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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체이탈(OBE)

by 꽃피네

우리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내면이 드러났을 때 수치심을 느낀다. 병상의 환자들도 그러하다.

수술 전 반드시 겪어야 할 홍역과도 같은 절차가 있다면 여자 간호사가 환자들의 항문에 직접 좌약을 넣고 강제 배설시키는 에네마일 것이다.

물론 항문성교를 즐기는 게이나 양성애자들이라면 저 여간호사의 라텍스 장갑 낀 촉감과 자신의 항문에 삽입해 들어오는 글리세린에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보통 수술을 앞둔 남자 환자라면 의료 행위일지라도 에네마가 주는 부정적 감정인 수치심을 피할 수 없다.

2025년 3월 27일,

다음날 수술이 예정된 중환자실 골절 환자라면 전날 저녁을 금식하고 밤에는 반드시 관장을 해야 했다.

이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6일째 되는 3월 28일은 내 오른발목 삼복사 골절, 우측쇄골 골절, 우측 고관절 대퇴부 경부 및 간부골절 수술 예정일이었다.

밤 9시, 간호사들과 보호자 및 간병인이 골절수술이 예정된 환자 3명을 메디컬 스트레처에 태워 관장실로 데리고 갔다.

관장에 앞서, 간호사가 원활한 수술을 위하여 반드시 3번씩 관장을 해서 몸속에 든 모든 음식물 찌꺼기를 비워야 한다고 설명을 했다.

이어 연변에서 온 간병인이 내 몸을 옆으로 뉘고, 어머니 뱃속에 든 태아처럼 등을 구부리자, 의료용 고무장갑을 낀 여자 간호사가 다가와 매끈한 느낌의 글리세린을 항문 속으로 쑥 집어넣었다.

"10분 동안 항문을 꽉 조이고 있어요" 여자 간호사가 지시했다. 나는 창피해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입원하고부터 지금까지, 며칠 동안 먹은 것이라고는 고작 카스테라 몇 개뿐이니 관장할 게 있나 모르겠어요"라고 하며 간병인이 일회용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내 항문을 막는 것이 아닌가.

환자들은 모두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한데, 오직 그들의 아내며 직업적인 간병인의 수다를 떠는 소리가 관장실에 메아리쳤다. 메아리의 울림이 크면 클수록 우리는 움추러들었다.

타인에 의해 존엄성이 무시되었을 때, 느끼는 깊은 부정적 감정인 수치심과 모멸감이 내 깊은 곳에서 기어 올라왔다.

문득, 한 번의 에네마도 이럴진대, 이런 에네마를 밥 먹듯이 하는 샌프란시스코의 무지개 족속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관장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타고난 성별은 남자이면서도 갖은 아양을 다 떨면서, 애널섹스를 하기 위해서 항문에 물호스를 집어넣고, 거울 속에 비친, 꼬리 달린 원숭이로 변한 자신들의 모습을 보며 에네마를 하는 기분들은 어떠할까 그런 상상을 했다.


1991년 초여름 시카고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간 적이 있다. 당시 세계에서 제일 높은 108층 시어스타워 빌딩 전망대에 서서 내려다보니, 만사가 다 시시하였다.

요트를 싣고 오대호로 나가지를 않나 격자식으로 만든 지하도로를 교통체증 하나 없이 달리지를 않나 미국은 모든 것이 차고 넘치는 딴 세상이었다.

시카고의 초여름 공기는 따뜻하였고, 끈적한 바람은 오대호에서 불어오는 물 냄새를 싣고 있었다.

오헤어 공항에서 내려 호텔 방에 짐을 풀고 도심을 활보하는데, 미시간 호수로 떠나는 반짝이는 요트들이 트레일러에 실려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시어스 타워는 도심에서 하늘을 찌르며 서 있었고, 그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도시는 끝없는 가능성의 바다 같았다.

