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868 시작이 함께이듯
나중도 함께면 좋겠어요
시작은 함께였으나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슬며시 뒤처지는 친구가
어디에나 있어요
손을 잡고 함께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스르르 손을 놓고
말없이 사라지는 친구가
어딘가에 있어요
처음처럼 함께 한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고
생각대로 되는 것도
물론 아니죠
떠날 때는 말없이
매정하게 돌아서야 하는 것이
무정한 사랑의 불문율이고
무심한 인생의 법칙이니까요
단풍들도 그렇거든요
부지런히 먼저 물드는 이파리도 있고
저 혼자 다른 빛으로 물들기도 하고
같은 빛이라도 진하고 연하게
물들기도 해요
빨강이 좋아 빨강으로 물들고
노랑이 좋아 노랑으로 물들기도 하고
그 사이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사이좋게 주홍으로 물들기도 해요
혼자만 초록을 고집하다
마침내 초록으로 핑그르르 떨어져
찬 바닥을 구르기도 하는
외톨이 잎새도 있어요
빨강 노랑 주홍 단풍잎들이
가을바람에 흩날릴 때마다
이리 밀리고 저리 쏠리며
흩어지는 순간까지 함께이듯
우리도 함께였으면 좋겠어요
손 잡고 발걸음 맞추며
사이좋게 이어진 다정한 친구들이
누구 하나 스르르 손 놓지 않고
시작이 함께이듯
나중도 함께였으면 좋겠어요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재잘재잘 떠들며 웃고 울다가
바람에 흐트러져 미련 없이
저마다의 길 떠나는 단풍잎들처럼
우리도 흐르는 계절을 따라
다정히 함께이다가
또 따로였으면 좋겠어요
다정과 무심은
같은 말
다른 느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