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던 어느 날 아침, 나는 평소처럼 거울 앞에 섰다. 평범하고 특별한 것 없는 하루의 시작이었지만, 그 순간 불현듯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열두 살 무렵의 일이었다. 그때도 거울 앞에 서 있었지만, 지금처럼 무표정하지는 않았다. 입술을 꽉 다문 채 조용히 울고 있었다. 소리를 내지 못한 채, 침묵 속에서 흘리는 울음이었다.
왜 울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은 희미했지만, 그 울음의 질감만큼은 생생했다. 목구멍이 꽉 막힌 듯한 답답함, 가슴을 짓누르는 압박감,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다는 절망감까지. 그것은 현재의 무감각한 상태와는 전혀 다른 감정이었다.
그날 하루 종일 그 기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하면서도,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내 의식은 자꾸만 열두 살의 나에게로 끌려갔다. 무엇이 그렇게 슬펐을까. 무엇이 그토록 절망스러웠을까. 감정의 뿌리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고통스러웠다.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와서도 그 기억은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마치 오래된 필름을 정밀하게 현상하듯, 흐릿했던 장면들이 점차 윤곽을 되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의 실마리를 따라, 잊고 지냈던 또 다른 장면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가장 먼저 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수 언니. 다섯 살 위였던 언니는 그 시절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예민하고 반항적이었고, 부모님과 자주 충돌했다. 특히 아버지와는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방 안에서 보내거나 밤늦게까지 밖을 떠돌았다.
어머니는 늘 언니 걱정에 잠들지 못했다.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밤새 불을 켜두고 기다렸고, 언니가 날 선 말투로 대들면 길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본 나는, 나만이라도 착한 딸이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어머니를 더 힘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마음속을 깊게 지배했다.
아버지는 언니의 행동에 대해 거의 말이 없었다. 때때로 화가 난 듯한 표정을 지을 때도 있었지만,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법은 없었다. 오히려 그 침묵이 더 무서웠다. 폭풍이 오기 직전의 고요처럼. 그러나 그 고요는 끝내 폭발로 이어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점점 더 조용한 사람이 되어갔다.
집 안의 분위기는 나날이 무거워졌다. 식사 시간은 줄어들었고, 겨우 모인 자리에서도 대화는 거의 없었다. 언니는 밥을 대충 먹고 자리를 떴고, 아버지는 신문을 펼친 채 말없이 식사했다. 어머니는 여전히 언니 걱정만을 반복했다. 나는 그런 분위기를 바꿔보려 학교 이야기를 꺼내보기도 했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친구와의 이야기는 아무 반응도 끌어내지 못했다. 가족에게는 언니의 문제가 전부였고, 내 이야기는 한없이 사소하고 하찮게만 느껴졌다. 나는 점차 말을 줄였다. 내 말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족이 신경 쓸 존재가 아니라는 자각이 생겼다. 대신 더 모범적인 아이가 되기로 했다. 성적을 잘 받고, 집안일을 돕고, 말썽 없이 조용히 지냈다.
하지만 언니는 점점 가족과 멀어졌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줄었고, 있어도 방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내가 말을 걸어도 대답은 무심했고, 때로는 아예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가족이라는 감각 자체를 지워버린 사람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 밤, 언니와 부모님이 크게 다투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언니가 늦게 귀가한 일이 발단이었거나, 아니면 성적 문제였을지도 몰랐다. 언니의 성적은 계속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나는 방 안에서 싸움 소리를 들었다. 언니의 날카로운 외침, 어머니의 억눌린 울음, 그리고 낮고 무거운 아버지의 목소리가 뒤엉켜 들려왔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귀를 막았지만, 그 소리는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다음 날부터 집 안은 더욱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언니는 아예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어머니는 매일 밤 언니를 기다리며 잠들지 못했다. 아버지는 더 말수가 줄었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막연한 책임감을 느꼈다.
