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가 그렇게 떠나자 공주네 사람들은 다시 예전과 같은 평화로운 가정생활로 돌아갔다.
앵두가 전등남을 자기 남자로 만드는 과정에서, 그들은 전등남을 뺏기지 않으려고 모두가 나서서 이고녀의 작전을 적극 지지하고, 동참하였다.
공주네의 면역체계는 앵두라는 이질성 박테리아가 전등남의 신체에 침투하여 그를 숙주로 삼으려는 속셈에 본능적으로 저항하였을 뿐이다.
그것은 유전자에 각인된 '내림'을 지키고자 하는 종족 보존의 생존 본능에 기인한 것이었다.
지금 앵두의 가슴속 피는 파랬으나 그들의 피는 붉었다.
푸른 피의 여자와 붉은 피가 흐르는 남자 사이에서 하이브리드 우성 잡종 f1을 기대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고, 가능하다손 치더라도 어울리지 않은 조합이라고 간주하였기 때문이었다.
딸 같은 젊은 첩년을 안방에 들이는 앵두의 아버지나, 호스트바 남첩들을 키우는 천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앵두는 유전자의 내림 자체가 그들과 달랐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앵두가 비밀동아리의 여왕벌이 된 것도 그런 부모로부터 자유연애를 은연중 학습하고 간접적으로 체험한 필연적 결과였으리라.
3월 26일 4일째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쇄골, 고관절 대퇴부 경부 및 간부 골절, 삼복사 골절 수술을 이틀 후로 앞둔 몸이 뒷마당에서 놀고 있는 넋을 불러들였다.
삑삑 하는 규칙적인 경보임이 울리고 있었다. 그 소리는 밤중이라 더 크게 들렸다. 바이탈싸인 모니터가 계속 자기 좀 봐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 소리에 간병인이 몸을 일으켰다. 아마도 내가 무의식 중에 비강캐뉼라를 빼고 콧등의 상처를 긁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긁어놓으시면 어떡해요. 긁으시면 흉터가 더 크게 생겨요"
"근지러워서 긁으셨을 거예요"
경보음에 달려온 간호사가 나에게 긁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는데 간병인이 나서서 대신 해명해 주었다. 간호사도 간병인도 다들 낮고 듣기 편한 상냥한 말투였다.
간호사는 내 콧구멍에 프롱이 달린 비강캐뉼라를 끼우고,
"이제 심호흡해 보세요. 전에도 말씀드렸죠?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후 하고 내쉬는 거예요. 알았죠? 한 번 따라 해 보세요"라고 말한 뒤 입술을 모아 쭉 내밀면서 숨을 내쉬는 시범을 보였다.
이어 워키토키로 상황을 설명하니. 잠시 후, 다른 간호사가 처치카트를 밀고와, 상처부위를 소독하고 멸균거즈를 붙인 후 돌아갔다.
간호사던 간병인이던 모두들 나하고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잠을 못 자고 밤중에 수고를 다 하는 것은 꼭 돈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환자를 돌봐야 한다는 사명감이 몸에 배어 있어서 반사적으로 달려오고, 몸을 일으켰을 것이다.
내게 없어서는 안 될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간호사들이 돌아가고, 간병인도 몸을 눕히자, 나는 바이탈싸인 모니터에서 일정한 높낮이의 파형을 그리는 심전도(ECG) 그래프를 멀쩡한 왼손으로 따라 그리며 한참을 놀았다.
모니터가 나타내는 심전도 그래프의 파형은 내 심장의 전기적 활동을 측정하여 심장 박동의 리듬과 속도를 파악하기 위함인데, 나는 그것으로 혼자 장난을 치며 놀고 있었다.
심방이 수축할 때의 전기적 신호를 나타내는 낮은 P웨이브 파, 심장의 가장 큰 근육인 심실이 수축할 때의 강력한 전기적 신호를 나타내는, 가장 뚜렷하고 높은 파형의 QRS 복합체, 그리고 심실이 이완하고 재충전하는 전기적 신호를 나타내는 T웨이브 파의 세 가지 파형을 따라 그렸다.
내게는 놀이인 이 심전도(ECG) 파형을 가지고 조선대학교 병원 정형외과 의료진들은 각 파형의 모양, 높이, 간격 등을 분석하여 심장 박동의 규칙성, 심장 박동수, 그리고 부정맥이나 심근경색 등 심장 질환의 유무나 종류를 진단할 것이다.
"푸어박 재밌어?"
"응. 엄청 재밌어, 너희들도 한번 해볼래. 처음엔 손으로 해봤는데 너무 빨라서 못 따라가겠더라고. 그래서 지금 눈으로 따라 그리고 있어"
천장을 쳐다보니 마르코가 손으로 파형들을 그리고 있었다. 한 사람이 따라 하니 제니와 라비, 아이샤와 파티마 자매도 따라 그렸다.
"푸어박 원래 이렇게 혼자 잘 노는 거야?"
아이샤가 묻자,
"우린 늘 둘이 노는데 몸이 하나잖아" 파티마도 덩달아 말했다.
"어른이 돼서도 자라지 않는 피터팬처럼 혼자 잘 노는 어른도 있지. 그런 사람들은 고독사나 치매에 안 걸려. 푸어박은 마치 영혼이 자라지 않는 아이 같아. 너희들은 어떻게 노는데?"
아이샤가 내게 질문을 했는데, 라비가 대신 대답해 주고는, 아이샤와 파티마 시디크에게 되물었다.
