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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부모가 비혼 자식을 만들까?

비혼주의자 못된 아들

by 캉생각

솔직히 말하면 나는 두렵다.

내가 비혼을 선택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으레 나의 과거를 짐작하며

"가족이 화목하지 않았나 보네."라든가

"부모님의 결혼 생활이 불행했나 봐?" 할까 봐.


부인하고 싶지만, 굳이 부정하지 않겠다. 완벽하진 않았다. 그런데 오해하기 전에 얼른 덧붙이자면, 우리 모두가 저렇다. 우리는 모두 '보통'이라고 불리는 행복과 불행을 넘나 든다. "우리 집은 365일 행복하기만 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집은 단언컨대 단 한 집도 없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 부모님은 나쁜 부모가 아니었다. 오히려 좋은 부모였다.

성실하셨고, 책임감 있으셨다. 사회가 보기엔 충분히 보통 이상의, 번듯한 가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가치관의 차이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명절이 지나면 어김없이 사소한 일로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을. 서로를 답답해하는 눈빛들을. 그리고 그것은 꼭 그날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보이는 세상도 있었다.

자녀에게 한없이 냉랭하던 이웃집 아저씨.

평일 낮, 거실에 무기력하게 앉아 계신 친구 아버지와 그 등 뒤로 악을 쓰던 친구 어머니.

이혼을 했다고 학교에서 수군거림을 듣던 선생님.

"웬만하면 결혼은 하지 마"라고 농담을 던지는 선배.

이 다양한 보통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디든 모양만 바꿔가며 존재했다.

드라마나 영화 속 결혼만 아름다웠다.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그래, 내가 예민한 것은 안다. 하지만 이것은 예민함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나는 결혼의 나쁘지 않은 케이스에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다만 '결혼'이라는 제도가 인간을 어떻게 묶어두는지, 함께 산다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관찰한 사유의 문제다.


완벽한 사람은 없고, 완벽한 관계도 없다.

아무리 사랑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두 타인이 한집에 산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마찰열을 발생시킨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인간관계의 물리학이다.


어리고 순수했던 어머니와 막 사회에 뛰어들어 가장이 된 아버지, 부모님은 잘못한 게 없다.

부모님은 최선을 다했다. 더 노력했어야 하는 게 아니다. 더 사랑했어야 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타인에게 맞출 수 있는 임계점이 있다. 문제는 그 임계점을 넘어서까지, 평생을 맞추라고 강요하는 이 제도에 있다.


"나쁜 부모가 비혼 자식을 만들까?"

아니다. 보통의 부모와, 관찰하는 자식이 만났을 뿐이다.

세상도 잘못한 게 없다.

그저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이렇다는 것을 조용히 목도했을 뿐이고, 행동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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