나는 꿈을 꾸었다. 바람이 날렵한 요트의 돛을 부풀리며, 햇빛은 물 위에서 춤췄다. 사람들은 가벼운 옷차림에 여유스러웠다. 미국, 그 풍요로운 땅에서, 모든 것이 손에 닿을 듯했다.

시카고의 거리거리마다 그들이 새운 갖가지 마천루처럼 새 기회가 숨어 있었고, 나의 심장은 그 빛나는 미래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시카고는 건축물의 메카답게 서로 닮은 빌딩이 하나도 없었다. 저마다의 매끈한 스킨과 늘씬한 자태를 뽐내는 아름다운 빌딩 숲이 도시 전체를 덮고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범죄와 갱단의 역사를 가진 도시 중 하나인 시카고.

19세기 후반부터 이민자 그룹들이 형성한 작은 조직에서 시작해, 1920년대 금주법 시대 알 카포네와 같은 인물이 이끄는 시카고 아웃핏 같은 갱단이 이 아름다운 도시의 어둠 속에서 기생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서울의 단조롭고 성냥갑 같은, 나지막한 잿빛 빌딩만을 봐 온 나로서는 너무나 큰 문화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눈으로만 시카고를 담았다.

나는 별천지를 본 것이다.

빌딩들이, 그것들이 왜 거기에, 그 모습으로 서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건축의 도시를 볼 때의 문화충격으로, 그때부터 나는 더 이상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없었다.

그래서 시카고 여행 이후 지금까지 통틀어서, 여권 증명용 사진 등을 포함해서 내 얼굴을 찍은 사진이 10장도 채 되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는 시카고와는 달랐다.

나지막한 건물들과 언덕배기, 시당국이 운영하는 지상철, 트롤리버스, 바다사자, 성소수자 LGBTQ+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34년 전, 나는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 서서 까마득한 해수면을 내려다보았다. 과연 자살성공률 100프로에 걸맞게 물색이 새파랗다 못해 검었다.

다리 색깔도 금문교가 아니라 홍문교였다. 기대했던 금빛이 아니라 아치며 주탑도 광택이 없이 그저 붉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오클랜드로 가는 베이 브리지를 통과하기 전, 카스트로 거리를 지날 때 언덕배기 집집마다 내건 수많은 무지개 깃발을 보았다.

"오늘 무슨 국경일이나 축제날인가요?" 일행에게 이렇게 물으니,

"저건 무지개 깃발이라고 항문 섹스하는 애들이 달아놓은 깃발인데 나 동성연애자요 하고 광고하는 거지요. 무지개 깃발 있는 집은 죄다 동성연애자들 집이라네요"라고 일행 중 박학다식한 이가 대답해 주었다.

"똥 냄새나는데 더럽게 거기다 합니까?"

"물로 관장하고 하는 모양인데 그래도 그렇지 남자들끼리 동거하며 그 짓을 한다니 나도 저런 깃발 처음 봅니다"

"자들 말조지(Grorge)인데 똥구멍 안 찢어집니까?"

"아니, 제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똥구멍이 화장실이니 거기다 싸는 거겠지요. 영어 조지는 화장실이란 뜻도 있는 가 보더라고요"

우리는 똥구멍이 찢어지겠다느니, 관장하면 똥냄새가 난다 안 난다느니, 시카고 펜트하우스 클럽에서 본 클럽녀의 딜도가 호강하겠다느니, 콜라병도 집어넣고 성에 안 차면 주먹으로 피스팅을 한다느니, 쟤들은 2세 생산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니 식구가 늘지 않아 좋겠다느니 그런 망측한 얘기들을 하며 낄낄댔다.

지금에 와서도 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때 샌프란시스코 언덕배기에 내걸렸던 LGBTQ+의 깃발은 무지개가 아니라 빛 좋은 개살구였다고 말이다.

오르가슴을 이끌어내는 데 있어 가성비 끝내주고, 둘이 하는 자연 피임의 자위행위 방법이 동성애 성교가 아닌가 싶었다.

