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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쥐 Jan 30. 2021

일상 속 인종차별에 대처하는 법

외국에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 바로 인종차별이 아닐까.

'너희 나라로 꺼져', '칭챙총, 더러운 중국놈들' 하는 노골적 인종차별을 당하는 일도 간혹 있지만, 잠시 여행온 게 아니라 타국에서 현지인으로 살다보면 예상치 못한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교묘하게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 토종 한국인으로서 그 어떤 인종차별에도 노출되지 않은 채 30년을 살다가, 적잖은 나이에 외국에 나와 피부색으로 차별을 받는 일이 생기니 처음에는 억울하고 분해 어쩔 줄 몰랐다. 하지만 슬프게도 일상 속에서 이런 차별을 종종 받다보니, 인종차별에 대처하는 데도 나름 요령이 생기기 시작했다.




1. 노골적 인종차별

한국 뉴스를 보면 강남역에서 여자만 골라 침뱉고 도망간 미친 청년에 대한 기사가 나듯, 어느 동네든 제정신 아닌 사람들은 있는 법이다. 게다가 중2병은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어디든 아직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중고등학생이 제일 무섭다. 코로나 발병 직후, 공원에라도 나가면 우리 집 아이들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손가락하던 아이들도 거의 100% 중고등학생들이었다.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칭챙총', '니네 나라로 꺼져' 하는 심각한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들은 사실 이 사회에서도 겁나 비주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권 한 번 만들지 못해, 유럽 아니 근처 프랑스도 한 번 못 가보고 이태리 국경도 못 넘어본 사람들이 보통 이런 것 같다는 것이 나의 관찰 결과다. 이 사람들에게 동양은 아직도 배곯는 사람들 투성이의 더러운 지역이라는 이미지일 확률이 높고, 이런 사람 붙잡고 현재 대한민국의 위상 같은 것을 이야기해봐야 별 소용 없다. 그냥 불쌍한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하거나, '그래, 평생 이태리에서 행복하게 살길 바라.' 하고 조소하며 한 마디 하고 지나가는 것이 최선인 듯 싶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동양인이 많지 않고 또 그나마 있는 동양인의 90%는 중국인인 이 도시에 살며 사람들의 곱잖은 시선을 받는 일은 종종 있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어김없이, 누군가 뚫어지게 불쾌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고 운이 없는 날이면 꼬맹이가 눈을 양옆으로 찍 찟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또 이에 대한 대처 방법으로, 아이 부모에게 가서 '리틀 히틀러 나셨네요. 자식 교육 잘 시키세요.' 라고 말하라던데...그럴 용기는 어디서 나나요 하하)



2. 지금 방금 그거 인종차별이었나? 생각하게 만드는 교묘한 인종차별

사실 노골적 인종차별보다 생활 속에서 훨씬 자주 일어나는 건 바로 교묘한 인종차별이다.

지금 방금, 그거 인종차별이었나? 너무 교묘해서 현장에서는 아무런 대응도 못하고 찝찝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 분노의 이불킥을 하게 만드는 그런 일들.


가장 보편적인 예는 바로 슈퍼마켓 캐셔들에게 당하는 무시일 거다.

분명 내 앞사람에게는 웃으며 인사하고 이런저런 잡담도 했던 직원인데 내 차례가 되어서는 똥이라도 씹은 것 같은 얼굴로, 안녕 혹은 고맙다는 내 인사에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스캔한 물건은 던지다시피 내게 줄 때 느껴지는 그 드러운 기분이란...

런던에서도 몇 번 당해봤고 내가 지금 사는 이태리 도시에서도 종종 겪는다. 그저 피부색만으로 순식간에 저열한 인종으로 판단 당하고, 그들이 생각하는 저열한 인종에 맞는 대접을 받을 때 느껴지는 그 무력함은 당해본 사람만 알 것이다. (물론 외국인, 내국인 가릴 것 없이 모두에게 불친절한 캐셔도 존재하지만, 내가 말하는 캐셔들은 피부색에 따라 순식간에 고객 응대 태도를 바꾸는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설마, 하는 마음에 영수증을 받을 때면 이제껏 동방예의지국에 살며 교육받은 것처럼 '고맙다'는 인사도 꼬박꼬박했다. 하지만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으면서 깨달은 것은 내게 불친절한 사람에게 친절할 필요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여러 번의 경험에 비춰 어떤 사람이 고의로 내게 불친절하다는 게 의심을 넘어서 확신이 되면, 간단하게 나도 같은 노선을 타면 된다. 안녕이나 고마워 같은 인사도 굳이 할 필요 없다. 나의 꾸준한 인사로 그가 인종차별 주의자의 굴레를 벗고 드넓은 세상과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게 될 확률은 0에 가까우므로. 물론 꾸준한 친절함으로 상대에게 깨달음을 줄 수도 있겠지만...그런 분들, 이 지면을 빌어 존경합니다.


