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의 봄은 미래의 계획을 앗아간 유산을 겪은 앵두에게는 잔혹했지만, 이고녀나 공주와 딸기에게는 축복의 봄이었다.
4월 초가 되자, 신천 재래시장 우영정육점 또또엄마인 공주와, 막노동 중견 목수로 전통 가옥을 짓는 옆집 오빠에게 시집을 가 두 딸을 둔 딸기는 느닷없이 왕성한 성욕을 느꼈다.
이 두 부부는 세상이 빙빙 돌며 웅웅거리는 환청을 들었다. 무지갯빛 찬란한 환영도 보았다. 이 무지갯빛 울림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걷잡을 수 없는 성욕으로 찾아와, 강물이 되어 잉태의 바다로 흘러갔다.
공주와 딸기의 다리 사이에서는 각자의 남편들이 흠뻑 사정해 놓은 아기씨앗이 질 안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부풀어 도톰한 치골 밑 밖으로 줄줄 흘러내렸다.
이 두 여인에게는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첫 째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자기 주도하에, 자신들의 의지로 남편을 정했다는 점이다.
만 아홉 살 공주는 자기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는 3살 위의, 당시 국민학교도 못 다녔던 머슴오빠를 한글부터 가르쳤다. 딸기 또한 공주처럼 스카이대를 나온 똑똑한 여자로 둘 다 머리가 좋았다.
공주의 오빠이자 남편은 평생 묵묵히 힘든 일만 하는 사람이었고, 딸기의 옆집 오빠 또한 일만 하는 막노동판 목수로 일에 있어서는 몸을 아끼지 않았다.
아내들은 모두 똑똑하고 스카이대를 나왔고, 예쁘고 건강하기 짝이 없고 스펙이 빵빵하여 골라서 속 알찬 부잣집으로 시집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두 여인은 그리하지 않았다.
공주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까막눈 머슴오빠를 가르쳤고, 1981년 5월 1일 잠든 오빠의 바지를 벗기고 첫 경험을 하지 않았던가?
중 2학년 잔인한 봄날 밤에, 4명의 외국인들에게 처참히 부서진 딸기 또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부에 관심이 없는 옆집 오빠에게 대학 졸업식날 밤 딸기팬티를 입고 돌진하지 않았던가. 그날 밤 딸기는 자신의 음부에 오빠의 얼굴을 끌어다 대고 성관계를 요구했었다.
공주와 딸기, 그녀들은 남자를 선택함에 있어 학력과 돈을 따지지 않았다. 오직 자신들이 안주인이 되어 집안을 통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졌다.
평생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자신만이 사랑받고 집안 대소사에 자신도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만을 따졌다.
막노동을 하는 남자들은 책상머리에 앉아 통밥을 굴리는 남자들과는 사는 방법이 달랐다. 돈만 벌지 그 돈을 쓰는 것은 아내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일 끝나고 부침개에 막걸리 한잔, 소주 한잔이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리고선 밤바다 그냥 단순하게 들이대는 것인데 그녀들의 남편은 남자이기 이전에 오빠와 동생이란 관계를 무척 중요시하였다. 그래서 다른 여자나 남자들이 그들의 결혼 생활에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었다.
공주와 딸기는 둘 다 결혼을 전제로 한 성교를 했고, 자연의 법칙에 따라 출산을 했다는 점도 비슷했다.
그녀들은 남편의 용모도 따지지 않았다. 머슴으로, 막노동 일꾼들 중 샌님 같은 얼굴을 한 이가 어디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공주의 남편은 엄마와 자신을 불구덩이 속에서 둘러메고 구출하는 과정에서 얼굴과 팔에 3도의 심한 화상을 입어 흉측한 괴물이 된 사나이가 아니었던가.
공주는 선친의 제삿날이면 화상으로 흉측하게 변한 오빠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슬퍼했었다. 한바탕 울고 나면 이상하게도 공주의 마음에 평화로움이 몰려왔고 일그러진 머슴오빠의 얼굴이 묘하게 따뜻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공주는 이날 이태껏 일그러진 오빠의 얼굴을 보듬고 살았다. 공주는 불을 끄고 사랑을 나눌 때면, 오빠의 얼굴이 누구보다도 미남으로 여겨졌다.
신랑들은 요즘 여자들이 따지는 조건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으나, 공주와 딸기는 이를 개의치 않았다.
그녀들은 오직 남편의 사랑과 건강, 온화한 성정만을 최우선 조건으로 삼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들에게는 어떠한 조건도 없었으며 오빠들과 숙명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하늘이 내린 연분이라 한다. 이 연분을 보듬고 좀 무식한 남자들을 남편으로 택한 공주와 딸기의 미래가 카르마적 입장에서 보답을 받아야 함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공주와 딸기는 생존경쟁에서도 독립적인 존재였다. 공주는 불에 타 죽은 아버지가 남겨준 많은 재산으로 풍요로웠고, 딸기는 막내 똑남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구독자를 많이 둔 인플루엔서로 SNS를 잘 활용하였기에 육아를 하면서도 남편보다도 고소득의 여자였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자신들이 어릴 적부터 남편을 선택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남편보다 더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는 우먼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공주와 딸기는 무척 겸손하였다. 자신들이 남편들보다 더 우성적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났으면서도, 결코 내세우지 않았다.