"우리는 고개를 까딱거리면서 푸어박처럼 놀아. 얘는 동! 하고 동쪽으로 가는 시늉을 하고 한쪽 발을 옮기지.
그럼 난 반대로 서! 하면서 서쪽으로 몸을 움직이려고 해. 템포가 빨라지며 쿵쾅쿵쾅 마룻바닥에 번지는 소리가 재밌어. 때에 따라선 남! 북! 하면서 남북놀이도 하지. 우리는 이걸 '동서남북놀이'라고 해"
"말 되네 그건 꼭 한국의 '청개구리놀이'같구나. 너네들 놀이 그거 재밌겠다"라고 내가 그들의 놀이에 대해 고개를 끄덕였다.
"청개구리놀이?" 제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천정에서 나를 내려다봤다.
"제니야! 내가 낮은 소리로 개굴 하면 넌 소프라노로 깨굴 하는 거야. '개굴 깨굴" 노랫소리처럼 리듬감과 박자를 살리면 무한 볼타(volta음악용어 반복)가 되어 여자를 유혹할 수가 있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처럼? 팬텀이 자신의 지하 세게로 크리스틴을 유혹하는 "The Music of the Night 밤의 음악" 그런 아리아처럼?"
"엉 그래 만약 남자 둘이 한다면"
"그거 라비하고 마르코가 부른다면 재밌겠다. 밤의 어둠 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신비롭고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팬텀의 노래를 둘이서 바리톤으로 개굴 깨꿀 한다면"
"오! 제니가 이런 수준 높은 음악 광이었다니" 하며 내가 엄지척을 해주며 물었다.
"딸기네 하고 이고녀는 무엇들 하고 있어? 자?"
"쉿! 딸기팬티 다 닿겠다. 딸기는 백녀가 됐네. 깨끗한 민둥녀야.
이고녀는 새알 가지고 놀고 있어. 아예 누군가의 흔적을 지우려는 듯이 한 명은 아내가 꼼지락, 또 한 명은 남편이 꼼지락이야"라고 아이샤가 알려주었다.
"하여간 금슬들은 좋아. 내가 디오니소스의 찬가를 불러야지. 쟤네들 아이 가지도록!"
"안 돼! 여기서는! 절대 안 돼! 쟤네들 일 낼 거다. 뼈가 골절 됐는데 아주 아작 내려고 그러는 거야?
그리고 이고녀야 40이니까 괜찮다고 쳐도, 딸기는 48살인데 디오니소스의 찬가를 불러 임신시키면 네가 책임질 거야? 그리고 여긴 중환자실이라고!"
파티마의 맞장구에 놀란 라비가 얼른 제지하였다.
"에잉 영양 좋은 딸기나 이고녀는 괜찮아. 다들 30대 초반 같구먼 그래" 마르코가 좋은 구경 놓쳤다는 듯이 투덜댔다.
갑자기 두 대의 바이탈싸인 모니터가 삑삑! 삑삑! 하고 오페라의 유령 "밤의 음악" 아리아를 부르기 시작했다.
바로 옆 욕쟁이와, 중간에 있는 전등남의 모니터였다.
마르코가 나를 내려다보며,
"푸어박. 답답하다. 나가자. 곧 간호사들이 달려올 거야"
이에 나는 얼른 일어나 그들을 따라 날아갔다.
뒷마당에서 라비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유령과 영혼의 시간은 사람과 다르게 느리게 흐른다. 유령과 영혼은 무질량이기에 시간은 느리게, 아주 느리게 흐른다. 그렇지만 지구의 중력장에 갇힌 인간의 시간은 너무 빠르다.
그래서 인생에 맛이 들린가 싶으면 벌써 자기 별나라로, 플루토의 지하세상으로, 무간지옥으로, 천당으로, 극락정토로 뿔뿔이 떠날 때가 된다.
오늘로써 유령들과 같이 어울린 지가 입원 이틑날부터니까 벌써 3일째이다. 영혼들의 1시간은 지구의 1시간보다 10년쯤 더디게 흐르는 것 같았다.
비록 몸은 망가졌을지언정 잠들어 있던 영혼이 깨어나고, 유령친구들과 어울리니 100년 아니 150년의 경험을 한 것 같았다. 그에 따라 나도 상당히 현명해졌다.
"이고녀 근황이 궁금하지 않아?"
"궁금해! 어서! 이야기해 줘"
"이 맹랑한 앵두가 떠나기 전에 이고녀를 만났어. 그리고 얼마나 했고, 믿으라고 그 짓 했던 장소까지 떠벌린 거야.
전등남의 왼쪽 허리 위쪽, 그러니까 심장 반대편 등짝에 동그란 천재점이 있다는 사실과, 자신을 위해서 엉덩이의 자가진피로 남성 확대 시술을 했다는 둥, 그녀의 명령에 따라 충성을 다했다는 것과, 그의 순결을 자신이 가졌으며 임신도 아니면서 임신이라고 뻥치고는 유유히 떠난 거야"
"참 그년 확실히도 정적을 제거하는구먼. 자신의 것이라고 확실히도 못 박았네.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될까? 그 둘은 서로의 집에서도 인정하는 친오빠 친동생 같은 사인데"
앵두에게 그런 말을 전해 듣고 이고녀는 식음을 전폐하고 며칠 동안 울다가, 코를 팽 하고 풀다가, 울다가를 반복하였다.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지 일주일 후, 팔등신 앵두는 전등남의 어머니 공주에게도 자신의 가짜 임신소식과 혼인신고 소식을 알렸다.