LGBTQ+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을 거부하는 성소수자들이 아니고, 피임하지 않아도 되고, 임신과 출산, 육아의 책임도 지지 않고 정욕을 발산하려는 무능력하고 퇴폐적인 도피자들이라고 생각하였다.

환자들과 게이나 양성애자들의 에네마는 의료 행위와 성적 행위라는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발생하는 수치심과 기대감이라는 서로 다른 복잡한 감정을 유발한다.

수술 전 관장은 환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필수적인 의료 행위이다. 이 상황에서 환자가 느끼는 수치심은 자신의 결점이나 약점이 타인에게 노출되었다고 느낄 때 발생하는 감정이다.

관장은 환자의 가장 은밀하고 사적인 신체 부위인 항문을 노출하게 하고 자극하는 행위이다.

그렇기에 환자들은 비록 의료행위일지라도, 관장할 때 자신의 성적 프라이버시가 침해당했다고 느끼며 강한 수치심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제니 내가 환자 할게. 네가 장갑 끼고 글리세린을 넣어 봐. 시디크 너네들은 내 똥구멍을 10분 동안 잘 막아"

"마르코! 정말 엉덩이를 깔 거야? 언제 씻었는데?"

"심장 수술 실패로 죽은 후론 한 번도 안 씻었지 머"

"에라이 팔푼아! 네 냄새나는 똥구멍을 우리더러 만지라고?"

"그나저나 게이들은 항문에다 하면 느끼긴 느끼는 거야?" 제니가 궁금하다는 듯이 라비에게 물어보았다.

"남자들은 전립선이란 게 있어서 항문성교를 하면 여자의 질 오르가슴처럼 강렬하게 느끼는 남자들도 있대.

반면 여자들은 기분만 약간 업 될 뿐 항문으로 느끼는 사람이 거의 없대나 그래. 저 자식들은 에이즈도 겁 안 나나 봐. 그리고 어디 에이즈뿐이겠어?

자궁경부암과 항문암의 주요 원인이 되는 HPV 인두유종 바이러스에, 매독에, 임질에, 클라디미디아에, 항문 주변의 쓰라린 수포에 애널섹스 좋아하다간 골로 가기 쉽지.

그리고 양성애 하는 녀석들은 여자들 항문과 질에 번갈아가며 삽입하기 때문에 아주 위험하거든"

라비의 명쾌한 답변에 제니가 큼직한 자신의 엉덩이를 두들기며 말했다.

"아무튼 추접스러운 녀석들이야. 이렇게 예쁘고 토실한 질을 놔두고 항문에다 쑤셔댄다니 기가 막혀!"

환자는 관장 과정에서 능동적인 주체가 아니라 단순한 의료 조치의 대상으로 자신이 관장을 당하는 수동적 객체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여자 간호사에게 좌약을 삽입당하고, 아내도 아닌 생면부지의 여자 간병인이 자신의 항문을 10분 동안 막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관장은 자신의 신체 하나도 통제할 수 없는, 자율성을 완전히 상실한 환자의 자존감과 존엄성을 일시적으로 훼손하는 의료 행위이다.

반면 게이들의 관장 행위는 빈번하며 능동적이다. 게이 커플이 애널 섹스 전 청결을 위해 관장을 하는 행위는 성적 쾌락을 위한 준비 과정이며, 그 감정적 맥락은 의료적 상황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게이들의 관장 행위는 자율적 선택으로써 친밀감과 신뢰를 공유하며, 성적 쾌락에 대한 기대로 수치심이나 모멸감은 동반하지 않는다.

아무튼 게이들이 늘 하는 관장을, 움직이지 못하는 중환자인 내가, 그것도 남의 손에 의해서 엉덩이를 발라당 까고 3번씩이나 관장을 해야 했다니 매우 유쾌하지 못한 수치스러운 경험이었다.