하지만 열두 살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저 더 조용히 지내고, 더 얌전하게 행동하며, 더 좋은 성적을 받아 자신이 문제없는 존재임을 증명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야 가족이 나 때문에 더 걱정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진짜 감정을 숨기기 시작한 것이······ 슬퍼도 슬프다고 말하지 않았고, 무서워도 무섭다고 하지 않았다. 이미 가족은 충분히 힘들어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까지 힘들다고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마음을 지배했다. 그래서 나는 늘 괜찮다고 말했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으며, 그렇게 내 감정을 봉인하기 시작했다.
언니가 집을 나간 지 일주일쯤 되었을 무렵, 어머니는 결국 경찰서를 찾았다. 가출 신고를 접수하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고등학생 가출은 흔한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며칠 안에 돌아올 거라며, 조금만 더 기다려보라는 말만 덧붙였다. 어머니는 그 말을 믿으려 애썼지만, 마음속의 불안은 날이 갈수록 깊어져만 갔다.
아버지는 그때도 침묵을 지켰다. 회사에서 돌아온 후에는 말없이 신문을 펼치거나 텔레비전 앞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언니 이야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고, 어머니의 불안한 얼굴을 마주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치 언니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인 양 행동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낯설고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언니가 사라졌는데 왜 걱정하지 않는 걸까. 왜 찾으러 나서지도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까. 마음속에 수많은 의문이 떠올랐지만, 감히 물어볼 수 없었다. 아버지의 침묵은 어른스러워 보이기보다는 너무 무거웠고, 가까이 다가가면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을 안겼다.
어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언니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언니를 봤는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지를 다급하게 물었다. 그러나 누구도 언니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어도 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는 그들을 어색하게 만들었고, 대화는 늘 허무하게 끝났다.
학교에서는 언니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가출했다는 이야기부터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린다는 말,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까지. 그 모든 말이 언니를 점점 더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내 가슴은 저릿했고, 자꾸만 숨이 가빠졌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항변하지 못했다.
친구들이 언니에 관해 묻는 일이 잦아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곧 돌아올 거라고, 별일 아닐 거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말끝마다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고, 친구들도 내가 그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집 안에서는 언니의 빈자리가 점점 더 선명해졌다. 언니의 방은 손대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두었지만, 가족 누구도 그 문을 열지 않았다. 식탁에서도 언니의 자리는 언제나 비워졌고, 그 빈 의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압박이 되어 우리 모두를 짓눌렀다.
어머니는 점점 더 예민해졌다. 작은 소리에도 놀라고,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언니일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급하게 수화기를 들었다. 하지만 언니의 전화는 끝내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매일 밤 언니의 방문을 조심스레 열어보았고, 그 안에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는 나는 점점 더 조심스러워졌다.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더 걱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굳어졌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괜찮다고 말했고, 몸이 아파도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 보였다. 언니가 사라진 자리를 나라도 메워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몫이 아니었다. 나는 언니처럼 당당하지도 않았고, 자유롭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솔직하지 못한 아이였다. 결국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단 하나뿐이었다. 내 존재감을 가능한 한 줄이는 것. 말썽을 피우지 않고, 조용히 생활하며, 부모님의 신경을 끌지 않는 아이로 남는 것. 그것이 내가 선택한 최선이었다.
어느 날 밤, 부모님이 잠든 틈을 타 언니의 방에 들어갔다. 방 안의 것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연필, 침대에 앉아 있는 인형, 옷장 안에 정리된 옷들. 마치 언니가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처럼 그대로였다. 그러다 서랍 안에서 일기장을 발견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그것을 꺼내 펼쳤다.