"어머님께 인사드리고 왔어야 하는데 죄송해요. 혼인신고는 어쩔 수 없었어요. 오빠가 막 하고 가야 된다면서 우기길레…"
"누가 어머니란 말이냐. 할머니도 계시는데 너희들끼리 혼인신고를 해버리다니 세상에 이런 경우도 있다더냐!"
"어머님 정말 죄송해요.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요. 그래서 오빠가 부모님께 알릴 테니 걱정 말고 유학 떠나라고 했어요. 잘못했어요. 어머님"
"어디다 대고 계속 어머니라고 하느냐. 나는 너 같은 딸을 둔 적이 없다. 끊자" 하고 공주가 전화를 툭 끊어버렸다.
이런 중대한 혼사를 자신들끼리 결정하고 혼인신고를 해 버리다니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야속하기까지 하였다.
왠지 모를 슬픔이 끓어올라 한동안 울음을 그치지 못하였다. 통화내용을 듣고 있던 남편이자 머슴오빠가 어깨를 도닥이며 진정하라고 하자, 공주는 그의 품을 파고들며 더욱 서럽게 울었다. 공주의 어머니도 공주를 달랬다.
공주는 아들에게 배신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서러웠다. 또한 청상과부로 살아오신 엄마에게도 아들을 잘못 가르친 죄송한 마음과, 이날 여태껏 가족을 위해 묵묵히 희생해 온 큰 큰오빠 겸 남편에게도 미안하여 그의 흉측한 얼굴을 어루만지며 서럽디 서럽게 울었다.
2006년 8월 4일 화요일 밤,
공주는 정육점을 닫고 일주일간 여름휴가라는 하계휴가 안내판을 내걸었다.
"태희 오라고 해라. 큰애도 빨리 들어오라고 이르고. 이것이 얼마나 울었을까!" 젊은 할머니는 이 순간에도 이고녀를 걱정하고 있었다.
"아니다. 내가 태희에게 직접 해야겠다"
할머니가 이고녀에게 전화를 걸자 수화기 저쪽에서 울음이 터졌다. 한참 후, 울음소리가 그치자, 할머니는 이해한다며 의논할 것이 있으니 지금 집으로 오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전등남은 술이 취해 들어오자마자 자기 방으로 들어가 뻗어버렸다. 그가 이렇게 취해 들어오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걱정이 되었는지 아버지가 따라 들어가 편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쌍둥이 딸들이 모여 있는 1층 거실로 내려갔다.
잠시 후, 이고녀가 눈이 퉁퉁 부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얼마나 서둘러 왔던지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운동화 차림이었다.
이 이고녀와 어머니 공주는 각자 유전자에 새겨진 아기 욕심과 가정생활이라는 최대의 목표가 같았다.
그래서 공주는 이고녀를 "우리 아기"라고 부르며 아끼고 사랑하였고, 이고녀 또한 어머니에서 차츰 쌍둥이 친구들처럼 엄마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고녀는 친엄마인 자신의 엄마는 '우리 진짜엄마', 그리고 공주를 칭할 때는 '우리 엄마'라고 하였다.
이처럼 공주와 이고녀를 강하게 밧줄로 묶고 있는 것은 바로 조혼주의와 가정제일주의라는 동질성이었다.
비혼주의가 가지고 있는 성욕구 해소의 방법이 근본적으로 임신과 육아의 책임을 수반하지 않는 자유섹스라면, 공주와 이고녀의 성은 자유의지이지만, 육아 책임을 지고 사랑하는 사람하고만 한다는 점에서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었다.
"우리 아기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어?" 공주가 이고녀에게 물었다.
"예 엄마. 걔가 떠나기 전에 내게 다 말했어요" 하고는 이고녀가 고개를 떨구었다. 방바닥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 악독한 년을. 난 절대로, 앵두란 년을 이 집에 발도 못 붙이게 할 거다. 어린년이 이렇게 간악하다니. 아빠도, 할머니도 그럴 거니 넌 안심해도 된다. 아가"
이고녀는 와락! 공주품으로 뛰어들어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할머니가 앉은 걸음으로 다가와 도닥이자 그제야 흐느낌을 멈추었다. 그녀의 들썩이던 어깨도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64살이지만 고생을 별로 하지 않은 탓인지 50대 중반으로 보일 만큼 정정하고 고운 젊은 할머니가 이고녀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물었다.
"아가. 첩살이도 각오하겠느냐" 할머니는 거두절미하고 잘라 이고녀의 결심을 확인하였다.
이고녀도 할머니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또렷이 결심을 밝혔다.
"예 할머니. 첩살이라도 들여만 준다면 이 집에서 평생 살 게요. 제가 오빠와 혼인을 못한다 해도 내치지 않겠다고 약조해 주세요"
"그러마 너는 우리 집 딸인데 어느 부모가 딸을 버린다더냐" 하고 또또 아빠가 가장으로서 이고녀를 받아들이자, 공주도 약속하였다.
"우리는 딸을 버리는 부모가 아니란다. 우리가 늙거든 너나 우리를 양로원에 버리지 말거라"
공주에 말에 이고녀가 자세를 고쳐 잡아 꿇어앉아 다짐하였다.
"할머니, 엄마, 아빠. 저는 그런 패륜아가 아니에요. 오빠가 만약에 그렇게 하려고 하면 오빠를 설득해 보고, 안되면 오빠를 버리고 할머니 엄마 아빠를 따라갈게요"
이고녀는 아주 확고해 보였다. 그리고 세 쌍둥이 방으로 들어가 세 쌍둥이 첫째 우주의 한복으로 갈아입고 큰 절을 올렸다.
