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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루리 Nov 25. 2024

나비잠 (1)







프롤로그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새벽, 어슴프레한 불빛을 뒤로 하고 한 여인이 언덕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아 어디가 어딘지 제대로 분간을 할 수도 없지만 그녀는 이미 속속들이 위치를 다 안다는 듯 스스럼없이 풀숲을 헤치고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여명을 알리는 시간이 가까워질쯤 그녀는 마침내 걸음을 멈추고 고즈넉한 돌담 한켠에 걸터앉아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냈다. 쌕쌕~ 어느새 거칠었던 숨소리가 잦아든다. 그녀는 품속에 지니고 있던 사진 한 장을 꺼내 들고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한참동안이나 응시했다. 휴~ 그녀의 입에서 적잖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죠?”


여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쳤다. 마음 같아서는 매일매일 다녀 가고 싶지만 계획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한시도 지체할 시간이 없다. 어쩌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음을 더 단단히 먹어야 하는데 괜히 감상에 젖는 시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결심이 흐트러질까 봐.. 그녀는 깎아지른 절벽사이로 조심스레 자신의 몸을 뉘였다. 바스락바스락 낙엽소리가 그녀의 귓전을 간지럽혔다. 여기쯤이던가.. 순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옛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러지 않겠노라 몇 번이고 다짐했건만 그녀는 또 한번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쏟아내야만 했다. 그녀의 아득한 심정을 일깨운 것은 어느덧 아침을 알리는 산새들의 지저귐이었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옛 기억들을 일기장에 고이 접어 놓듯 서서히 자신의 마음을 추스렸다.

그 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인기척이 들려 왔다. 여자는 깜짝 놀라 자리에 일어나 소리가 들려 오는 곳을 쳐다 보았다. 이윽고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 왔다.


“진우 어머님, 여기 계셨군요. 아침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길래 혹시나 해서 와 봤더니..”


승려복을 곱게 차려입은 스님이 인자한 웃음을 짓고는 그녀에게 말했다.


“아, 스님이셨군요. 아침에 그 이 배웅을 하고 싶어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어서 내려 오십시오. 밑에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곧 내려 가겠습니다.”


승려는 잠시 근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스님이 떠난 이후에도 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없이 가만히 먼 허공만 응시하였다. 여전히 마음 속의 외침이 쉬이 잦아들지 않았다. 이제는 좀 익숙해질만도 하건만 어째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가슴이 아려오기만 하는구나.

 

바위가 아슬아슬 엇갈려 쌓여있는 돌무더기 위로 작은 암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고는 살며시 법당안으로 몸을 옮겼다. 법당안에는 아까 본 승려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노승이 조용히 불경을 읽고 있었다. 노승과 잠시 눈이 마주친 그녀는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는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눈치를 살피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 본 노승은 괜찮노라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에게 말없이 자리를 내어 주었다. 그녀는 노승이 가리키는 자리에 앉아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축문을 읊어 내려갔다. 아니, 축문이라기보다 떠나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같은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과 그리움을 애절하게 부르짖는 일기 같은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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