일기장 속에는 언니의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부모님에 대한 원망, 학교생활에 대한 짜증, 친구들에 대한 실망과 분노. 모든 문장은 날것 그대로였고, 거침없었다. 어른들 앞에서는 절대 드러낼 수 없던 속마음들이 또박또박 기록되어 있었다. 나는 그 글들을 읽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그날 밤, 나도 일기를 써보려 했다. 하지만 몇 줄을 채 쓰기도 전에 손이 멈췄다. 할 말이 없었던 게 아니었다.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고, 그래서 도저히 쓸 수 없었다. ‘보고 싶다’, ‘아프다’, ‘외롭다’라고 적고 싶었지만, 그런 말조차 죄책감을 안겼다. 그래서 결국 나는 이렇게 썼다. ‘오늘도 괜찮았다.’ ‘별일 없었다.’ ‘모든 것이 좋았다.’ 그러나 그 말들은 마치 남의 일기장을 베낀 것처럼 낯설고 공허하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나는 두 개의 자아를 가지게 되었다. 하나는 진짜 나였다. 언니를 그리워하고, 외로움을 느끼며, 어른들 틈에서 겁을 내던 자아. 다른 하나는 겉으로만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언제나 밝고, 문제가 없어 보이며, 말없이 모든 것을 감내하는 아이. 시간이 흐를수록 겉모습의 내가 점점 더 자리를 넓혀갔고, 진짜 나는 마음 깊은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그 자아는 안전했고, 통제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부모님에게 사랑받기 쉬운 얼굴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 안의 진짜 목소리를 덮은 채, ‘괜찮다’라는 말로 하루하루를 채워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내 안에 또 다른 자아가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희미해졌다.
언니가 사라진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가족은 더 이상 언니에 대해 말하지 않게 되었다. 마치 조용히 합의라도 한 듯, 언니의 존재는 대화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것만이 우리가 이 삶을 버텨낼 수 있는 유일한 방식처럼 보였다.
언니가 사라진 지 두 달째 되던 날, 나는 학교에서 상을 받았다. 모범 학생상이었다. 성적이 우수하고, 품행이 단정하며, 선생님의 지시에 잘 따르는 학생에게 주어지는 상이었다. 시상식 내내 나는 밝게 웃으며 상장을 받았고, 교실 안은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그 상장을 어머니에게 건넸을 때, 어머니의 반응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축하한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그 말에 진심이 담겨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어머니의 마음은 여전히 언니에게 머물러 있었고, 내가 아무리 잘해도 언니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도 상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을 뿐, 대단하다거나 자랑스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무표정한 반응에 실망했지만, 그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실망했다는 감정조차 드러내는 일이 죄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상장을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 자랑스럽게 벽에 붙일 수는 없었다. 가족이 기뻐하지 않는 상장을 드러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대신 더 열심히 공부하기로 다짐했다. 다음에는 더 큰 상을 받아서, 이번엔 꼭 가족을 기쁘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학교에서는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나를 다른 학생들의 본보기라고 치켜세웠고, 친구들은 항상 착하고 믿을 수 있는 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말들이 내게는 공허하게만 들렸다. 가족이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칭찬도 별 의미가 없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언니의 행방을 쫓고 있었다. 언니의 친구들을 계속 찾아다녔고, 언니가 자주 가던 장소들을 되풀이해 확인했다. 실종자 가족 모임에도 빠짐없이 참석했고, 집에 있을 때조차 마음은 늘 언니에게 가 있었다. 내가 말을 걸어도 대답은 늘 건성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점점 더 늦게 귀가했다. 회사 일이 바빠졌다고 말했지만, 나는 아버지가 집이라는 공간 자체를 피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언니의 부재, 어머니의 불안, 무거운 침묵이 가득한 거실. 아버지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가족이 함께 모이는 시간은 점차 사라졌다. 저녁 식사도 각자 따로 하게 되었고, 식탁은 점점 비어갔다. 어머니는 걱정에 식사를 거르기 일쑤였고, 아버지는 늦게 들어와 혼자 밥을 먹었으며, 나는 조용히 나 혼자 밥상을 치우는 일이 익숙해졌다.