이런 그녀들이, 2007년 3월 말, 안데스 산맥의 어느 지류의 세로 톨롤로 산 정상에서 유령들이 기원을 담아 부른 디오니소스의 찬가에 홀려 이상하리만큼 펄펄 끓는 애욕을 느꼈다.
이는 곧 두 부부의 임신으로 이어졌다. 두 부부에게 있어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은 디오니소스의 선물이었다.
공주의 나이 45세, 딸기는 29세였다.
"여자 나이 45살? 그 나이에 임신이 가능하긴 한 거야?" 셈포르나의 샴쌍둥인 아이샤가 파티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마도 파티마도 자신처럼 믿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우리 고향 셈포르나에서는 그 나이면 이미 이빨이 군데군데 빠진 할머니야. 임플란트는 그림에 떡이고, 틀니도 못 해 음식을 먹을 땐 오물거리지"
"그렇지 파티마? 폐경기 할머니들이 무슨 임신이 가능하다고 라비가 저러실까?"
아이샤와 파티마는 둘이서 장이야! 멍이야! 하며 45살이면 임신이 불가능하다고 주고받았다.
"아이고 셈포르나 귀신들아! 너네들은 생리도 빨리 한다며? 영양 공급도 부실하기 짝이 없고. 그러니 폐경이 빠를 수밖에 없지만 우리나라 여자들은 메노포즈가 늦어" 듣고 있던 제니가 반기를 들었다.
마르코도 끼어들었다.
"쌍둥이들 너네 엄마, 35살인가 그 젊은 나이에 이미 폐경기에 들어갔다고 하지 않았어? 아이샤?"
"그래 마르코. 우리 엄마는 30대 중후반부터 폐경이 시작됐었거든. 우리 지역에서는 45살이면 젖이 파파야처럼 축 늘어진 할머니인 거야"
"나라마다, 민족마다, 음식이나, 기후나 생활습관 때문에 폐경기는 천차만별이라고 치고, 딸기부부와 공주부부네 이야기로 넘어가자"라고 라비가 화제를 돌렸다.
"오빠! 나 급해! 빨리 올라와!"
"왜? 딸기야! 상스런 말도 안 했는데 벌써 흥분한 거야?"
"앞으로 그런 욕하지 마. 애들 들으면 교육에도 안 좋고, 이젠 야한 말 안 해도 밑이 화끈거리거든"
"침대에서만 하면 안 돼? 딱 조금만"
"야한 말을 어떻게 조금 하고, 많이 하고 그래? 조금 하던, 많이 하던 야한 욕설도 욕설인 거야"
딸기가 살짝 눈을 흘겼다. 그 모습이 무척 고혹적이었다.
"에이 우리 딸기님은 욕설 들으면서 하면 더 흥분하잖아. 난 우리 딸기님 그 야릇한 모습에 중독됐는데 그걸 못하게 하면 어떡하냐?"
"그럼 욕설 같은 야한 말은 반드시 침대에서만 해. 알았지?"
"알았어. 침대에서만 살짝살짝 해줄게. 우리 딸기, 되게 꼴리셨나 봐! 어디가 어떻게 꼴리셨을까나! 말 안 하면 안 올라간다"
"미래의 대목수님! 하늘 같은 딸기님의 봄지가 꼴릿다! 됐냐? 빨리 올라 와, 아니면 누워 봐, 내가 올라갈게 오빠야!"
"으이구 홍수 났네! 홍수 났어! 아주 한강이 되셨구먼요!"라고 하며 손가락으로 장난하며 들여다보고 있는 남편의 얼굴을 끌어당겨 자기 다리 사이의 밑에 파묻고서는 옥죄었다.
"어휴 숨 막혀!"
한차례의 폭풍우가 지나고 등산을 마친 욕쟁이 오빠가 하산하여 천장을 보고 반듯이 누웠다
그러자 딸기가 자신의 왼쪽 다리를 욕쟁이 오빠의 다리 위에 올려 포개며 그의 가슴 털을 비벼 꼬다가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갑자기 확 잡아챘다.
욕쟁이 남편은 따끔했으나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모른 체하며 일부러 반응하지 않았다. 아프다고 반응하면 딸기는 재미를 붙여 가슴 털이란 털은 죄다 뽑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빠, 안 아파?"
"머가?"
