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은 처음의 시간이다. 매 순간 처음의 나날을 맞이했다. 그렇게 쌓인 60년의 시간. 60년 정도 살았으면 삶을 알 법도 한데, 불혹, 지천명을 지나 이순이라 하건만 여전히 혹하고, 천명을 모르겠고, 팔랑귀가 되어 요리조리 흔들리며, 아직도 배울게 많은 초보 같은 심정의 60세이다.
50 즈음에 몸담던 교직생활을 접고 명예퇴직을 했다. 나름 안정된 직장이었지만, 나는 자꾸 몸이 아팠고, 직장과 가정을 둘 다 병행하는 게 벅찼고, 당장 세 아이가 중고등학생이었다. 아이를 돌봐주는 부모님이 계신 것도 아니고, 도우미를 고용해서 그나마 직장과 가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늘 구멍이 나기 일쑤였다.
어느 날 점심시간 폰으로 연락이 왔다.
엄마! 나 지금 일어났어
큰 아이는 중3이었고, 당시 아이 등교보다 일찍 출근해야 했던 나는 아이를 깨우고 출근을 했었는데 그만 아이가 밥을 먹고 다시 잠이 들었던 것이다. 화들짝 놀란 나는
준비하고 있어. 엄마 바로 갈게
나는 학교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다행히 점심시간을 이용해 급히 차를 몰고 집에가 아이를 태워 학교에 보내고 담임선생님께 사정을 말씀드렸다. 그날 나는 뭔가 강하게 얻어맞는 듯한 현타가 왔다. 집안 일도, 아이들의 교육도, 그리고 내 직장에서의 일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지 않고 구멍이 나는 상황에서 결단을 내어야 했다. 직장생활은 나중에 다시 할 수도 있지만, 아이들의 청소년기는 한번 지나면 다시 오지 않는 시기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20년을 채웠기에 명예퇴직이 가능했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거의 10년이 흘렀다. 대체로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러듯, 주변인으로 열심히 살았다. 돌보고 돌보고 뒤정리 하며.
세 아이는 엄마의 빈 구멍에도 불구하고 잘 자라주었고, 대학도 당연하다는 재수과정 없이 한 번에 붙어 주었다. 그럭저럭 졸업을 하고, 자기 일을 찾아가게 되었고 나는 이런저런 취미생활을 하며, 또는 가끔씩 학교의 시간강사나 기간제 교사를 하는 등 사회와의 접점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것도 시간이 흐르니 점점 기회는 줄어들었다. 그러다 꽤 긴 공백 후에 10년이 넘어 내 나이 50대 후반에 기간제 교사 채용공고를 보게 되었다. 중학교 2학년 담임교사. 할 수 있을까? 잠시 머뭇거렸지만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내가 교사할 것을 말리는 사람도 없었고, 다시 뭔가 일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일던 때였다. 두려웠지만 이력서를 냈고, 운이 좋게 채용이 되었다. 이 나이 많은 사람을 채용해 주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었다. 나는 다시 사회에 나올 수 있는 동력을 얻었고, 앞으로 남은 시간을 움직이기 위해 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늦기 전에 서두르자. 아님 말고!
나도 처음인 60에 나는 내 인생 처음으로 진짜 내 인생을 살기 위한 좌충우돌 돈키호테 같은 여정을 소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