어느 날, 학교에서 친구 하나가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요즘 무슨 일 있냐고, 내가 평소와 다르게 보인다고. 그 말에 나는 순간 당황했다. 그렇게 조심조심 행동했는데도 내 안에서 감춰온 것들이 새어나갔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나는 급히 웃으며 아무 일도 없다고 말했다.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눈빛은 여전히 의심스러워 보였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철저하게 연기에 몰두했다. 학교에서는 항상 웃는 얼굴을 유지했고, 친구들과 있을 때는 유쾌하게 대화에 참여했으며, 선생님 앞에서는 누구보다도 적극적이고 밝은 학생처럼 행동했다. 집안 사정이 드러나는 일은 절대 없도록, 내 감정을 완벽히 조율하고 조심스럽게 포장했다.
하지만 연기가 반복될수록, 진짜 감정과 가짜 감정의 경계가 흐려졌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정말 기쁜 건지, 아니면 기쁜 척하는 건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괜찮다’라는 말을 내가 정말 믿고 있는 건지, 아니면 반복해서 믿으려 애쓰고 있는 건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가끔 내게 물었다.
“학교는 재미있니?”
“친구들이랑은 잘 지내?”
나는 늘 같은 미소로 대답했다.
“응, 재미있어. 잘 지내고 있어. 아무 문제 없어.”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어김없이 안도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 표정을 바라보며 속으로 조용히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괜찮은 아이여야 한다고, 어머니를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죄책감보다 안심시켰다는 안도가 더 커야 한다고 되뇌었다.
그래서 더욱 완벽해지려 애썼다. 성적은 더 올리고, 행동은 더 단정하게 만들었으며, 웃는 얼굴도 더 자연스럽게 다듬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라 믿었다. 가족을 위해, 무너진 일상을 지키기 위해, 나는 계속해서 괜찮은 아이로 남아야 했다.
언니가 사라진 지 반년쯤 되었을 때, 집 안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누구도 더 이상 언니를 기다리지 않았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애초부터 세 식구였던 것처럼 일상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고요한 일상 아래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천천히 썩어가고 있었다. 말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가릴 수 없는 냄새였다. 그 무언가는 아주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를 갉아먹고 있었다.
어머니는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모든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관심이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것은 집착에 가까웠다. 성적과 친구 관계, 하루 일정과 약속 하나까지 어머니는 모두 알고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 마치 나마저 곁에서 사라질까 봐, 또 다른 상실이 언제라도 찾아올까 봐, 끊임없는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 어머니의 시선은 점점 더 커다란 부담이 되었다. 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걱정 섞인 말들이 쏟아졌고, 친구와 약속이 생기면 불안한 얼굴로 시간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귀가가 조금만 늦어져도 어머니는 어디에 있었는지, 누구와 있었는지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나는 마치 보이지 않는 감시 아래 놓인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나는 어머니를 이해하려 애썼다. 언니를 잃은 충격이 어머니를 그렇게 만들었을 거로 생각했고, 그 불안에 공감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동시에 숨이 막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작은 실수조차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언제나 완벽해야 했고, 언제나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어머니가 나에게 과하게 집착한다는 걸 알고 있는 듯 보였지만, 어떤 개입도 하지 않았다. 어쩌다 한 번 어머니의 행동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는 피로감이 스쳤지만, 그뿐이었다. 아버지는 더 이상 가족 문제에 손대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며 나는 서운함을 느꼈다. 어머니를 말려 주기를, 적어도 내 편이 되어주기를 바랐지만, 그 바람은 결국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이 집 안의 공기는 너무 조심스럽고, 너무 복잡해서, 어느 하나라도 잘못 건드리면 무너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날 밤, 어머니가 내 방에 들어왔다. 불이 꺼지지 않은 것을 보고는 걱정된다는 말과 함께 이불을 덮어주었다. 나는 평소처럼 웃으며 곧 잘 거라고 대답했고, 어머니는 안도의 표정을 지은 채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하지만 나는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이불을 덮은 채 천장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생각에 잠겼다. 과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언제까지 완벽한 딸을 연기하며 살아야 할까. 언제까지 감정을 숨기며 살아야 할까.