"뿌지지직" 참으로 민망하였다. 욕쟁이가 제일 먼저 터뜨렸다. 그의 아내가 그를 위해 걸친 귀여운 딸기팬티가 영험한 모양이었다.

이어 전등남도 이고녀가 그의 항문을 막은 손을 떼자, 설사처럼 에네마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아이 우리 검둥개 시리우스, 참 수고 많으셨어요. 어쩜 이리 냄새도 고소할까! 언니네도 다 끝났는 모양이죠?"라고 하면서 이고녀는 무슨 귀여운 아기를 다루 듯 전등남의 엉덩이를 토닥였다.

"우리야 늘 이런 일엔 범생이지. 아까 뿌지직 소리 못 들었어? 하여튼 동생네는 알아줘야 해. 우리가 졌다 졌어! 서방님 똥냄새까지도 고소하다니"

"언니도 참! 언니의 딸기무늬는…"

이고녀는 말꼬리를 흐리면서 딸기의 귀에 대고 무슨 말인가를 속삭였다.

"언니의 딸기팬티 말이에요. 관장시키는 데는 우주 최강이라면서요. 대목수 아저씨는 좋겠어요. 호호"

그녀들의 말투로 미루어 보아, 딸기와 이고녀도 이미 매우 친해진 모양이었다.

이렇게 이고녀도, 딸기도, 간병인도 다들 냄새가 심하다고 떠들어댔지만 교통사고 후, 나는 어떠한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밤 11시가 되어서야 겨우 관장을 마치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왔다. 에네마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던 창피한 그때 심정을 어떻게 형용할 방법이 없었다.


2025년 3월 28일 아침 8시 20분이 조금 지나자, 몸에서 빠져나온 영혼이 수술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알라딘의 요술램프의 요정처럼 나의 넋은 현세하여 내 몸의 수술현장을 잠시 지켜보았다.

앞으로 외계인 복장의 수술 가운을 착용한 조선대학병원 정형외과 의사와 간호사, 방사선과가 팀을 이루어 내 육체적 생명을 다룰 것이다.

수술실은 밝고 무균적인 환경 아래, 강한 무선 헤드라이트가 내 고관절 부위를 집중 조명할 것이며, 백그라운드 음악처럼 심박 모니터의 규칙적인 비프 소리와 기계들의 윙윙거림도 울릴 것이다.

내 육체는 전신 마취 상태로 수술 테이블 위에 누워 있을 것이며, 수술 부위인 오른쪽 고관절과 대퇴부를 노출한 채로 무균 드레이프 천으로 몸 전체가 덮일 것이다.

내 다리는 견인 테이블에 고정되어 골절 부위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며, 수술 중 이동형 엑스레이 장비인 씨암(C-arm)이 실시간으로 영상을 제공할 것이다.

집도의는 이 영상을 보면서 피부 절개를 시작하고, 근육을 분리하며, 골절 조각을 정렬한 뒤, 금속 핀이나 나사를 삽입하여 고정하는 대퇴경부 골절의 표준인 내고정술을 시행할 것이다.

그들은 고관절 대퇴부 골절 수술이 끝나면, 우측 발목. 삼복사 골절 수술과 우측 쇄골 골절 수술을 이어갈 것이다.

이들 팀은 생명을 다루는 전문가들이다. 내 영혼이 이들을 지켜볼 필요도, 그럴 시간적인 여유도 없다.

이윽고 내 영혼은 너울너울 날아서 수술실을 벗어나 공간을 초월하였다.


아침 8시, 골절 수술 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나를 실은 병상 스트레처가 거울처럼 반질반질 비쳐 보이는 병원 복도를 미끄러져 갔다.

08시 20분, 정형외과 교수팀 3명이 집도의가 되어 내, 골절 수술을 시작하였다. 예상 소요시간 4시간의 대수술, 고관절 대퇴부 경부 및 간부 골절 수술 등 3군데에 걸친 큰 수술을 하게 된 것이다.