"내가 가슴털 뽑았잖아"
"그랬어? 난 몰랐는데. 어디 한 번 더 뽑아 봐"
"에이 재미없어. 오빠가 좀 아픈 시늉이라도 해야 내가 뽑을 맛이 나지, 안 그래?"
"그런가?"
"오빠! 지금 내 입이 허전하다. 우리 식스나인 하자. 난 딱딱한 게 좋아"
"야! 딸기 너! 오빠 몰래 다른 놈하고 한 거야? 어떻게 딱딱한 것이 좋은지 아냐고! 딴 남자 딱딱한 거 맛을 봤다는 거잖아!"
"오빠야 내가 중2 때, 외국 놈들에게 강간당한 거 벌써 잊었어? 잊은 거야?
그때 한 놈이 밑에서 시커먼 몽둥이로 쑤시고, 한 놈은 내 엉덩이를 떠받치고, 두 놈은 잠지를 내 입 속에 넣었는데 흐물흐물한 것이 무슨 해파리도 아니고,
축 늘어 비틀어진 꽈리고추처럼 힘이 없더라고. 기절했다가 깨어났을 때, 입속에서 무슨 지렁이가 꿈틀대는 것처럼 징그럽고 무서웠어.
피부가 새까만 두 놈은 딱딱해서 내 밑을 찢고 들어갔는데 두 놈은 흐물흐물해서 내 밑에 들어가지도 못하더라니깐.
그래서 그 놈들이 내 입에 성기를 넣고 억지로 세운 다음, 밑을 손으로 벌리고 밀어 넣어도 잘 안 들어갔지 머야.
놈들이 한참 동안 다리를 벌리고, 문지르고, 비비고 난리를 친 다음에야 겨우 들어간 것 아니겠어? 그래서 안 거야.
남자는 딱딱해야 성교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오빠랑 하면은 너무 딱딱해서 푹푹 쑤시고 들어오는 참에 난 매번 기절할 것 같았어"
"그래서 내가 좋았다는 거야 머야?"
"좋았다는 거지. 우리 오빠 서방님 딱딱이가 최고야!"
또 한차례의 운우지락이 끝나자 부부는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웠다.
"우리 첫날밤 언제였는지 기억나?"
"그럼 기억하지. 너 대학 졸업식날 2001년 2월 25일 날 밤에 라마다 르네상스에서 했잖아.
그때 넌 딸기팬티를 입고 들이댔는데, 그때 생각하면 너무나 떨려서 정신이 없었어. 그래서 구멍을 못 찾았던 거야. 한참을 헤매고 엉뚱한 곳에 들이대니까 네가 잡고 넣었잖아"
"우리 오빠 대단하시다. 그런 머리로 왜 재수씩이나 하고도 대학을 못 가셨을까나! 난 대학 샌님보다도 이런 튼튼한 오빠가 좋아. 아니 오빠가 비실비실 해도 난 오빠 곁에 있을 거야. 그러니 내 곁에서 오래 살아"
"우리 딸 똑희 생일이 언제드라 그해 11월 18일인가? 맞아?"
"그래 맞아. 어이구 자기 딸 생일도 가물가물 한 거야? 남자들은 다 그래? "
딸기부부는 날이면 날마다 이렇게 저렇게 알콩 달콩을 볶아, 한 알, 두 알 같이 나눠 먹으면서 등산을 한 끝에 막둥이 똑남이를 임신한 것이었다.
공주와 머슴오빠나, 딸기와 옆집 오빠처럼,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 결혼에 이른 남녀의 관계는 단순한 연애를 넘어서, 깊은 존재론적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운명적 관계는 절대적 희생과 타인이 범접할 수 없는 사랑이 같이 한다.
소꿉친구는 어린 시절,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할 때부터 서로의 세계에 깊숙이 같이 하였기에, 이들의 결합은 단순한 동거를 넘어 서로의 존재 가치를 완성시킨다.
즉, '나'라는 주체는 '너'없이는 완전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나는 너 없이는, 너는 나 없이는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치를 완성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내 속에 네가 있고, 네 몸속에 내가 있는, 한 몸에 두 사람의 영혼이 들어앉아 있는 것이다. 그들 부부는 비익조처럼 서로가 가진 하나씩의 날개로 쌍이 되어 완벽한 대칭을 이뤘다. 그리하여 부부는 합체하여 두 날개로 하늘을 날았다.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공주와 머슴오빠, 딸기와 욕쟁이 오빠는 오랜 시간, 같은 시공의 비밀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인생에 있어 가장 순수한 어린 시절 과거의 기억과 그 시공의 지속성을 결혼 후에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뿌리 깊은 공통의 역사는 타인이 절대로 접근할 수 없는 불가침적인 영역을 만들었다. 이들의 결혼생활에 있어 접근하는 타인은 이들의 삶에 나중에 진입한 존재일 뿐, 원초적인 동반자가 될 수 없었다.
