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이 Sep 20. 2024

여름의 물방울

쏟아지는 장마 내내, 투명한 비닐우산 위를 굴러다니며

당신의 머리꼭대기에서 미끄럼 탈래요


햇빛 쨍하던 그날, 순하게도 울지 않는 아이를 품던 아버지

당신의 땀방울에 조금 머물러도 될까요


하늘 위를 날으던 분수, 무지개를 나르던 찰나

당신의 마음을 조금은 설레게 했으려나요


얼음 가득한 유리컵, 차갑게 결로 되어 매달릴 때

당신의 열기 어린 손이 닿길 기다리고 있어요





더운 여름날, 무엇을 하던 여름이었음을 떠올리면 그저 추억됨을 알고 있는가.


온몸의 피부로 느끼던 열기, 흘러내리던 땀방울, 불쾌한 습도, 눈부시게 쨍하던 햇빛.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함께했던 누군가는 여름의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그저 날씨 때문인지, 그 누구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언제나 여름은 어리고 미숙한, 또는 자라나는 과정과 그 열정을 내포하고 그것을 발견하게 한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이었다. 그 내내 매미는 하루가 아깝다며 크게 울고, 초록은 날로 우거졌다. 가만히만 있어도 맺히던 땀방울인데, 소중히도 작은 아이를 품에 안고 걸음을 재촉하던 누군가의 아버지. 언젠가 터졌던 것 같은 물기 가득한 분수 아래, 흥건한 물을 밟으며 흘리는 앳된 웃음소리들이 무지개대신 맴돌았다.

 

위기의 순간 삐질 나던 식은땀과, 오랜 시간 끝에 노력의 산물로 흘린 땀의 의미는 다를 것이다. 매운맛에 몸부림쳐 흘리던 눈물과, 누군가의 진심 어린 고백에 흘린 눈물의 의미 또한 다를 것이다.


그 어떤 땀과 눈물이 더 가치 있는가 따지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한 사람의 생애에서 추억으로 삼고자 의미를 부여하는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다 다른 땀과 눈물일 것이다.


오늘의 땀과 눈물은 어제, 또는 내일의 방울과는 또 다른 것이다.


우리는 매일 다른 물방울의 탄생 사이에 있다.


당신은 매일 다른 땀방울을 흘리고, 다른 눈물을 흘릴 것이다. 설사 매일 챗바퀴와도 같은 하루를 보냈을지언정, 그 속에 들어있는 각기 다른 의미는 오직 당신만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물방울 사이를 통과해 빛나던 무지개처럼, 당신의 삶 속에 숨은 오색빛은 오직 당신만이 볼 수 있을 것이다.


더운 여름이었지만, 찰나의 햇빛들은 그래도 아름다웠다. 아무리 더워도 그늘 아래서만 멈춰있기엔 숨은 그 빛을 찾는 재미가 아쉽지 않겠는가. 잠시 쉬어가더라도, 언젠가는 햇빛 아래서 당신만의 색을 찾는 그 순간이 있을 것이다.


수많은 물방울이 제각각의 의미를 찾는 계절, 여름.


당신의 여름에도 무지개가 찬란하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책 [새파란 돌봄] 독후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