이로서 이고녀는 호적에 올릴 수 없는, 첩이라면 첩이고 미래의 안주인이라면 안주인인, 이상한 신분의 며느리가 되었다.
그간 앵두 때문에 전등남을 놓치고서 그녀는 얼마나 슬퍼하고, 얼마나 가슴 아파하면서 와신상담의 세월을 보냈던가.
이고녀의 심정을 할머니가 제일 잘 알았다. 청상과부 되어 얼마나 많은 시장통 남정네들의 수작과 희롱을 견뎌 왔던가.
한 번은 외로움이 뼛속까지 사무쳤던 어느 해 가을밤, 정육점에서 몇 블록 저편에 있는 홍콩노래방에 가서 혼자서 술 마시고 울면서 청승을 떨었었다.
그녀는 술에 취해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남자들이 떼거리로 있는 옆 룸으로 잘못 들어갔었다.
그때 여러 남자들이 자신을 한가운데에 끌어 앉히며 한 사람은 상체를 추행하고, 다른 사람은 치마밑을 들춰 애액으로 범벅이 된 자신의 밑에 손가락을 집어넣을 때도 만취한 척 가만히 있었다.
남자들이 순번대로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빙글빙글 돌아가는 미러볼에 반사된 불빛이 기다란 침대식 소파에 눕혀진 공주엄마를 비추었다.
술이 얼큰하게 들어간 사내들의 손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공주엄마의 가슴과 치마 속을 헤집어 뒤지고 있었다.
배란을 유도하고 유선 조직을 자극하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급격한 증가로 배란기인 공주엄마의 가슴은 부풀어 올라 있었다.
또한 대책 없이 부풀어 오른 둔덕 아래의 질구에서도 남자를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애액이 흘러나와 더듬는 사내들의 손가락을 흠뻑 적셨다.
배란기 여자의 몸은 건들면 바로 터지는 부비트랩과 같아, 공주엄마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팬티를 벗기려 하자, 부드러운 실크감촉의 흰 모달팬티를 벗기기 쉽도록 살짝 엉덩이를 들어주었고, 술에 취한 척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고 당해주었던 공주엄마였다.
남자들이 번갈아 가며 꽃잎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그녀는 작살을 맞은 듯 부르르 떨었다.
달구어진 벽을 때리는 빗방울!
어떤 이는 그녀에게 장대비로 쏟아졌고, 어떤 이는 소낙비로 후드득 떨어졌고, 어떤 이는 여우비로 찔끔거려 애태웠고, 어떤 이는 가랑비로 촉촉이 내려 나른한 여운을 안겨 주었다.
오랜 불가물에 공주엄마가 그토록 갈망했던 단비는 가뭄을 해갈하기에 충분히 내렸고, 엉덩이 속에 꼭꼭 감춰 둔 단지를 채우고 넘쳐 밖으로 흘러내렸다.
다음 날 산부인과에 간 공주엄마는 피임을 확실히 할 겸, 원 없이 즐기려고 구리 루프 자궁 내 장치, IUD 시술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는 다음 달 배란기에도 이 노래방을 찾았다.
여사장은 '나가요' 보도 아가씨들보다 매력 있고 예쁜 공주 엄마에게 '이거 손님 좀 끌겠는데' 하는 생각에 그녀를 남자들이 있는 룸에 들여보냈다.
그즈음 공주엄마는 배란기 때의 에스트로겐과 황체기에 난포에서 분비되는 프로게스테론의 증가로 물이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그녀는 배란기와 황체기의 며칠 동안, 공주에게 가게를 맡기고, 대낮 오후 시간에 잠깐잠깐 즐긴 후, 돌아오곤 했다.
그녀는 성병 예방과 보다 안전한 성관계를 위해서 남자들에게 반드시 콘돔을 씌웠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노래방 여주인은 정기적인 알바를 권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오직 한 달에 한 번 배란기, 황체기의 며칠 동안만, 여주인이 상대를 고르고 골라 전화를 하면 마지못해 응하는 척, 1시간 내내 노래는 안 부르고, 무엇을 어디에 넣던 연애만 하고 왔다.
공주엄마에게는 철칙이 있었는데, 시장통 장사치들, 지역사람들, 나이 많은 아저씨들과 취한 남자들, 술을 먹이는 남자들, 탬버린이나 손뼉을 치게 하거나, 노래시키는 남자들과는 절대로 합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자들이나 여사장이 돈을 찔러 주어도 일절 받지 않았다. 자신이 마신 맥주값과 노래방비도 모두 계산해 테이블 위에 놔두고 나왔다.
그러니까 주위에 소문날 위험이 있거나 몸을 내던지는 자신을 슬프게 하고 천박하게 만들거나, 입에서 술냄새 펄펄 나는 진상들하고는 절대로 몸을 섞지 않았다.
또한 절대로 '나가요' 보도들 하고는 같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나중에 아예 그 신천동성당 먹자골목 노래방 건물을 사들여, 노래방 여사장에게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상대를 고르고 또 고르게 하였다.
만약 비밀이 새어나간다 하더라도 임자 없는 외로운 청상과부는 만인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어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렇게 정말 남자 생각나는 배란기 때에, 한 달에 몇 번은 콘돔을 충분히 준비해 노래방으로 달려가 모르는 남자들하고 일을 치러 온 공주엄마였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 방 화장대 서랍 속에서 수많은 콘돔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 공주가 편지와 함께 사내인형과 딜도를 가져다 놓았다.
