난 사람도 당당하게 '한두시간 가지고 뭘 그러냐, 오늘 온게 어디냐'고 큰소리 치게 된다. 


하지만, 아프리카 타임이 아프리카 대륙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중국의 만만디 문화, 스페인권의 마냐나 문화, 이슬람권의 IBM (인샬라, 부크라, 마레쉬의 약어)도 이런 시간개념의 부재를 비꼬는 말은 다른 문화권에도 존재한다. 


불과 30년전만해도 코리안타임라는 것이 있었다. 근대 서양 문화가 국내에 들어올 당시 약속에 자주 늦는 한국인들을 보면서 서양인들이 지어낸 말이다. 아마도 당시에는 시계조차 귀했으니, 한국인들이 시간을 지키는 것을 어려운 일이 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계 보급이 많아진 70년대, 80년대에서 코리안타임을 사라지지 않았다. 당시의 교통수단인 전차, 버스, 기차는 제시간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코리안타임이라는 말을 들어볼 수 없을 정도로 한국인들의 시간관념은 투철해졌다. 민족성이 바뀐 것인가? 아니다. 인프라가 향상된 것이다. 버스가 몇분 뒤 어느 정류장에 도착하는지까지 알수 있는 현재에는 약속 당사자들간에 시간 약속을 지키지 못할 변수가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그런 핑계를 대면 이상한 취급을 받는 상황이 오자, 자연스럽게 코리안 타임이 없어진 것이다.


인시아드 대학원의 에린 마이어 교수는 "문화지도: 글로벌비즈니스의 가려진 경계를 뛰어넘기(The Culture Map: Breaking Through the Invisible Boundries of Blobal Business)"라는 글에서 시간을 잘지키는 나라에서부터 안지키는 나라까지 순서를 나열하고 있다. 이 표에 따르면 가장 잘 지키는 나라의 그룹에는 독일, 스위스, 일본, 스웨덴이 포함되고, 가장 안지키는 그룹에는 인도, 나이지리아, 케냐가 포함되어 있다. 국민소득, 산업화, 공공서비스의 순위를 매겨도 이와 동일한 순서가 아닐가 싶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출처: "The Culture Map" - Erin Meyer

아프리카 타임에 대해서 아프리카인의 시간 개념은 서양과는 다르다는 둥, 그들은 시간이 아니라 사건을 기준으로 생각한다는 둥, 시간은 무한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둥, 이를 해석하고자 하는 많은 문화상대주의적 '설'들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시간 개념 없이는 사회의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지게 되고, 따라서 국가가 발전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인프라타령을 하고 있을 것인가. 아프리카에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정확한 시간을 알수 있는 이 시점에 아프리카도 변해야 한다. 그래서, 2007년에 아이보리코스트 대통령 로랑 그바그보의 '시간 엄수의 밤' 행사는 그의 수많은 기행중의 하나로 끝났으나, 그의 동기만은 높이 사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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