이러한 깊은 유대감은 에로스를 넘어서 아가페적이며, 동시에 윤리적 필연성을 띠는 절대적 희생과 사랑으로 나타났다.
만 9살 공주에게는 머슴오빠가, 만 14세 딸기에게는 옆집 오빠만이 운명적으로 존재해 왔다.
이들 두 부부를 갈라서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었다. 죽음마저도 그들을 갈라서게 할 수 없는 아가페적인 절대적 사랑과 헌신과 희생이 그들을 묶고 있었던 것이다.
욕쟁이 오빠는 1996년 군대 제대 후, 평택에서 쭉 막노동을 하다가, 2001년 11월 18일 큰딸 똑희가 태어난 가을부터 신우건업이란 회사의 평택시 진위면 신축공장 짓는 일에 자주 투입되어 일당을 받고 막노동 잡부일을 하였다.
2001년 욕쟁이 오빠는 딸기의 임신으로 갓 결혼해서 IMF 베이비인 첫째 딸 똑희가 태어나자, 죽자 살자 일했다.
그는 새벽 4시에 일어나 행여 딸기가 깰까 봐 주섬주섬 작업복을 챙겨 입고 새벽 별을 보면서 막노동판을 뛰었다.
돈을 더 준다면 야간작업도 마다하지 않았고 콘크리트 타설 같은 작업이 새벽까지 이어져도 오직 딸기와 뱃속의 아이만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때는 딸기가 임신해 출산을 앞두고 육아에 전념해야 하는 시기였기에 욕쟁이가 온전히 아내인 딸기와 뱃속의 아이를 먹여 살려야 했었다.
욕쟁이는 나라 전체가 참혹히 망해가는 그때, IMF 구제금융 요청 및 관리 체제였던 1997년 12월 3일 협상 타결부터 2001년 8월 23일 관리 체제 공식 종료까지의 기간까지, 그 혹독하고 암담한 IMF 시기를 몸뚱이 하나로 버티어 냈다.
수많은 새벽 4시, 신체 건강한 신혼의 남자가 인력시장에서 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돌아오는 그 '털레털레' 발걸음에는, 노동 시장에서 거부되어 아내와 뱃속에 든 아이를 부양할 수 없는 무력감이 욕쟁이에게 밀려오곤 했었다.
그것은 치미는 슬픔으로 변질되어 집 근처 놀이터에서 한참을 울다가 집에 들어가곤 하였다. 그는 남들이 끊기 힘들다던 담배도 끊었다. 웬만한 거리는 다 걸어 다녔다.
신체의 건강함은 욕쟁이가 가진 유일하고 절대적인 자본이자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기댈 수 있는 무기였다.
그는 이불속의 딸기를 뒤로하고 자신이 가장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어떤 날은 새벽의 푹푹 찌는 더위와, 또 어떤 날은 혹독한 추위에 떨며 어둠 속을 걸었다.
그러나 인력시장은 냉정하게 그 건강한 신체의 효용 자체를 거부하곤 했다. 가장 절실하게 노동을 해야 할 때, 그렇게 건강한 육체가 쓸모없다는 무용성을 선고받는 그 상황이야말로 실존적 부조리, 무력감 그 자체였다.
새벽에 일하러 나가 일자리를 못 구하고 돌아오는 그의 발걸음은 "나는 일할 수 있고, 일해야만 하는데, 왜 일거리가 없는가?"라는 인력시장의 불합리성에 대한 절규가 담겨 있었다.
그때의 그의 심정은 개인적인 실패에서가 아니라, 거대한 사회 구조, 즉 한국의 국제통화기금 IMF 통제를 극복하기 위한 구조조정 시기로부터 발생한 소외감에 치를 떨었다.
칼 마르크스가 정의했듯, 인간의 가치는 노동을 통해 실현되지만, IMF라는 거대한 자본의 파도 앞에서 그의 노동 의지는 상품으로조차도 인정받지 못하고 폐기되는 새벽이 많았다.
그는 노동을 통해 딸린 식구를 부양하려는 인간의 본질적 책임을 수행하려 했으나, 외환보유고가 바닥난 경제 시스템이 그의 역할을 박탈해 버려 인간의 본질로서도 소외되었다.
욕쟁이는 노동을 하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경제 주체가 아닌 경제의 희생자로 전락한 참담함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오는 날들도 많았다.
막노동 일을 구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새벽에 짊어진 고독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책임과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실체적, 실존적인 고독이었다.
욕쟁이는 텅 빈손으로, 아직 세상의 더위와 추위를 모르는 천진한 아내의 잠든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미안함도 느꼈다.
그는 어둠 속에서 희미한 희망을 걸고 새벽 인력시장에 나섰지만, 이제 그 희망마저 탕진하고 빈 껍데기가 되어 돌아온 날들도 많아졌던 것이다.