1981년 봄,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대학 1학년 초까지 문학동아리 활동을 했던 공주의 편지에는,
"엄마.
그동안 외로웠지? 미안해.
그런 줄도 모르고 나만 오빠 품에서 행복했나 봐.
옛날 신림동 집에서 복숭아꽃 피었을 때 말이야.
아빠가 불에 타 허우적거릴 때, 죽음을 각오한 오빠가 아빠부터 구했다면 아마 지금 우린 둘 다 이 세상에 없을 거야.
불에 타면서도 아빠는 오빠더러 우리부터 구하라고 소리쳤대.
그래서 오빠는 아빠를 구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술만 들어가면 울어.
난 엄마 맘 다 알아.
그렇지만 엄마.
한 사람하고 하면 사랑이라고 하고, 외간 남자나 여러 사람하고 놀면 창녀라고 사람들이 흉본대.
여기 한 사내를 가져다 놨으니 이 사내 하고만 사랑을 하면서 살아주면 안 될까?
우리가 얼마나 엄마를 사랑하는지 알지? 부끄러워하지 마. 이 사내랑 사랑하며 살아. 그리고 우리랑 행복하게 살자.
사랑하는 딸 공주가"
이렇게 절절히 쓰여 있었다.
딸의 편지를 읽고 공주 엄마는 한참을 흐느끼며 오열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는 그녀는 불에 타 죽은 남편과, 공주와 머슴아들에게 부끄럽기도 하여 철저히 치마 밑 단속에 들어갔다.
엄마가 헌 장난감들에 싫증 날 때가 되면 공주는 새로운 사내 인형과 더 힘센 딜도를 가져다 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십수 년을 딸이 정해 준 사내인형과 딜도로 만족하며 살아온 젊디 젊은 과부의 섦은 세월이었다.
이제 이 집 딸이 된 이고녀도 어쩌면 영원히 첩살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거나, 남편에게 섹스리스 청상과부 취급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친구들 엄마들 또래의 젊은 할머니와 이고녀의 이렇게 애간장이 타는, '심중에 붙는 불은 올 같은 억수장마로도' 차마 끌 수 없으리라!
공주는 앵두와의 통화 사실을 일단 아들에게는 비밀에 부치기로 쌍둥이들의 입단속을 시켰다. 전등남을 예전처럼 대하라고 이고녀에게도 당부하였다.
이튿날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이고녀를 데리고 엄마, 아빠, 할머니가 길 건너편 잠실주공아파트로 찾아가 이고녀의 부모를 만났다.
얼굴이 흉측한 머슴아빠가 대낮에 양복을 입고, 한쪽은 우주에게, 또 한쪽 팔은 이고녀에게 내어준 채 걸어서 찾아갔다. 특별한 날이 아니면 절대로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 아빠가 길을 나선 것이다
세 쌍둥이 중 큰애인 우주도 따라가겠다고 우겨, 한복을 입혀 데리고 간 것이다.
상대방 가족들은 듣던 대로 교육자 집안으로 무난하였다. 길 건너 잠실 주공은 당시 34평형 아파트였다. 이 잠실 5단지는 재건축 초고층 복합단지 아파트로 떠올랐으나, 오랫동안 대치동 은마아파트처럼 진행속도가 더뎠다.
모 대학 철학과 교수인 아버지와 가정살림을 하는 어머니, 이고녀 태희, 그리고 2살 연상의 큰아들 태민이, 이렇게 4인 가정이었다.
할머니가 무릎을 꿇자 모두들 무릎을 꿇고 이고녀를 달라고 청혼하였다.
아니 신랑 될 우영이라는 녀석은 나타나지도 않고, 대신 부모들이 나서서 딸을 달래니 어안이 벙벙하였다.
자신들의 딸, 태희가 죽자살자하고 전등남을 사랑하고 있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아는 부모였고, 평소에 세 쌍둥이들이 수년간 집에 놀러 와 때로는 밥도 먹고, 설거지도 해 놓고 가는 애들이어서 그 집 사정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가끔 딸이 또또 쌍둥이네 집에 놀러 가거나, 어울려 클럽에서 진탕 놀다 올 때면 항상 집까지 바래다주는 예의 바른 젊은이었기에 자신들은 버선발로 뛰어가 맞이해도 좋을 혼사였다.
내심, 이 천재 녀석이 빠진 청혼에 괘씸하였지만, 대학원생이 되더니만 한국천문연구원에 있는 박사들의 연구 때문에 그들의 졸병으로 칠레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톨롤로 천문대에 파견가는 문제로 바쁠 것이라고 자위하였다.
그래서 이고녀의 아버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얼싸 좋다 하고 허락하였다.
이 부부에게는 이 아파트가 전부였지만 강북에 비하면 부자였고 바깥사돈에게는 학자적인 카리스마가 있었다.
"이 고집스러운 애를 언제 데리고 가시려고 하세요?"라고 이고녀의 아버지가 물었다.
"실은 어젯밤 며느리 인사받았습니다만"
"딸이 학생이고 그래서 우리는 음식 조리나 살림을 가르치지 못하였습니다만"
"그런 것은 누가 가르쳐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일단 따님부터 저희에게 주십시오"
이고녀의 부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네 사네 눈물 콧물 다 짰던 딸이 친구의 한복을 입고 나타나 결혼시켜 달라고 떼를 쓰니 잘 됐다 싶었지만, 이고녀의 엄마는 약혼만 하고, 둘이 같이 사는 것은 졸업 후가 어떴냐고 한 발 빼는 것이었다.