어느 날은 너무나 분해서 인터넷에서 슈퍼에서 당하는 인종차별에 대한 글을 찾아봤다. 그중 독일의 한인 커뮤니티에 올라왔던 글이 기억에 남는다. 글 속 국제결혼을 해서 독일에 정착한 글쓴이는 나처럼 슈퍼마켓에서 당하는 사소하지만 교묘한 인종차별에 환멸을 느끼다 어느 날 폭발했다. 항상 그에게 불친절했던 캐셔가 그날도 앞선 고객에게는 엄청 친절한 태도로 응대하다 그에게 X씹은 얼굴로 물건을 던지자, 글쓴이는 물건을 받아 장바구니에 다 넣었다가 계산하기 직전에 담았던 물건을 카운터에 다 쏟아붓고는 너만 예의없게 행동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퍼부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극적인 항의도 그럴 용기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것.


빅 씬을 만들지 않으면서 예의 없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이 열등하게 여기는 미개한 동양인으로서 그들에게 받은 무시를 돌려주는 것이다. 그저 '네, 너님은 그렇게 살다 가세요. 당신의 이런 무례함은 내게 별 일도 아닙니다'하고 생각하며, 이를 드러내는 약간의 빈정 섞인 표정을 짓고 있다가 물건을 담아 나오면 된다. 저열한 것은 내 인종이 아니라 그들의 정신인 것을 기억하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게 내 정신에 이롭다.




동양인이 많은 도시, 캘리포니아나 밴쿠버의 사정은 여기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사는 알프스 동네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에게는 인사하는 법이 거의 없고, 자기 기분에 따라 아는 사람도 모르는 척 지나가는 경우가 태반으로 분위기가 꽤 삭막하다.


물론, 외국인에 배타적인 이 동네 사람들도 같은 집단에 속해 알게 된 외국인은 훨씬 유하게 대한다. 이를테면, 자녀의 학교를 통해 알게 된 동양인 학부형이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알프스 산동네에서 내가 학부형 모임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그들과 절친이 되어, 매일 만나 함께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떠는 관계가 되길 바란 것도 아니건만, 그저 아침저녁 학교 교문 앞에서 스치며 지나갈 때 반갑게 웃으며 인사하고 싶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모두가 불친절한 것은 절대 아니다. 삭막한 동네라도 8할의 사람은 친절하다. 다만 문제는, 자다가도 날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사람은 바로 그 불친절한 1~2명이라는 것...


어제는 친절하게 인사한 엄마가 오늘은 무슨 이유인지 쌩하고 지나갈 때, 분명 저 사람의 시야 안에 내가 있는 게 확실한데 인사하기 귀찮은 건지 부러 내 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는 게 너무나도 느껴질 때, '왜 그러지?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하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여러 해 살며 깨달은 게 있다면, 그들의 그런 행동에는 딱히 이렇다할 이유가 없고, 그걸로 내가 전전긍긍할 필요 또한 전혀 없다는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들의 감정에 내 감정을 널뛰게 만들 필요는 없다. 그러니 먼저 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고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재외 한국인으로서 다행히도 대한민국의 위상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가 터지고 K 방역이 연일 이태리 뉴스에 나오며, 이태리 친구들의 부러움을 살 때는 절로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BTS와 블랙핑크의 선전으로 힙한 문화의 나라라는 이미지도 생기고...10년 전, 아니 불과 5년 전과 비교해도 외국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은 많이 높아져있다. (물론 눈닫고 귀닫고,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는 관심없음 하는 사람들도 아직 있지만, 그 경우 무지한 그들의 영혼을 그냥 동정하고 지나가면 될 일이다)


그러니 코로나가 끝나고 해외여행의 문이 다시 열렸을 때 외국으로 나올 많은 분들, 특히 유럽에 오실 분들은 인종차별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감을 가지고 세계를 활보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지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을 만나도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행동하시길.

인종차별주의자는 언제 어디에나 있고 아마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런 나쁜 사람보다는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고, 길가다 밟은 똥이 무서워 세상에 나가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오늘도 나는 마음을 단디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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