그런 날에는 꼭두새벽에 채비를 했던 시간은 무의미하게 소비되었고, 욕쟁이에게는 '오늘도 실패했다'는 확실성이 엄습했다.
결국, 일을 못 구하고 털레털레 돌아오는 그의 걸음은 "나는 누구인가? 나의 이 건강한 팔다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나의 존재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되씹으며 한 발 또 한 발, 슬픔을 딛고 있었다.
일을 못 나가는 새벽이면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자신의 실존을 재정립해야 하는 신혼 생활의 젊은 남편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그런 슬프고 고달픈 새벽이면 욕쟁이 오빠는 딸기의 밑을 찾아 마르고 닿도록 끊임없이 키스했다. 딸기도 알았다. 왜 오빠가 슬퍼하고, 자기 밑을 찾아 끝없이 키스하는 줄을. 그의 절망적인 마음이 딸기의 가슴을 적시곤 했었다.
"오빠야 괜찮아. 걱정하지 마. 그 짐을 오빠 혼자 지려고 하지 마. 아기 낳으면 엄마에게 좀 맡기고 나도 일을 할 거야"라고 하며 일어나 그의 남성을 찾았다.
이렇게 인력시장에서의 하루하루가 지나자, 욕쟁이는 체격도 건장하고 워낙 성실히 일을 잘했기에 자주 신우건업 신축공장 현장에 일을 나가는 횟수가 잦아졌다.
첫째 딸 똑희가 태어난 이듬해 2002년 봄, 욕쟁이는 전통 목조건물의 유지 보수 및 신축을 담당하는 반장의 눈에 들어 신우건업에 들어갔다.
신우건업의 주요 사업은 불교건축 및 전통건축, 그리고 공기를 단축하기 위한 콘크리트 한식 조각물 판매 및 시공이었는데 욕쟁이 오빠는 불교건축과 전통가옥 건축에 흥미를 가지고 열심히 배우기 시작하여 대목수가 된 것이었다.
45세의 공주 부부 또한 갑자기 찾아온 이상 성욕에 제2의 신혼을 즐기게 되었다. 정육점 문을 닫을 9시가 다가오면 공주는 머가 급한지 8시부터 남편을 재촉하여 가게 정리에 들어가서 9시가 "땡!" 하면 가게문을 서둘러 닫고 귀가하였다.
집은 바로 시장통에서 걸어 1-2분 거리, 막내 쌍둥이들은 하늘 같은 고3이 되어 아침식사 때를 제외하고는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그 위 대 2학년 쌍둥이들은 공부하랴, 집안 청소하랴, 고3 어르신들 공부 감시하랴, 연애하는지 예쁘게 치장들 하랴 무척 바빴다.
큰아들 바로 밑 1년 터울의 쌍둥이들과 그 밑 2년 아래, 대학 졸업반인 우주를 비롯한 세 쌍둥이들은 물 떠놓고 맞절해 시집을 갔다. 그들 자매들은 친정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시댁에서 깨를 볶으며 잘 살고 있었다.
"밤 9시에 무얼 그렇게 만들고 있니? 다음 달이 산달인데 쉬지도 않고 그래?"
"어서 오셔요 엄마, 아빠!"
"힘드시죠? 제가 나가서 도와드리면 좋을 텐데, 출출하시죠? 상 차릴게요" 전등남과 이고녀가 일제히 인사를 했다.
"밥은 됐다. 맛있게 보이는구나"
공주와 머슴아빠가 집에 들어서니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였다. 주방에서는 갓 귀국한 큰아들 전등남과 이고녀가 무엇인가 조리를 끝내고 조리에 쓰인 접시며 도마를 정리하고 있었다.
이고녀가 맛을 보고 있었는지 입속에 음식물을 넣고 오물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공주는 이고녀를 안고 남산만큼 불룩한 배도 만져보며 머리를 쓰담해 주었다.
"동생들 공부하는데 간식 주려고 머 좀 만들고 있었어요. 오빠가 다 하고 전 조수로 구경만 했어요"
"무엇인데?"
"도미로 만든 스위트 앤 사워라고 해요" 전등남이 이고녀 대신 대답했다.
스위트 앤 사워를 만드는 방법은 먼저 도미를 포를 떠 두 조각으로 만들어 칼집을 내서 쪽파를 으깨어 나온 즙을 칼집을 낸 생선에 빡빡 문질러 고루 묻힌다.
그런 다음 쪽파향이 생선에 잘 베도록 랩으로 감싸 10분 - 15분 정도 냉장실에 놔둔 다음, 전분이나 밀가루를 묻혀 바싹 튀겨내면 된다고 이고녀는 신이 나서 쫑알댔다.
전등남은 한 마리에 두 조각이니 공부하시는 고3 쌍둥이들을 위해 한 마리,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 한 마리, 또또 왕할머니 반 마리, 자신들이 같이 먹으려고 반 마리, 대학교 2학년 쌍둥이들 한 마리 해서 싱겁게 간을 한 전분을 묻혀 총 4마리나 튀기게 되었다.
