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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쥐 Aug 05. 2023

미국에서 첫 집을 구하다

매물이 없다면 질로우 말고 부동산을 찾아가세요

우리는 지금 미국 남동부의 시골마을에 살고 있다.

이 마을로 이사 온 이유는 단 하나, 아이들의 학교 때문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아이들 학비로 꽤나 많은 돈을 쓰고 난 후, 우리는 미국에 가면 더 이상 사립학교에 돈 쓰는 일은 하지 말자고 굳게 다짐했다. 애들 의대 학비를 대는 것도 아니고, 유치원과 초등학교 학비에 그 많은 돈을 쓰는 건 우리 형편에 전혀 맞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아주 비싼 대가를 치르고 처절하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태리를 떠나기 전, 나는 인터넷을 떠돌며 우리가 이사 갈 동네의 학군을 조사했다.

안타깝게도 남편의 직장이 있는 도시의 공립학교 평점은 10점 만점에 2, 3점. 

조금 조사해본 바로는 평점이 2~3점인 학교는 학생이 선생에게 침을 뱉는 수준이라고 하니, 그 동네는 아웃.

결국 우리에게 유효한 선택지는 근방에서 공립학교가 제일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는 동네뿐이었다. 하지만 학군이 중요한 건 한국뿐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 열악한 학군 가운데 그나마 평점 7~8점을 받는 학교가 모여 있는 동네에는 취학 연령 자녀를 둔 가족이 몰려들었고, 고로 집을 구하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시골 동네 특성상 렌트 매물보다는 매매 매물이 훨씬 많았고, 렌트 매물도 시장에 나오자마자 바로 나가는 일이 번번했다. 위치도 적당하고, 예산도 적당하고, 집안 인테리어도 적당하게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아이들 학기 중에 한 국제 이사인지라 나는 마음이 급했다.

하루라도 빨리 애들을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우리는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하우스 헌팅에 나섰다.


질로우에 올라온 매물이 열에 여덟은 이미 나간 집이라 당황하던 찰나, 싱글 하우스 말고 아파트라도 들어가야 하나 해서 찾아간 아파트 영업 담당 직원에게서 소중한 조언을 들었다.


 질로우 말고 동네 부동산을 찾아가라는 것. 

보통 렌트 매물은 부동산에서 바로바로 나가서 질로우까지 올라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렇게 찾아간 부동산에서 고맙게도 미국에서 우리가 살 첫 번째 집을 만나게 되었다.

집안은 페인트 칠도 새로 싹 되어 있고, 카펫도 새로 갈아 깨끗했다. 집들 사이 간격이 조금 촘촘한 것이 마음에 안 들긴 했지만 급한 우리 사정상,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미국에서 집 간격이 좁다는 건 큰 단점이므로, 렌트 가격도 다른 집들에 비해 저렴했다. 우리야 늘 주재원이 아닌 외노자로, 렌트비도 우리가 내니까 고정비는 줄이면 줄일수록 좋다.

그렇게 우리는 당장 오퍼를 넣었고 고맙게도 오퍼가 수락되어 계약을 하게 되었다.


땅 넓은 미국에서, 것도 대도시 아닌 시골에서 이 정도 집 간격은 많이 좁다고 보면 된다. 사진에 찍힌 건 문제의 그 쓰레기통 

                 


유후. 

렌트 계약서를 쓰자마자, 그 계약서를 가지고 아이들을 학교에 바로 넣고 남편은 곧바로 출근을 시작하고, 나는 입주 청소를 시작했다.

그리고 청소하다 나온 쓰레기를 버리려, 집에 딸린 커다란 쓰레기통을 여는 순간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에 살던 사람들이 얼마나 쓰레기통을 지저분하게 썼는지, 쓰레기통 안으로 온갖 끈적한 음료와 음식물 찌꺼기들이 들러붙어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저걸 내가 청소해야 한다고? 오노.

나는 당장 쓰레기차 회사에 전화를 걸어 혹시 컨테이너를 바꿔줄 수 없는지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냉랭한 대답. 컨테이너가 파손되지 않는 이상 교체란 없습니다. 직접 세척해 쓰세요.


아직 입주 전이라, 당시 지내던 에어비앤비로 돌아온 그날 밤.

낮에 본 쓰레기통의 악취와 더러운 모습이 자꾸 떠올라 잠을 설쳤다. 그걸 내가 청소해야 한다니, 아 왜 내 삶은 이렇게 빡센 것인가. 


성격 급한 나는 다음 날 바로 쓰레기통 청소에 필요한 도구들을 사서 빈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자꾸만 솟아오르는 구토를 참아내며, 긴 플라스틱 빗자루로 안에 있는 것들을 모두 긁어내고, 조그만 정원에 딸린 호스로 쓰레기통에 물을 잔뜩 붓고, 그 안에 세제를 풀어 빗자루로 벅벅 긁어냈다. 그런 다음 물이 가득 담겨 무거워진 쓰레기통을 질질 끌고 골목에 난 하수구 앞으로 걸어가서 물을 쏟아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방금 전 했던 단계를 3~4번 반복했다. 

3~4번 닦아내고 나니, 그제야 쓰레기통을 흐린 눈이 아니라,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었고 남아있는 찌꺼기와 들러붙은 비닐봉지들도 제대로 떼어낼 수 있었다.

그 쓰레기통을 청소하면서, 우습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진짜 어딜 가든 살아남을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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