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부자가 꼬이는 운명을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나쁘다 해야 할까.
나는 그런 운명을 타고난 것 같다.
젊은 시절부터 부자 남자들이 꼬여 호화롭고 넉넉한 연애를 하고 그중 한 넘(분)을 골라 결혼해 경제적으로 걱정할 것 없는 일상을 누렸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인생에 들어온 부자들은 죄다 나와 동성인 여자들이다.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랬다.
새벽 7시에 집을 나서 학교에 가서 하루죙일 공부하다가 10시나 되어야 집에 돌아와 한숨 돌렸던 빡빡한 수험생 생활, 많은 이들에게 그렇듯 유일한 위로는 친구였다.
범생이었던 나는 그저 나와 말이 잘 통하고, 비슷한 책과 영화를 좋아하고, 자분자분 날 웃겨주는 유머코드를 가진 친구들을 골라 사귀었다. 친구들의 가정형편 같은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하루종일 학교에서 나오는 밥 먹고 공부만 했으니, 그런 걸 신경쓸 이유도 여력도 없었다.
우리는 힘든 수험생활을 같이 보내며 전우애를 다졌고, 별 문제 없이 다들 대학에 합격했다. 대학생활을 시작한 다음에도 서로에게 처음 사귄 남자친구를 소개해주고, 주기적으로 베니건스니 TGIF니 당시 유행하던 패밀리 레스토랑을 찾아 전투적으로 음식을 먹으면서 폭풍수다를 떨며 우정을 키워나갔다.
원래 세상 물정 잘 모르는 대학생 때, 과외로 번 돈 쓰기가 세상에서 제일 쉬운 법이다.
나는 과외비로 번 돈으로 친구들과 압구정이며, 강남역이며, 신사역을 돌아다니며 신나게 놀았다.
그저 막연하게 내 친구들도 나랑 비슷한 경로로 돈을 벌어 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내 순진한 착각에 불과했다. 친구네 집안이나 재산에 별관심 없던 나는 친했던 4명의 친구들이 나 빼고 압구정에 빌딩이 있거나, 강남 아파트가 몇 채씩 있거나, 조부모때부터 알아주는 지역 유지 출신의 부자라는 사실을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지극히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내가 열심히 과외해 받은 돈으로, 백화점이라고 하기도 뭣한 뉴코아 아웃렛에서 70% 할인된 '타임'의 재킷을 호기롭게 사서 입고 다니던 어느날이었다. 의도치 않게 친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의자에 걸쳐져 있던 친구 재킷의 브랜드가 눈에 들어왔다. 잡지에서나 보던 마크제이콥스였다. 스물의 나이었으니 그런 옷을 친구가 번 돈으로 샀을 리는 만무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아, XX네 집이 내 생각보다 많이 넉넉한가보다' 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우리 모두 각자 제 살길을 찾아가며 각자의 뒤에 숨어있던 배경이 슬슬 그리고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학시절, 친구와 재미삼아 보러갔던 사주카페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너는 평균 이상의 운명을 타고 났는데, 네 주변에 반짝이는 별들이 너무 많아서 스스로 작아지는 일이 많겠다"고. 사주라는 게 늘 그렇듯 흘려듣는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 이야기보다 훨씬 많았지만, 저 말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내 가슴 속에 박혀있었다.
대기업을 평생 다닌다해도 나는 결코 장만할 수 없을, 친구의 비싼 신혼집에 다녀오며 자괴감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친구의 여유로운 시작을 축하하고 부러워하는 마음 반, 그런 운명을 타고나지 못한 나를 불쌍해 하는 마음 반이 뒤섞여 나를 괴롭혔다.
불효지만, 우리 집은 왜 이럴까, 어쩌면 가진 게 이렇게까지 없을 수 있을까 하는 원망도 들었다. 내가 한국을 떠나 살기로 마음 먹은 데는 그런 이유도 컸다. 너와 나를 비교하는 문화가 팽배한 서울 땅에서, 나는 나를 괴롭히며 살기 싫었다. 가까운 지인들과 내 처지를 아예 비교할 수 없게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 대단한 대안처럼 느껴졌다. 그걸 도망이라 부른다 해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남편은 나와는 다른 이유로 해외행을 택했다. 현 남편, 당시 남친은 우리집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랐지만, 한국 특유의 '까라면 까' 식의 기업 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이것도 15년 전 이야기니, 지금은 물론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어린 시절 했던 해외생활 덕분에 영어도 문제없이 구사해 언어의 장벽도 없었기에 해외로 눈을 돌린 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하고 한국을 떠났고, 벌써 그게 10년을 훌쩍 넘었다.
앞서 말한 부자 친구들과 나는 여전히 친한 사이고, 공교롭게도 네 명 중 세 명이 해외에 나와 살고 있다. 가끔은 생각한다. 우리의 우정이 이렇게나 공고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모두 전 세계에 흩어져 서로에 대한 애틋함을 안고 살아서가 아닐까 하고. 서로의 처지가 낱낱이 비교되는 공간에서 30대를 함께 보냈더라도 우리는 아니, 나는 친구들을 지금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을까? 어쩌면 30대 초중반의 나는 열등감으로 친구들의 손을 놓아버렸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사실 한국을 떠난 후에도 나는 영국과 중국, 이탈리아 각국에서 의도치 않게 여러 명의 (부자)친구를 사귀었다. 남편은 자기 주위에는 다들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친구가 되는데, 어딜 가든 희한하게 여유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나를 신기해 한다. 맹세컨데 그들의 돈을 보고 접근한 것도 아닌데, 내가 생각해도 참 희한한 일이다.
20대 때는 열등감에 괴로웠다. 소위 금수저로 태어나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내 측근들을 보며,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뒤집을 수 없는 그 간극에 스스로를 괴롭혔다. 하지만 친구들이 너무 소중했기에 그 관계를 끊어내거나 거리를 두지도 못했다. 늘 가까운 거리에 머물면서 친구들 때문에 행복했다가 괴로웠다가를 반복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40대가 되니, 조금 생각이 달라진다.
주위에 나한테 돈 빌려달라고 보채는 어려운 친구들만 있는 것보다야, 여유롭게 같이 여행도 갈 수 있고, 함께 만나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 게 더 낫겠구나 하는 깨달음이 생겼달까.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각자의 고민과 어려움이 있는 걸 보고 있노라면, 그래 내 인생도 그리 나쁜 건 아니야. 모든 인생이 마찬가지야,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내가 찢어지게 가난한 인생은 아니라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덧으로, 부자 친구를 두어 어려운 점이 있냐고 누가 묻는다면...
친구들의 선물을 사는 게 정말 어렵다고 답하겠다.
뭐든지 다 가지고 있고, 맘만 먹으면 다 살 수 있는 그들에게는 내 형편에 아무리 무리를 해서 값비싼 선물을 해줘도 큰 감동이 없다.
오히려 그리 비싸진 않아도 참신하거나 아이디어가 넘치는, 귀여운 선물을 해주는 게 좋은데 그런 선물을 고르는 게 아주, 정말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