올리브유를 팬에 두르고, 먼저 방울토마토에, 파인애플, 홍청 파프리카를 식초와 설탕을 넣어 볶다가 케첩과 굴소스를 넣고 기호에 맞게 조미료를 투하하면 시끈 달콤한 스위트 앤 사워 튀긴 생선 위에 부을 소스가 된다나 머래나!
"엄마! 스위트 앤 사워는 어떤 물고기로도 다 가능한데요, 머라 했더라 오빠가? 맞다! 다금바리로 하면 진짜 진짜 맛있는데 비싸서 참돔철이라 참돔으로 했대요
필리핀이나 열대 지방 바다에 가면 그루퍼라는 맛있는 다금바리과 물고기가 있는데, 이 물고기는 힘이 세서 유명한 사람을 죽였대요"
"정말? 물고기가 얼마나 크길래 사람을 잡아먹니? 난 다금바리가 식인물고기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 태희 너 지금 엄마 놀리는 거지? 조그만 다금바리가 사람을 죽인다니 믿기지가 않네"라고 공주가 이고녀의 말에 의심을 표했다.
"엄마. 필리핀 세부 막탄섬에 스페인의 탐험가 마젤란이 쳐들어 왔는데 라푸라푸라는 부족장이 원주민들을 데리고 전투를 한 끝에 승리했고 마젤란은 그 전투에서 그만 전사하고 말았다고 해요.
필리핀 타갈로그어로 라푸라푸는 다금바리 물고기라는 다른 말뜻도 있대요. 그래서 필리핀 사람들은 마젤란을 죽인 것은 스위트 앤 사워의 주재료인 라푸라푸 물고기라고 우스개 소리를 한다네요"
공주는 과연! 이런 표정을 지으며 사랑스러운 이고녀와 아들, 고3 쌍둥이, 대학교 2학년 쌍둥이들, 그리고 남편과 같이 식탁에 빙 둘러앉아 참돔으로 만든 달콤 새콤한 요리에 소주를 곁들였다.
배가 어느 정도 차자, "우린 들어가 씻고 잘 테니 너네들 마저 먹어라" 하고 공주는 남편을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공주는 바로 욕실 겸 화장실로 샤워하러 들어갔다.
서둘러 전광석화처럼 샤워를 마친 공주가 남편을 재촉해 그를 욕실로 밀어 넣었다. 이어 커다란 배쓰 시트 목욕타월을 걸친 공주는 간단한 루틴 피부관리를 하기 시작하였다.
공주는 전신 보습으로 샤워 후 물기를 수건으로 가볍게 톡톡 두드려 제거한 직후, 피부가 완전히 마르기 전, 3분 이내에 재빨리 바디 로션 크림을 발랐다.
바디 로션 크림은 피부의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막고, 유수분 보호막을 형성하여 건조함으로 인한 피부 가려움이나 각질을 예방하기에 저녁 샤워 후, 공주의 피부관리 루틴이 되었다.
"전신보습은 이렇게 물기가 촉촉한 상태에서 빨리 발라줘야 제대로지"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이어 공주는 얼굴 스킨케어를 했다.
세안 후 피부에 쌓인 노폐물을 닦아내고, 피부 보습과 진정, pH 균형 조절의 다음 단계의 스킨케어를 위해 토너를 발랐다.
"호호 얼굴 피부가 건조해지기 전에 바르는 시늉이라도 좀 하고 넘어가자" 마음도 몸도 바쁜 공주였다.
얼굴이 반짝반짝하도록 고농축 세럼도 한 두방을 떨어트려 펴 발라주고 그 위에 간단히 보습 크림을 발랐다.
잠자는 동안 입술이 건조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립밤을 바르고, 손발에 후다닥 핸드크림을 발라 간단히 마무리하였다.
원래 피부가 고왔던 탓에 공주는 화장하는 데에 시간을 뺏기는 것을 싫어하였다. 야한 실크 보라 팬티와 브라를 색깔 맞춰 입고 투피스 잠옷으로 갈아입은 공주는 남편을 기다렸다.
"오빠! 빨리 하자! 하루 종일 참느라 죽을 뻔했다"
"나도 그래. 우리 미친 것 아닐까? 이 나이에 날이면 날마다 해대면"
"실은 산부인과 갔다 왔는데 몸에 아무 이상이 없대. 걱정할 걸 걱정해야지 이런 건 오히려 축복이라고 의사 선생님이 부러워하던데"라고 말하며 남편 위에 올라탔다.
그녀는 그들 부부에게 갑자기 찾아온 자신들의 이상 성욕이 디오니소스의 찬가 때문이라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공주의 가슴은 동그란 멜론은 못 되어 보여도 아기 열명을 먹여 키운 파파야 같은 슈퍼 참젖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빠 내 젖 좀 빨아주면 안 될까? 밑 하고 젖이 너무 근질근질해서 못 참겠네!"
