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함께 각자도생
저멀리 중국의 우한이라는 도시에서 정체불명의 폐렴 바이러스가 발생해 사람들이 길거리에 픽픽 쓰러져 죽는다더라 하는 흉흉한 뉴스가 포털 메인에 떴을 때만 해도, 나는 중국과 가까운 한국이 걱정이었다.
중국과 한국이야 워낙에 교류도 많고, 하루에도 몇 천, 아니 몇 만명씩 비행기와 배를 타고 오가는 나라니까 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돌이켜보면 어리석기 그지없다. 로마, 피렌체, 밀라노 등 이탈리아 대도시에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그득그득했고, 내가 사는 도시는 가뜩이나 제조업이 기반인 공업도시라 중국으로 출장을 가는 현지인들, 중국에서 출장오는 중국인이 수두룩 빽빽이었는데.
중국에서 발생했다는 그 바이러스가 중국 내 공항까지 이동시간을 포함해 한국으로 오는 데 대여섯 시간이 걸렸다면, 유럽까지는 24시간이면 충분한 일이었다.
1월 초에 중국에서 바이러스가 생기고, 공식적으로 이탈리아 첫 확진자는 2월에 등장했지만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를 중심으로 1월부터 정체불명의 폐렴으로 입원환자가 늘고 많은 노인들이 사망했다고 하니 어쩌면 코로나는 생각보다 일찍 이탈리아로 건너왔을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우리 가족은 1월 중순 밀라노 근교의 부유한 도시 베르가모로 여행을 다녀왔다.멋쟁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근사하게 차려입고 커피를 마시던 그 카페가 눈앞에 생생한데, 불과 한 달 후 베르가모는 코로나로 초토화가 됐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어 관을 둘 곳이 없자 군대 탱크가 동원되어 관을 싣고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슬픈 광경이 전세계에 보도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우리 가족이 여행했던 1월 중순, 이미 코로나는 베르가모에 퍼져 있었을 것이다. 조용하고도 은밀하게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던 그곳을 무방비 상태로 여행했다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지난 3월 고강도의 록다운을 거치며 회복세를 보이던 이탈리아 상황은 다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며칠 전, 일일 확진자 수가 4만을 찍은 것을 정점으로 오늘 확진자는 27,000명 수준으로 내려왔지만 하루 사망자는 600-800명 선을 오락가락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내가 사는 피에몬테 주도 매일 2-3천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렇게 폭발적으로 확진자 수가 늘어나니, 자연스럽게 내 주위에도 확진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작은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이었다. 둘째 꼬맹이의 이탈리아어 선생님이 며칠째 결근이어서 조금 걱정이 되려던 찰나, 학교에서 선생님의 확진을 알리는 메일을 보내왔다.
이탈리아에 살면서도 늘 한국 뉴스를 보고, 한국의 방역조치를 좇아왔던 내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학교와 이탈리아 보건당국의 조치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선생님의 확진 메일을 받은 나는 잔뜩 겁에 질려 학부모들 단체 채팅방에
"우리도 다 같이 검사 받아야 하는 거지?!!"
하고 문자를 띄웠다. 하지만 반응은 어쩐지 냉랭했다.
곧이어 다른 학부모가 놀라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탈리아 정부 지침상, 교사가 확진되었을 경우 교사만 격리되고 학급은 대체 교사와 함께 계속 운영된다는 것!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는 일정 간격이 유지되었다는 전제가 있어서란다. 하지만 학생들 간 거리두기는 쉽지 않음을 감안해, 학생이 확진될 경우에는 학급을 폐쇄하고 2주간 온라인 학습으로 전환한다고 했다. 학부모는 커녕, 확진 교사의 담당 학생들에게도 코로나 검사라는 '혜택'은 주어지지 않았다.
천만 다행히도 반 아이들 중 증상을 보인 친구는 없었다. 하지만 이미 학교에 들어온 바이러스가 그렇게 조용히 물러갈 리는 만무했다. 2주 후 첫째 아이의 담임도 확진 판정을 받았고, 해당 교사의 남편인 체육 선생님도 확진 판정을 받은 것, 교사와 학생 간 거리는 유지했더라도 교사들끼리는 함께 교무실을 쓰고 함께 식사를 했을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텐다.
이번에도 둘째 때와 마찬가지로 교사만 대체되고 학급은 그대로 운영되었다.
학부모들의 동요는 2주 전보다 덜했다. 퍼질 대로 퍼져서 한 다리 건너면 확진자가 심심찮게 보이는 상황이라 그런 거겠지...
비슷한 시기, 남편 회사는 직원들을 상대로 전수 검사를 했는데 직원이 100명 정도 되는 회사에서 9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그리고 며칠 전, 건강했던 50대 이탈리아 아저씨가 코로나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비보가 날아왔다.
한국에서 코로나로 하루에 800명의 사망자가 났다면, 거의 전시에 준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유럽 사람들은 코로나와 함께 사는 법을 더 빨리 배우고 있다.
어찌 손을 써볼 도리도 없이 퍼져버린 탓에, 뉴노멀에 적응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어서일 것이다.
사람들은 더이상 양볼에 키스하는 바쵸로 인사하지 않는다. 길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1년 전만 해도 병자나 범죄자만 쓰는 것으로 여겨졌던 마스크를 쓰고 있다. 가끔은 내가 기분 나쁜 SF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도 든다. 초등학교를 제외하고 전 학년은 비대면 수업을 진행 중이고, 아이들은 각자 방과 컴퓨터 앞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어쩌면 이 팬데믹이 종료된 다음에도 아이들은 이전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을지 모른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자손녀가 공원에서 만나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잠시라도 얼굴 본 것에 만족하고 돌아선다. 집집마다 지인들을 초대해 저녁식사를 하는 건 엄두도 못낼 일이 되어버렸다.
잃어버린 일상이 안타깝고 아쉽지만, 그래도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으려 노력한다.
여행도 못가고 쇼핑센터도 가지 않아 돈 쓸 데가 줄었으니, 슈퍼마켓에서 호기롭게 가격표 따위 보지 않고 호화 쇼핑을 즐긴다. 스마트워킹을 하는 아빠 덕분에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일도 나누어 하게 되었으니, 그것도 반가운 일이다. 학교에서 오라가라 불러댔던 자잘한 행사들도 없어졌고, 학기마다 끌려가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태리어를 두시간씩 듣고 와야 했던 학부모 회의도 줌 회의로 대체되어 훨씬 수월해졌다.
오늘도 우리 둘째는 같은 반 친구 할머니가 코로나에 걸렸다는 소식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코로나는 정말 지척에 있는갑다. 운이 없어 걸리게 될지라도, 각자도생만이 살 길이다.
언제 끝날지 모를 이 터널 안에서, 우리 가족은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났다.
그것만으로도 오늘 하루가 슬기로웠다고, 모두 잘 견뎌주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