그러나 다른 선택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았다. 지금 와서 진짜 내 모습을 보여준다면, 어머니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지금까지의 모든 웃음과 말들이 연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진실은 너무 낯설고, 너무 위험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거짓이 더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그날 밤, 조용히 확신하게 되었다. 진짜 내 모습은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다는 사실을. 그것은 너무 위험했고, 너무 이기적이며, 무엇보다 타인에게 감당시키기엔 너무 무거운 일이었다. 나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이 감정을, 누군가에게 전가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편을 선택했다. 그게 모두를 위한 길이라는 믿음이 들었다.
내가 괜찮은 아이로 남아야만 하는 이유는 이제 너무 많아졌다. 그 믿음이, 내 삶을 떠받치는 유일한 구조가 되어있었다.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 나는 더욱 철저하게 모범적인 학생이 되었다. 학급 반장을 도맡았고, 학생회 활동에도 빠지지 않았다. 성적은 늘 상위권을 유지했고, 선생님들의 신뢰 역시 깊어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은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공허했다.
그건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어서 한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한 일이었고, 가족의 평온을 지키기 위한 역할이었다. 정작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원하며,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항상 침착하고, 예의 바르며, 공부까지 잘하는 나를 우러러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 부러움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들이 부러워하는 게 대체 무엇일까. 이 무거운 짐을? 끝없이 반복되는 연기를? 누군가의 기대 속에 갇혀 있는 이 삶을?
집에서도 나는 여전히 완벽한 딸이었다. 어머니의 모든 질문에는 늘 ‘괜찮아’, ‘좋아’, ‘재미있어’라는 대답이 반사적으로 흘러나왔다. 감정을 담지 않은 그 말들은 점점 습관이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말들의 의미를 곱씹지 않게 되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가끔은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끝내 어떤 말도 건네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 것이 서로를 보호하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말을 꺼내는 순간,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우리 사이를 오래도록 지배하고 있었다.
지역에서 가장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어머니는 정말 기뻐했다. 친척들과 이웃들에게 자랑했고, 축하의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기쁘지도, 뿌듯하지도 않았다. 그저 정해진 과제를 수행한 것에 불과했다. 해야 할 일을 해냈을 뿐이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나는 계속 최고여야 했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었다. 숙명처럼 주어진 일이었다. 내 의지로 정한 길이 아니라, 외부의 기대가 정해놓은 선로 같았다. 나는 그 위에서 흔들림 없이 걸어야만 했다.
어느 날 밤,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던 중 문득 창밖을 바라보았다. 밤하늘에는 별이 떠 있었고, 창틀 너머의 풍경은 조용하고 아름다웠다. 그 순간 오랜만에 언니 생각이 났다. 지금 어디에 있을까. 무사할까. 아니면 이미 이 세상에 없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이상하게도 특별한 감정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움도, 슬픔도 없었다. 그냥 단순한 궁금증만이 남아있었다. 언니라는 존재는 내 안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하나의 ‘기억’으로만 남아있었다. 감정을 일으키기엔 너무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정말 모든 것이 어긋나기 시작한 건, 언니가 사라진 날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진짜 어긋나기 시작한 날은, 내가 언니의 존재를 내 마음속에서 지워버리기로 결심한 그 순간이었다. 나 자신을 포기하기로 했던 바로 그날부터였는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나는 더 이상 ‘이현’이 아니었다. 나는 누군가가 원하고, 바라고, 기대하는 인물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변신은 내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던 길처럼 진행되어 갔다.
나는 점점 더 정해진 틀 안에 갇혀갔고, 그 틀을 스스로 굳건히 붙잡았다. 진짜 나로 사는 일보다, 누군가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는 일이 더 쉬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