반면에 이고녀의 아버지는 딸이 이 혼사를 놓치면 절대로 안된다는 예감이 들었다.
"여보. 태희가 몇 날 며칠을 사네 못 사네 한 것을 잊었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우린 걱정하지 않았나요? 옛말에 혼사는 물 떠놓고 단숨에 해치우라고 했습니다. 이제 예전의 태희로 돌아왔으니 결혼시킵시다"
그들은 딸이 혼인신고를 할 수 없는 사실혼 첩살이 혼인이란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결혼식은 만약 서운하다면, 이고녀 어머니 말처럼 태희의 졸업식 후, 양가의 가까운 친지분들만 참석하기로 하고, 축의금도, 혼례예물도 일절 없이 최대한 조촐하게 식을 치를 수도 있다고 잠정 결정하였다.
결혼은 10일 후 8월 15일, 광복절 공휴일에 양가의 식구들이 모여 시장에 있는 정육점 쇠고기를 가져다 식당에서 점심을 들면서 신랑신부의 절을 받아 폐백을 대신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양가의 부모들은 혼인예물로 신랑신부 가락지 하나씩만 하기로 하였는데 이미 이고녀의 왼손 약지에는 또또할머니의 실가락지가 끼워져 있었다.
또한 양가가 지척에 있으니 신랑신부가 언제라도 왔다 갔다 하도록 하고, 딸의 고집대로 신랑집에서 살기로 하였다.
대신 살림을 가르쳐야 하고 모녀간의 정다운 시간도 보낼 겸 10일 후에 시집을 보내기로 합의하였다.
다들 흡족하여 식사와 반주를 곁들일 때, 세 쌍둥이 중 몇 시간 먼저 태어난 우주가 2년 연상의 이고녀 오빠인 이 집 아들 태민이를 지목하며 결혼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자기들은 이고녀 때문에 우주의 고교 1학년 때부터 만났으며 이미 결혼 언약을 하고 사귀고 있으니, 이고녀가 자기 집에 오고, 자기가 여기에서 외로우신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모시겠다고 충격적인 발표를 해 버렸다.
그래서 서로 흡족한 거래가 성사되었다. 태민의 어머니는 자신이 시집갈 때 받은 장롱 속의 금가락지를 꺼내 우주에게 내어주었다. 이렇게 순식간에 그들은 겹사돈이 되었다.
다음 주 화요일 8월 15일 광복절 날, 새마을시장통에 있는 전주식당에서 우영이 태희, 태민이와 우주의 결혼을 물 떠놓고 올리기로 하였다.
비용은 두 쌍 결혼하는데 신랑 금반지 2돈, 1돈에 7-8만 원이니 십오륙만 원에, 시장통 오복떡집에서 떡을 하고, 정육점 고기를 사용하니까 한 집당 어림잡아 겨우 100만 원도 채 되지 않았다.
태희와 우주의 학비와 용돈과 생활비는 딱 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시댁 쪽에서 내기로 하였다.
그들은 이제 자립해야 한다. 자신들만의 일가를, 자신들만의 힘으로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어리광 부릴 아이에서 이제
부모 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고녀는 이 순간을 위해서, 앵두라는 어린년의 멀구슬 보라색 꽃냄새 펄펄 나는 가랑이 밑을 기는 수모를 지금껏 견뎌 온 것이 아닌가.
그녀는 앵두로부터 갖은 음모를 당해 오빠를 빼앗기자, 다시 찾아오기 위해서 이판사판 사생결단의, 그까짓 몸뚱이는 언제라도 첩살이에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다.
"머릿속에 똥밖에 안 든 외동콤플렉스 족속들아! 부모 등골 그만 빼먹고 이들처럼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모든 위선과 가식, 허례허식의 허물을 집어던져야 진정으로 다시 태어나 새롭게 사는 것이라고 유령들도, 나의 영혼도 이들의 행복한 혼인을 응원하고 있었다.
8월 6일 목요일 아침,
요즘 무슨 일인지 술독에 빠진 녀석을 할머니, 엄마, 아빠가 불러 앉혔다.
그리고 이고녀와 혼인 약속을 하였으며, 이미 혼례예물로 할머니의 가락지를 이고녀에게 주었다고 아들에게 말을 하였다.
"아니 엄마, 나한테 상의도 않고 그렇게 일방적으로 하면 어떡해! 더구나 혼인은 인륜지대사인데"
"어이구 이놈아! 그래서 한마디 상의도 없이 혼인신고를 했냐? 할머니께 말씀도 안 드리고!"
"그건 죄송해요. 아빠. 어쩔 수 없었어요. 앵두가 임신했다고 해서"
공주가 아들과 담판을 지으려고 끼어들었다.
"여보. 이쪽에 앉아 봐요. 그리고 그 손 좀 줘 봐요" 하고 이 집의 머슴으로 고생만 한 남편의 투박하고 불에 탄 징그러운 손을 아들 손에 쥐어 주었다.
불에 탄 할아버지가 죽기 전에, 할머니와 엄마 손을 끌어다 아빠에게 쥐어주었다는 것은 이 천재 녀석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버지의 손을 만지자 가슴을 찌르는 고통이 밀려왔다. 이번에는 엄마도, 할머니도 나서서 자신들의 아들이며 남편인, 아빠의 흉측한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흐느끼는 것이 아닌가.