그전 같으면 전공의들을 네댓 명씩 대동하고 수술실에 나타났을 법한 집도의 교수들은, 한 명의 전공의도 없이 내 골절수술을 맡았다.

그 원인은 전공의들의 부재였다. 전공의들은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및 주 80시간의 노동에도 불구하고 최저시급에도 못 미치는 급여라는 아주 열악한 근무환경에 반발하여 다들 대학병원에서 떠났기 때문이었다.

그간 국내 대학병원 전공의들의 진료량은 대학병원의 진료량을 결정할 정도로 어마하게 많았다.

전공의는 대학병원 의료서비스의 주요한 축이다. 전공의는 병원 의료 서비스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인력이며, 이들의 이탈은 곧 의료 공백으로 이어져 환자들이 의료보험이 보장하는 양질의 서비스를 받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따라서 전공의의 안정적인 수련과 근무 환경 개선은 환자의 의료 서비스의 질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전공의 대란'으로 인한 의료 공백 사태를 조선대학병원도 비껴갈 수 없었다. 많은 병동들이 운영을 중단하였기에 정형외과 수술실로 오기까지 여기저기 복도 전등이 꺼져 있었다.

"관장 3번씩 했어요?" 집도의가 간호사에게 물었다. 간호사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이어 내게 수술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였고 마취가 시작되었다.


이제 바야흐로 몸은 잠들고 유체이탈한 영혼의 시간이 되었다. 어머니는 나의 근원이자 본질이었기에, 나는 제일 먼저 어머니를 찾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산소에 계시지 않았다.

생전에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두 자식을 먼저 보낸 한 많은 생을 사셨다. 그래서 돌아가시고도 허울뿐인 이 지긋지긋한 이승에 계실리가 없었다.

엘리시움에 가셨는지, 아발론에 가셨는지, 바라신 천국으로 가셨는지 우리가 모신 가족묘 산소에는 어머니의 어떠한 온기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생전의 함자를 새긴 대리석만이 싸늘했다. 묘비명들은 바닥돌에 반짝여서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였지만 조상님 또한 어느 한 분도 거기에 계시지 아니하였다.

나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동요 따오기를 불렀다.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따옥 따옥 따옥 소리 처량한 소리

떠나가면 가는 곳이 어디 메이뇨

내 어머니 가신 나라 해 돋는 나라"

이 동요 노랫말처럼, 내 어머니는 틀림없이 '해 돋는 나라'로 가셨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였다.

주인 없는 산소에는 우리 형제가 세운 시비만이 '때 되면 만나리라' 하며 덩그러니 서 있었다. 다들 해 돋는 나라로, 우주로 떠나신 모양이었다.


