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866 멍 때리는 시간
엄마의 브레이크 타임
아파트 화단에서
멍 때리며 쉬고 있는
막대빗자루와 막대걸레를 보고는
잠시 걸음을 멈춥니다
바람 스산해지며 가을 깊어가고
나뭇잎들 서성서성 이리저리 흩날리는데
가을바람 이리저리 불거나 말거나
이파리들이 물 들어 떨어지거나 말거나
세상만사 그러거나 말거나
해야 할 일을 다 접고 우두커니
조는 듯 쉬고 있는 걸레와 빗자루를
한참 동안 바라봅니다
비질을 다 마친 빗자루처럼
걸레질 말끔히 끝낸 대걸레처럼
편안히 멍 때리며 쉬고 있는
울 엄마의 브레이크 타임 같아요
누구나 그럴 때가 있어요
부지런히 걷다가 문득 멈추어
해 지는 풍경을 묵묵히 바라보며
가라앉듯 내려앉는 저녁해와도 같은
고요하고 적막한 마음으로
멍 때리는 브레이크 타임~
이런 일 저런 일에 마구 휘둘리다가
엉킨 실타래 가위로 싹득 잘라내고
첫머리와 끝자락을 가지런히 놓듯이
해결의 실마리 하나 찾아내고는
후련한 마음으로 주저앉아
멍 때리는 브레이크 타임~
그러나 브레이크 타임은
멍 때리며 멈추는 시간이 아니라
휴식시간이고 준비하는 시간이죠
끝을 내고 마침표 찍는 시간이 아니라
시작을 위한 쉼의 시간이고
활기찬 에너지를 충전하며
준비하는 시간인 거죠
지금 멍 때리며 쉬고 있는
빗자루는 다시 낙엽들을 쓸어 모으고
댁걸레는 또다시 바닥을 닦으며
깨끗하고 단정하게
다음을 준비하는 거니까요
멍 때리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시간이라고 해요
생각이 더 크고 깊어지기 위해
마음에 더 포근한 사랑을 담기 위해
비움과 채움의 반복을 위해
필요한 시간인 건데요
다 비우고 모두 놓아버린
울 엄마의 브레이크 타임은
그냥 쭉 쉬시는 시간입니다
다시 시작하기 위한
설렘의 준비 시간이 아니라
미련 없이 다 버리고 아낌없이 싹 비우고
그저 멍 때리는 시간이라서
안타깝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빗자루처럼 우두커니
대걸레처럼 물끄러미
멍하니 자신의 세상에 머무르시다가
어느 순간 배시시 미소 머금으시는
울 엄마의 브레이크 타임은
무심해서 고요하고
무정한 만큼 적막합니다
혼자만의 늪에 빠져
혼자만의 세상에 머무르시더라도
잠시 잠깐 눈을 반짝이시는
그 순간이 유난히 감사해서
울 엄마의 브레이크 타임을
너그러이 용서해 드리고 싶어요
잠시 중지된 시간이 아니라
묵묵히 현재 진행 중 그리고
기약 없는 지속형이지만
그냥 그대로 감사한
울 엄마의 브레이크 타임~
그 곁에서 나도 잠시
멍 때리며 웃어 봅니다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며
멍 때리기 좋은
지금은 가을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