아빠도 생전 보이지 않았던 눈물을 흘렸다.
그 순간 자신과 앵두가 저지른 일방적 혼인신고가 크게 잘못되었고, 가족 모두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안겨주었다는 생각에 전등남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아빠의 얼굴을 만져봐. 어서!" 전등남이 우물쭈물하자
"아빠가 흉측한 괴물처럼 보이니? 어서 만져보래도!" 엄마가 다그쳤다.
전등남은 자신의 잘못된 선택이 이처럼 큰 파장을 불러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덜덜 떨면서 아빠의 일그러진 얼굴을 만졌다. 전등남의 눈에서 회한의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너희들이 나가서 살던 그것은 자유다. 네가 아기를 독수공방을 시키던, 청상과부로 만들던 그것도 네 자유이다.
그러나 앵두는 한 발자국도 이 집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또한 아기를 네 호적에 안 올려도 좋다. 태희는 우리 딸이니 이 집에서 딸로서 우리랑 살 것이다.
앵두 그 어린것이 이혼을 각오하고 너를 간통죄로 고소하면 너와 아기는 감옥에 갔다 오너라"
이런 최후통첩을 아버지로부터 받았다.
이어 엄마로부터 8월 15일 날, 정육점 위쪽에 있는 전주식당에서, 태민이 우주 결혼도 그때 같이 치를 것이니, 이고녀가 싫더라도 여동생 혼인하는데 오빠로서 참석해 인사드리고 밥만 먹으라는 지시를 들었다.
여동생과 자신의 혼인식으로 냉수 떠놓고 점심만 들기로 했다니 아니 참석할 수도 없는 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순식간에 전등남과 앵두는 엄마, 아빠, 할머니, 이고녀로부터 되치기 당한 처지로 전락하였다.
2006년 8월 15일 화요일, 광복절 우영정육점 옆에 있는 전주식당에서 두 쌍의 결혼잔치가 벌어졌다.
태민과 우주는 싱글벙글하였지만 전등남은 어딘지 어두워 보였고, 말수가 적었다. 단지 이고녀만이 전등남 옆에서 오빠 오빠 하면서 기뻐하였다.
태희와 우주가 시할머니와 시어머니에게 받아 끼고 있던 반지를 빼서 자신들의 신랑들에게 건네고 이를 신랑들이 신부들의 왼손 약지에 다시 끼워주었다.
태희와 우주도 자신들 신랑의 왼손 약지에 두 돈 짜리 새 결혼반지를 끼웠다.
이로써 양가의 겹사돈 동시 혼인이 성립되었다.
시장통 전주식당에 꽃이 피었다. 제일 큰 언니 쌍둥이들은 졸업해 벌써 사회 초년생이 되었고, 막내 쌍둥이들이 고2라서 그렇게 흐뭇하고 보기에 좋을 수가 없었다.
쌍둥이들은 무엇이든 따라 하는 경향성을 보이기에, 우주가 결혼하자 세 쌍둥이 중 중간과 셋째도 졸업할 때까지만이라도 학비만 친정집에서 도와주면 태민이 친구들과 결혼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질세라 사회초년생 큰언니 쌍둥이들도 사귀던 남자친구들과 그냥 물만 떠놓고 태희와 우주가 한 방식대로 최대한 조촐하게 혼인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녀들의 젊은 자궁은 건강한 아이들을 출산할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렇다! 여자에게는 나이가 깡패다!
젊고 어린 여자를 이길 나이 든 여자는 세상엔 없다.
여변호사던, 잘 나가는 여의사던, 연봉이 높고 직장 탄탄하고 집까지 다 갖춘 40대의 여자든지 간에, 스물 갓 넘어 결혼해 출산을 하고자 하는 건강한 어린 여자를 당해낼 재간은 없는 법이다.
정신이 똑바로 박힌 남자라면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젊은 여자의 조건을 많이 따지지는 않을 것이다.
정상적인 남자들이 바라는 단 한 가지 조건은 학력, 직업, 돈이 없더라도, 식당에서 식기를 닦더라도, 돼지똥을 치우더라도, 힘든 일을 하더라도, 착실히 저축을 하고 있는, 자연분만 출산을 할 수 있는 건강한 자궁을 가진 젊은 여자일 뿐이다.
여자에게 있어 최고의 스펙은 '어린 나이'이다!
"어린 나이 때 연애 따로, 결혼 따로 하다가 여자 인생 종 치는 수가 있어. 어린 나이 때도 결혼할 상대를 골라서 연애를 해야지 참내"
"라비야. 어쩌려고 그래? 아무리 유령이라도 이러다간 시집 못 간 처녀들에게 귀싸대기 맞는 거 아니냐?" 잔뜩 움츠러든 마르코 폴로가 머리를 긁적였다.
"월세방에서 시작하면 머가 어때서! 이게 아메리칸 청교도정신이지.
한국 인구 감소하는 것 좀 봐!
이 나라 여자들 세계에서 이미 유명하지. 남자 조건 땨지는 건 아무튼 세계적이야.
결혼 적령기의 여자의 필수코스가 돼버린 결정사 천국의 나라!
이게 현재 한국 실상이야! 한국전쟁 후부터 1980년대까지 그렇게 젊고, 조촐하게 결혼들 했던 이나라 청춘들은 다 어디 가고, 결혼들 못 해서 결정사로 달려들 가고 있으니 딱하다 딱해!