허물을 벗고 쉬는 곳 천국이구나

한없이 기쁘니 꽃들도 춤추네


하늘이 감동하여 복을 내리니

땅이 열리고 온 생명 살아나네

~~~~~~~~~~~~~~~~~


꿈같은 현상 무어라 할까

키워주신 은혜 가없는데


행복과 우애 가득한 이곳에서

오늘도 하신 말씀 생각납니다


우리가 흑대리석에 적은 시비석의 첫 4구는 망자가 된 조상님이 읊는 노래로, 편안하고 행복한 저 세상을 후손들에게 들려주고, 후반 4구는 그 노래에 답하는 후손 된 우리 산자가 조상님을 기리는 감사와 칭송의 노래였다.

내가 이토록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것은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 뿌리를 찾기에 목말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뵙지 못하자 언젠가는 나 자신이 눕게 될 산소를 떠나, 아내 펑샤오휘를 찾아 나섰다.

아내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우주 어딘가에만 있다면, 광속처럼 빨리, 서로 간에 작용하는 중력장처럼 아내가 끌려 나에게 오던지, 내가 아내에게 끌려가던지, 아니면 서로를 끌어당겨 만날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희망으로 백두산에 올랐다.

이곳은 아내가 가장 좋아했던 곳이다. 3월의 백두산은 호랑이나 어슬렁거리지, 사람이 오를 산이 아니었다.

회상하건대, 2008년 초여름, 나와 아내는 이 백두산을 올랐다. 철없는 아내는 어린아이처럼 1,442개의 계단을 통통거리며 뛰어 올라갔다.

숨을 헐떡이며 코를 씩씩 불면서, 아내는 저만치 먼저 가서 기다리다가, 나중에는 내 손을 질질 잡아끌었다.

요가로 단련된 튼실한 허벅지며 다리로 지치지도 않고 백두산을 잘도 올랐다. 지금은 나 혼자서 올라, 거기에 아내의 흔적이 있는지 찾아야 했다.

3월의 백두산은 아직 겨울이 한창으로 군데군데 눈 덮인 시커먼 석탄층의 크레바스가 아가리를 벌리며 버티고 있었다.

영산의 금역이라서 영혼이라도 그 위를 날아갈 수가 없었다. 돌아가보기도 했지만 또 다른 크레바스가 앞을 가로막았다. 어느새 저녁이 되고 별빛이 하늘을 수놓았다.

크레바스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진 나는 유령들 중 가장 현명한 라비 샤르마를 불렀다.

"가엾은 인간의 영혼이여! 이 크레바스는 마법이 통하지 않은 영산의 금역이라서 유령일지라도 날아서 건널 수 없고, 길도 없어 빙 돌아가야 하는데 어디 메로 가느뇨"라고 라비가 익살스럽게 물었다.

"살아생전에 아내를 한번 만날 수만 있다면 저 크레바스 아가리에 떨어진다 한들 무슨 원망이 있겠습니까" 하니 라비가 크게 웃었다.

"다 때가 되면 만나는 것을 어이해 이리도 서두르는가?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예스럽게 말했다.

그리고는 북서쪽 하늘에 걸려 있는 오각형 마차부자리의 작은 암염소인 카펠라를 가리켰다.

"푸어박의 아내는 저 별 카펠라에서, 아말테이아의 풍요의 뿔, 코르누코피아를 가진 염소를 키우는 목동이 되어 잘 있으나, 억지로 만나려고 하면 작은 염소의 젖이 마를 거야.

염소의 젖이 마르면 그녀는 그 벌로 눈이 멀고 벙어리가 되어 영겁의 지하세상 플루토에 떨어지고,

푸어박 또한 카론의 배를 타고 유령의 계단을 지나 플루토에 갇힐 거야.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만나고 싶어?"라는 설명과 함께 그가 되물으니,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지만 이내 부정의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라비는 플루토의 유령으로 지하세상과 이승을 떠도는 자신의 업-카르마를 나에게 처음으로 원망하였다.

내가 혼백이 되어서라도 만나고 싶은 여자가 있다면 바로 아내 펑샤오휘다. 두 번째로 다시 만나고 싶은 여인은 코델리아다. 마지막 여인은 요코이다.

그러나 한번 어긋난 인연은 이 세상에서는 다시 아니 만나는 것이 섭리다. 따라서 훗날 수명이 다해, 죽어 저 세상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그녀들과 나와의 연분이 끝났음을 받아들이니, 쏟아지는 눈물방울 방울마다, 그 속에 아내가 들어 있었다.

몇몇 눈물방울 속에는 상냥한 눈빛의 쌍꺼풀진 코델리아도 있었고, 팟츤 히메컷을 한 요코도 들어 있었다.

