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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Nov 19. 2024

초록의 시간 869 무늬만 도넛

무늬만 책 읽기

노랗게 노랗게 물들던 은행잎들이

햇살 머금고 금빛으로 반짝이거리다가

바람 따라 이리 날리고 저리 흩어져

은행잎 도넛이 되었습니다


커다란 투명 비닐에 담아

잘 다독이고 동그랗게 묶어

부풀어 오르지 않게 벽돌 하나를

떡하니 가운데 올려둔 모습이

동그랗게 구멍 뚫린

도넛을 닮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커피 친구는

은행잎 도넛으로 정합니다

무늬만 도넛이지만

가을 향기 듬뿍 머금어

달달하고 고소할 것 같아요


커피에 도넛은

사이좋은 단짝친구

가을 커피에 은행잎 도넛은

완전 내 취향입니다


무늬만 도넛인

동그란 은행잎 뭉치를 보면서

나랑 비슷하다는 생각도

잠시 해 봅니다


읽지도 않을 책을 사서

제목만 보고는 탁자 위에

고이 모시듯 올려두었어요


금방 읽지도 않을 거면서

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만 여전해서

진초록 북커버와 빨강 북마크를

그 곁에 두고는 뿌듯해하며

무늬만 책 읽기 중이니

무늬만 도넛과

어슷비슷~


무늬만 도넛

무늬만 책 읽기

우린 친구 사이라고

중얼거리며 혼자 웃습니다


무늬일 뿐이지만 여전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 내가

기특해서 좋고 기특한 내가

좋아서 웃습니다


곁에 두는 건 사랑

바로 곁에 두는 건 그만큼

깊고 큰 사랑이니까요


곁에 있으면 눈이 가고

바로 곁에 있으면 손도 따라가서

언젠가는 활짝 책을 펴고

차분히 읽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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