토 나오려고 해!
페미니즘이랍시고 독신주의니 비혼주의니 이런 못 된 것들만 수입하는 이나라 신세대 여성들은 벌 좀 받아야 해.
아니, 페미니즘이 남녀 양성평등이나, 전통사회의 여성들이라면 투표권이나 여권신장, 이런 것들을 주장해야지 여성우월주의로 흐르는 것은 문제가 있어.
세상에 어떻게 연애 따로, 결혼 따로 이런 비도덕적인 나라가 다 됐냐! 볼품 없는 엉덩이를 가진 주제에
미국도 이렇게는 안 해!"
제니가 자신의 커다란 애플힙을 손으로 톡톡 쳐 보이며 말했다.
마르코도 질세라 이에 끼어들었다.
"페미니즘 내세워 권리만 주장하는 여자들은 죄다 전부 군대에 보내야 한다고! 얘를 낳아야 군대를 면제해줘야 해. 이스라엘처럼.
나이 든 주제에 조건 따지다간 진짜 여자 인생 종 치게 마련이야!"
제니 스미스의 어깨를 툭치며 마르코 이어 말을 이어갔다.
"이 나라 TV 방송도 큰 문제야. 어떻게 죄다 불륜 삼류 막장드라마를 공중파에서 띄우냐?
회장집 재벌에, 재벌 딸에, 사모님에, 머리에 총 맞은 녀석들이야. 비현실적인 막장물만 보고 자란 세대들은 노처녀가 돼서도 시집을 못 가. 주위 남자들 조건이 너무 시시하게 보이거든.
그러니 남자들이 일본 국결로 몰려가는 거야.
행복의 조건이 얼굴과 신체, 물질에만 있으니 노처녀로 고독하게 늙어 죽을 수밖에 없지 않겠어? 그런 여자들은 처절한 인생을 살다 가는 거지"
마르코의 말을 듣고 있던 아이샤가 충격적인 말을 했다.
"우린 생리 시작하면 결혼 생각해. 성경험도 빨리 하거든.
더우니까 모텔이 필요 없잖아. 아무 곳에서나 할 수 있어. 대신 엄청 메노포즈가 빨리 와"
"몇 살 때 생리가 그치는데?" 아이샤를 바라보며 궁금하다는 듯이 제니가 물었다.
아이샤가 같은 몸통에 붙어 있는 파티마를 쳐다보자,
"응 놀라지 마. 우리 엄마는 35살부터 폐경기가 오기 시작했어. 37살에 완전히 멘스가 그쳤어.
우리 열대지방 여자애들은 초경이 빨라서 말이야. 대신 폐경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일찍 끝나"라고 파티마 시디크가 대답했다.
"푸어박. 너네 한국여자들은 어때?"
"글쎄 예전에는 중1, 중2에 초경하는 애들도 많았어. 실제로 우리 하숙 집네 막내 희경이는 중학교 2학년 여름에 했어.
이제는 한국여자들도 점차 체형이 바뀌어 요즘엔 초경이 좀 빨라지는 추세래.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건 확실해. 엄마나 이모가 폐경이 빨랐던 여자들은 절대로 고르지 마.
에스트로겐이 조기에 감소하면 골다공증에 여러 합병증-심근경색, 협심증. 뇌졸중. 심혈관질환, 치매, 파킨슨병, 질 건조증, 성교통, 우울증, 자가면역저하, 당뇨병 등-이 올 확률이 정상적인 여성들보다 높고 이런 열성 유전자들은 반드시 유전되거든"
"한 마디로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군"
"그래서 한국사람들이 혼처를 구할 때 상대방 부모나 가족을 먼저 보구나" 라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우리는 평균 수명이 짧아서 일찍 죽어. 오래 살지 못하니깐 신랑 나이나 부모 건강을 안 따져. 돈 있고 밤일만 잘하면 남자로선 OK야"
파티마가 자신들의 결혼 조건을 말하자,
"젊은 여자애들은 출산하고서도 그 뒷날부터 성생활들을 하거든. 안 해주면 해 주는 남자에게 뺏겨. 열대지방 남방족 여자들은 대부분 그래" 아이샤가 마치 해 본 사람처럼 남자 제일 조건으로 성적 능력을 꼽았다.
한참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다가 라비가 화제를 공주네로 돌렸다.
"태민이 하고 우주는 곁가지야. 날 샌다고! 그래서 생략하기로 하고, 저 천재 녀석 하고 이고녀 첫날밤 들여다볼래?"
"하긴 무얼 해! 천재 녀석 그 앵두라는 마누라에게 들킬까 봐 안절부절못할 건데. 그리고 넌 동생 하고도 하냐?" 마르코가 잘라 말했다.
"좋아! 또 투표다. '한다!'손들어. 라비, 제니, 오! 파티마, 아이샤까지 인간 이번엔 너도 끼워주지 푸어박 넌?"
"한다!"
"왜 그렇게 생각해?"
"공주나이 19살 대학1학년 때, 엄마에게 배워 처음이었는데도 스스로 오빠 거 입에 물었어.
이 번에는 그토록 와신상담하며 첩살이와 감옥 갈 각오까지 한 이고녀가 이 기회를 놓친다고? 오빠 거 안 물 거 같아?"
"맞다! 바로 그거야!"라고 마르코도 그제야 이해가 되어 '한다!'에 맞장구를 쳤다.
이로써 만장일치로 첫날밤 신랑이 신부 처녀에 입궁을 하는 것으로 투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