눈물방울은 흘러내리자마자 얼어붙었고 아내와 코델리아, 요코는 수많은 동그란 얼음 구슬 속에 갇혀 버렸다.

얼음구슬 속의 아내는 따스한 연보라 스웨터에, 바지 벨트라인 위까지 내려오는 두툼한 흰 털 코트를 걸치고, 손으로 뜨개질해 만든 풍성한 아이보리 목도리를 하고 있었다.

하의는 캐주얼한 청바지를 입었는데, 활동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끝부분을 목이 짧은 강렬한 빨간색 털장화 안으로 깔끔하게 집어넣은 모습이 생동감이 넘치고 발랄하였다.

코델리아는 허리선에 살짝 조임이 있어 너무 부해 보이지 않도록 디자인된 버건디 색상의 다운 패딩 코트를 입고 있었다.

코트 안에는 짙은 네이비색의 캐시미어 블렌드 니트를 입어 품격을 살렸고, 아래 옷은 편안하면서도 따뜻한 검은색 기모 레깅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녀는 발목까지 올라오는 털 안감의 스웨이드 앵클부츠를 착용하고, 금색 장식이 들어간 작은 핸드백을 들어 세련되고 안정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요코는 일본 여자답게 무릎 위까지 내려오는 캐멀색의 단정한 롱 코트를 입었고, 안에는 차분한 아이보리색 터틀넥 니트를 입어 포근함을 더했다.

아래는 깔끔하게 주름이 잡힌 짙은 회색 플리츠 스커트- 주름치마를 입고, 그 아래 검은색 스타킹과 갈색의 굽이 낮은 가죽 부츠를 착용하여 여성스러운 실루엣을 완성하고 있었다

그녀는 간호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활동성과 청결함을 중요시하는 듯, 전체적으로 과하지 않고 정돈된 차림이었으며, 어깨에 작은 크로스백을 매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 아내도, 코델리아도, 요코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 있다. 나는 젊어 죽은 아내나 헤어진 코델리아나 요코의 세월에 찌든 모습을 전혀 상상할 수가 없다.


"스물다섯의 울보는 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시들지 않는, 가장 찬란한 봄날의 꽃입니다.

2009년 2월 16일,

스물다섯에 멈춘 시간, 남아있는 내 시간은 그대와 함께 머물렀던 공간을 홀로 거니는 긴 산책과 같습니다.

햇살이 너무 눈부시면, 얼음 구슬이 녹아서 없어질까 봐 걱정합니다. 밤이면 행여 어디로 굴러 떨어질까 봐 걱정합니다.

그대가 떠난 후, '함께'라는 달콤한 말은 이제 '혼자'라는 쓸쓸한 의미가 되었습니다.

주인을 잃고 기능을 영원히 상실한 화장대의 거울처럼, 나의 시간은 그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멈춰 서 있습니다.

그대 없는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정지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대가 살다 간 스물다섯은 나에게 있어 짧은 '인생의 비극적인 완성'입니다.

구슬 속 울보는 삶을 꽃피우지 못한 채 소멸했지만, 그 미완은 역설적으로 내 안에서 완전한 형태로 남았습니다.

나는 이제 얼음구슬 안에 갇힌 그대의 '부재'를 받아들입니다. 그렇지만 그대가 사라진 이 세상은 본질적으로 균열된 세계이며, 나의 고통은 그 균열을 끊임없이 인식하는 데에서 발생합니다.

내 가슴속의 그리움이란, 그대가 얼음구슬이 되어 현실에서 상실되었음을 인정하는, 고독한 행위입니다.

구슬 속 미라가 된 그대는 내가 선택한 삶의 동반자이자 미래였습니다. 그때 같이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2025년 3월 28일, 백두산의 산 정상에서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는 산바람이 매서웠다.

3월 말이지만 이곳은 한낮에도 영하의 강추위가 계속되는 눈 덮인 한겨울로 내게서 봄은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제 슬픔을 털고 병원으로 돌아갈 때였다.

13시 08분, 3군데의 골절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로 이동한 나의 몸은, 유체이탈을 마친 넋이 다시 돌아옴에 따라 13시 40분, 메디컬 스트레처에 실려 병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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