"공주야, 우리가 짐승이 된 건 아닐까 우리 요즘 왜 그러지?"
공주는 고개를 숙여 남편에게 자신의 파파야 젖을 물렸다. 한바탕 폭풍이 몰려왔다 몰려갔다.
폭풍우에 휩쓸린 공주는 소녀처럼 덜덜 떨면서 남편의 품에 안겨 있었다. 머슴으로 평생을 살아온 남편 머슴오빠가 공주에게 고마워했다.
"공주야, 난 네가 고맙고 사랑스러워. 내겐 너무 과분해서 네가 아깝다는 생각도 들어. 늘 이 젖을 만지면서 난 네게서 안정과 평화를 찾았어. 고아였던 내게 넌 내 엄마고 동생이고 친구야"
"난 오빠 없으면 못 살아. 그러니 나보다 오빠가 더 오래 살아야 해.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가 더 오래 살아야지 널 먼저 보내면 내가 어떻게 이 세상에 혼자 살겠냐? 우리의
몸과 마음은 쭉 하나였잖아"
"난 45살이고 오빠는 48살이니 우린 아직도 젊어. 이렇게 많이 하다간 나 아이 가질 것 같아. 늦둥이 하나 낳을까?"
"그러다가 쌍둥이면 어떡하냐?"
"우영이는 쌍둥이 아니었잖아. 딸만 쌍둥이가 되나 봐. 아들 하나만 낳자"
"나도 그렇게 많던 딸들이 시집가서 나가니 갑자기 허전하고 그래. 우린 어렸을 때부터 짝이었지"라고 하며 추억을 더듬었다.
"오빠 이건 낫이야 기역자라고" 1971년 만 9살 공주는 공책에 낫을 그렸다. 그땐 둘 다 어렸다. 따뜻한 방에서 한 이불을 덮고 배 깔고 공주는 머슴오빠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었다.
창고 겸 머슴오빠 방이 밖에 따로 있었지만 이 둘은 따뜻한 공주방에서 한글을 배웠다. 공주의 어머니는 착한 어린 머슴을 늘 안쓰러워했고 공주 아버지 또한 이 녀석을 책임지려고 했었다.
"오빠 오빠 이리 와! 복숭아꽃 속에 개미요정이 있어"
"먼데 그래?" 머슴이 다가가 들여다보니
꽃잎 속에는 검정 개미 한 마리가 꽃 속에서 탈출하려고 용을 쓰고 있었다.
"공주야 그 꽃 내게 주면 안 될까? 담벼락 옆에 두고 소원을 빌고 싶어"
"정말? 그럼 나도 같이 빌까?"
둘은 복숭아꽃을 담벼락 옆에 두고 소원을 빌었다. 실은 소원은 공주 혼자 빌었으며 머슴오빠는 불쌍한 개미를 살려주려고 꾀를 낸 것뿐이었다.
"무슨 소원 빈 거야?"라고 묻는 공주에게,
"복숭아꽃 속에는 요정이 있어. 꺾으면 요정이 죽어"라고 얘기를 해 주었다.
그러자 공주는 꽃을 꺾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며, 슬퍼하며 울었다.
공주가 중학교 갔을 때였다. 1학년 초여름, 공주가 학교에서 놀라서 뛰어와 호들갑을 떨었다.
"오빠 나 밑에서 피 나와. 어떡해?"
"어디서 피가 나온다고 그래? 어? 정말 피네"
"이거 봐봐" 하고 말하며 공주는 피 묻은 팬티를 벗고 아직 여물지 않은 버자이너를 머슴오빠에게 보여주었다.
물론 공주는 어렴풋이 배가 살살 아프고 피가 나오는 생리현상이 생리라는 것을 진즉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자신의 처녀를 주려고 16살 머슴오빠에게 일부러 보여 준 것이다.
그런데 우영상사 사장인 아버지에게 그 광경을 들켜 공주는 호되게 야단맞고 머슴오파는 일주일 안에 다른 곳을 찾아 떠나라는 해고통지를 받았다.
그래서 공주는 그날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머슴오빠 구하기에 나섰다. 엄마도 적극적으로 구출작전에 동참하였다.
"여보. 이건 공주녀석 잘못이지 쟤 잘못이 아니에요. 당신도 잘 아시잖아요. 그리고 쫓아내더라도 저 앞 보라매공원 사거리 약속한 논 서마지기는 줘서 내보내세요"
"저 철딱서니 없는 공주녀석! 아무 데서나 팬티를 내리면 동네창피해서 이거 원" 하며 무마되었다.
