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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11월 11일

Poppy Day

by 나모다


영국의 11월 11일은 Remebrance Day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 11월 11일 오전 11시를 기념하는 날로 영국 전역에서 모든 활동이 잠시 멈춘 후 2분간 묵념이 진행된다. 한국에서는 과자 회사의 마케팅으로 특정과자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과 대비되는 모습니다. 영국에서 이 날을 기념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 당시 많은 영국인들이 세계대전에 참여하며 희생당했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노르망디상륙작전을 위해 영국군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의 큰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에 있은지 1년이 넘어서야 나는 이 행사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일 년 내내 그 많은 포피들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11월 11일을 기점으로 몇 가지 중요한 행사가 있다. Remebrance Sunday는 11월 11일에 가장 가까운 두 번째 주 일요일로 공식적인 추모행사가 열린다. 런던의 Whitehall에 있는 충혼탑 (The Cenotaph)에서 왕실, 총리, 정치인, 군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대규모 기념식이 있다. 이 추모행사에서 로런스 비넌 (Laurence Binyon)이 쓴 "Fall the Fallen" 등이 낭송되는데 전쟁에서 희생된 젊은이들을 기억하는 살아남은 자들의 마음이 전달된다. 이 공식행사에 마지막 행 “we will remember them (우리는 그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낭독 후 대중이 “Lest we forget. (잊지 않기 위해)”이라고 응답한다.


https://youtu.be/P_2Zfaxfptk?si=SnM2RxlhNf89i7jk

2025년 11월 9일에 있었던 추모행사를 다룬 방송


For the Fallen (Ode of Remembrance, 추모의 송가)


They shall grow now old, as we that are left grow old :

Age shall not weary them, nor the years condemn.

At the going down of the sun and in the morning

We will remember them.



또한 지역의 교회에서는 이 주일을 추모주일로 보낸다. 내가 이 기념일을 인식하게 된 계기는 지역 교회의 분위기에서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옷에 포피배지를 달고 예배에 참석했고, 그 주를 추모의 주일로 기념하는 예배를 드렸다. 콰이어의 특송 역시 추모의 내용이었는데, 가사가 너무 아름다워 여기에 옮겨 본다.


In remembrance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I am not there, I do not weep

I am a thousand winds that blow, I am the diamond glint on snow.

I am the sunlight on ripened grain. I am the gentle morning rain.

And when you wake in the morning’s hush,

I am the sweet uplifting rush of quiet birds in circled flight.

I am the soft stars that shine at night.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cry. I am not there, I did not die.


Eleanor Daley (b. 1955)


내 무덤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 나는 거기에 없으니, 잠들지 않았습니다.

나는 불어오는 수많은 바람이며, 나는 눈 위에서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빛입니다.

나는 잘 익은 곡식 위에 비치는 햇빛이며, 나는 부드럽게 내리는 아침의 이슬비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고요한 아침에 깨어날 때, 나는 둥글게 비상하는 새들의 감미롭고 가벼운 날갯짓입니다.

나는 밤에 빛나는 부드러운 별빛입니다.

내 무덤가에 서서 슬퍼 울지 마세요. 나는 거기에 없으니,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지역교회 콰이어에 참여하며 나도 이 합창에 참여했는데, 마지막 구절 I did not die라는 구절에서 마음이 울컥했다.


그 전날에는 Royal Albert Hall에서 대대적인 기념 콘서트가 열린다. 이것에 대한 정보가 없어 당일에 라이브방송을 청취하지 못했는데 다행히 녹화본이 올라와 있어 시청할 수 있었다.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되었고 찰스왕과 가족들, 수상을 비롯한 정치인들 뿐 아니라, 군 관계자들, 전쟁의 희생자가 되었던 군인들의 가족들로 그리고 일반시민들로 거대한 홀이 가득 매워져 웅장한 행사가 진행되었다. 콘서트라면 음악인들의 음악향연쯤으로 생각할 텐데 예상밖으로 전체 프로그램은 희생자들을 기억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진행되었다. 후반부에 가서는 당시에 참여했던 다양한 군인들 (육군, 해군, 공군, 선박지원팀, 간호병,,, )의 제복을 그대로 입은 군인들이 차례로 입장하여 중앙홀을 가득 매운 가운데 국기가 그들을 추모하는 뜻으로 깃대를 바닥에 내리고 홀 가득히 포피 잎이 떨어지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https://youtu.be/_meIAWCiIjI? si=T2 qvNbaPG7 uLhKan

2025년 11월 8일 London의 Royal Albert Hall에서 진행된 기념행사


영국은 해가지지 않는 나라였고, 그들의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비난 쪽에 더 무게가 나간다. EU에서 탈퇴하고 점점 해가 지고 있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유럽국가들의 대부분의 현실이지만) 상황에 있고, 더 이상 과거의 영광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오랜 전통과 역사가 그들 삶의 곳곳에 배어 있고, 과거를 존중하고 기억하는 태도는 숭고해 보였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행사에 그 많은 사람들이 집중하며, 마음을 모아 희생자들을 기념하고 기억하고 오늘의 현실과 연결하는 태도는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비록 느려 보이고, 변화에 적응이 느리고, 퇴락해 보이는 듯한 지금 이곳의 풍경 저변에 나는 그들의 힘을 흘깃 볼 수 있었다.


영국에서 색다르게 경험했던 것이 바로 이 포피라는 꽃이다. 한국에서는 주로 붉은 양귀비로 알고 있고, 간혹 허브공원 같은 곳에 가면 볼 수 있는 꽃이다. 8세기 초중엽 당나라 현종의 며느리였다 후궁이 된 양귀비가 외모는 물론 뛰어난 가무로 현종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을 빗대어 마약성 꽃에 양귀비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회자되는 양귀비 꽃의 이미지와 영국에서의 양귀비는 사뭇 다르다. 영국에서 양귀비(poppy)는 추모일의 상징이다. 1차 세계대전 격전지 플랑드르 (Flanders) 들판에서 양귀비가 피어난 데서 유래했다고 하고, 11월 초부터 11일 11일까지 영국인들은 다양한 양귀비 배지, 브로치 등을 가슴에 달고 다닌다. 마치 이전에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다닌 것처럼. 혹은 포피 무늬가 그려진 스웨터나 블라우스를 입고 다니는 여성들도 많이 눈에 띈다. 이 배지판매의 수익금은 참전 용사와 유가족을 돕는 기금으로 사용되고 영국 국민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상징적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이 기념일을 Poppy Day라고도 한다. 정말 11월 초에는 어딜 가나 이 포피로 넘쳐난다. 게다 1년 내내 지역마다 있는 충혼탑들에는 많은 포피들이 헌화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 한국에 있었으면 아마 빼**롤 한두 개쯤 먹고 또는 사서 지인들과 나누기도 했겠다. 엄숙함 만큼 하루 종일 흐리고 안개도 짙은 영국에서 포피에 얽힌 또 다른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숙이게 된다. No more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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