"여보 우리 쟤를 아들처럼 키워보면 어때요? 심성 착하고 건장하고 난 아들로 삼고 싶어요"
"나도 그렇지만 공주 저 녀석이 남녀 간의 분별을 모르고 살갑게 가까이들 하니 불안해서 이거 원"
"당신은 늘 '이거 원' 그렇게만 말하지 마시고 쟤를 우리 아이로 키워요. 여보"
"그럴까? 공주 저 녀석이 태우에게 시집갈 수 없게끔 우리 호적에 올릴까?"
한때 이렇게 해서 공주는 머슴오빠 태우에게 시집 못 갈 뻔했었다. 그러나 공주는 아빠가 일에 정신이 없거나 남대문 시장에 납품하러 가 집을 비울 때면 일부러 머슴오빠 옆에 붙어서 육탄공세를 시작하였다.
공주는 중학교 1학년 가을, 한문과 기본적인 수학을 머슴오빠에게 가르쳤다. 머슴오빠는 잘 받아들였으며 이해도 빨랐다.
그는 중학생이 되어 막 들이대는 공주에게 분명히 못 박아 두었다. 오빠 동생 간 이외의 이상한 행동을 하면 그 발로 집을 나가겠다는 최후통첩을 했다.
그래서 공주는 중학교 때, 자신이 설계한 "처녀딱지 떼기"라는 원대한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공주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고아머슴이 이성적으로 힘들어했다. 공주는 엉덩이가 아주 크고 탄탄하여 머슴오빠는 일부러 공주를 피했다.
공주는 공부를 가르친다는 핑계로 일 끝난 밤중에 시간을 내어 1시간씩 국어, 영어, 수학과 역사를 가르쳤다. 공주가 머슴오빠의 과외선생님이 된 것이다.
"여보 공주가 이제 고등학생인데 대학 가는데 공부에 지장 있으면 안 되지 안 그래?"
"공주 말로는 복습이래요. 자기가 학교에서 배워 온 것을 가르친대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외워지고 이해가 된대요"
"봉천동 서울여고에서 전교 1등을 쭉 했는데, 집에서도 공부도 안 하고 학원도 안 다니는데도 전교 1등이라니 공주가 태우를 가르치는 것이 효과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요"
"맞아요 공주는 머리가 영리한 아이예요. 그러니 지켜보기만 해요" 이렇게 해서 저녁 시간에 공주는 머슴오빠를 가르칠 겸 복습을 하였다.
공주는 당근과 채찍을 함께 사용했다.
머슴오빠가 잘 이해하고 교육과정을 잘 따라오면 슬쩍슬쩍 치마 밑을 벌리고 가르쳤다. 치마 속에는 팬티만 걸치고 남성을 유혹하는 페로몬을 풍기고 있었다.
머슴오빠는 그때부터 자위행위를 했다. 어느 날, 공주는 학교에서 돌아와 자신이 입은 팬티를 벗어 오빠의 방 이불속에 숨겨 두었다.
공주의 팬티를 본 머슴오빠는 겁이 덜컥 났었다. 그래서 공주에게 더 이상 이런 짓은 못 하니 좋은 사람 만나거나 자신은 이 집을 나가겠다고 괴로운 심정을 토로하니, 공주는 팬티를 벗어놓는 여우짓도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파과기에 든 공주는 한 달에 두어 번 오빠와 하고 싶어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공주가 대학에 진학하고 문학동아리 MT 가기 전날 밤 화재 사고가 난 것이었다.
"오빠. 오빠가 나와 엄마를 살렸지. 이리 와 봐" 하며 공주는 머슴오빠의 남자를 물었다. 공주의 몸에서 단내가 났다. 한참 동안 젖을 물린 공주는 이번에는 다리를 벌려 머슴오빠의 얼굴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밑을 그의 입에 물렸다.
그리하여 공주는 잉태하였고 후에 아기가 뱃속에서 꿈틀거리며 발로 찰 때 즈음, 우진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생명의 잉태를 위한 딸기와 공주부부의 왕성한 사랑의 행위는 마하 시바라트리-시바의 위대한 밤에 행해지는 시바와 파르바티 여신의 합궁이었으며, 시바가 두 다리 기둥을 벌린 파르바티의 흰 육체 위에서 추는 우주창조의 춤인 아난 탄타바였다.
또한 두 번 태어난 디오니소스가 세상에 던진 풍요와 다산을 담은 주사위였다.
"디오니소스여! 디오니소스여! 디오니소스의 위대한 팔레스여!"
이 디오니소스의 찬가의 주사위는 공주와 딸기의 자궁 속에, 잉태의 바다에 떨어져 자리를 잡았다.
공주부부와 딸기부부의 사랑의 행위가 격해질수록 디오니소스의 찬가와 시바의 우주 창조의 춤은 이 밤도 한 없이 이어졌다. 그 결과, 두 부부는 이듬해 디오니소스의 선물을 받았다. 우진과 똑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