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로 칼비노/ 민음사/ 2010
테랄바 지방에서 투르크인과의 전쟁에 나가게 된 나의 외삼촌. 메다르도 자작과 그의 하인 쿠루치오. 메다르도는 대포에 맞아 몸의 반쪽이 날아간다. 오른쪽만 남았는데 살아있다.
메다르도는 망토로 몸을 가리고 고향에 돌아온다. 아버지 아이올포는 새와 생활하다 아들의 참혹한 모습에 상심해 죽게 된다. 아버지가 죽자 성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메다르도. 나는 바구니를 들고 가다 삼촌을 만났는데 독버섯을 바구니에 담아준다.
자작은 심판을 할 때 죄수와 고양이를 함께 매단다. 자꾸 상상이 되어 힘들었다. 피에트로키모도 목수가 교수대를 만든다. 그의 고민은 자신이 만든 작품이 좋은 곳에 쓰일 수 없을까?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사형이 아닌 다른 목적에 사용하는 잘 조립된 도구를 만들 수 있을까?’
메다르도는 재판할 때 피고는 피고대로 원고는 원고대로 죄를 씌워 교수형에 처한다. 참 고약한 재판이다. 유모의 말대로 메다르도의 사악한 반쪽이 살아났다. 나는 마을의 의사와 숲을 헤매며 동물과 식물을 연구한다.
버섯들판에는 문둥이들이 모여 산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환영하며 축제를 벌인다. 우울하고 힘들텐데 축제를 벌이는 사람들, 안쓰럽고 또 한편 존경스러웠다. 죽음을 기다리는 자들의 축제. 우리 모두의 앞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죽음의 문 앞에 도착하지 않을 것처럼 살고 있지만 알고 보면 종착역은 같다.
자작은 자신의 재판에 반항하는 사람들 집에 불을 지른다. 유모의 집에도 불을 지르고 버섯마을로 쫓아낸다. 동네 처녀 파멜라를 쫓아다니며 괴롭힌다. 성으로 데려가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두 존재가 세상에서 만나면 언제든지 한 사람은 부서져 버리게 마련이다.’
악마 같은 자작은 누구에게 도움을 주려는 생각이 없다. 파멜라를 공포로 몰아넣고 그녀가 다니는 곳 어디나 따라다니며 생물들을 잔인하게 뭉게버리고 반쪽을 만들어버린다. 인간의 내면에 있는 악마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멋진 청년이 청혼을 해도 한 번쯤 튕기고 싶은 것이 여자 마음인데 파멜라야 말해 무엇할까? ‘잘해주겠다. 사랑한다’가 아니라 네게 무슨 행동을 할지는 나도 모른다고 고백하는 자작. 이런 사람을 어떻게 따라간단 말인가?
나쁜 품성을 가진 사람들의 심리 상태는 이런 걸까? 상대를 만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서로 돕고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한쪽은 부서지기 마련이라니?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자처해서 양보하거나 부서질 리가 없다. 다른 한 쪽이 희생하며 부서지길 바랄 것이 뻔하다. 왜 한쪽이 그래야만 하는가? 서로 도와가며 조율하고 양보하며 관계를 유지해나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텐데. 둘 사이에도 계급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갑자기 착한 메다르도가 등장한다. 사연은 이렇다. 포격을 맞았지만 다른 반쪽이 시체들에 깔려 있었다. 수행자들에게 발견되어 건강을 회복하고 성으로 돌아왔다. 이 반쪽은 선한 일만 한다. 문둥이들이 사는 버섯마을에도 들러 문둥이들의 몸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구하려 노력한다.
‘달이 뜨면 사악한 영혼에게는 악한 생각들이 마치 새끼뱀들처럼 엉켜들었고 자비로운 영혼에는 자제와 헌신의 백합들이 꽃을 피우곤 했다.’
이 구절을 읽고 나의 영혼은 어떤가 생각해보았다. 반반이다. 뱀이 끼어들 때도 있고 백합이 필 때도 있다. 더 많은 백합을 피우도록 노력해야지. 섬뜩한 비유와 표현에 놀랐다. 내 영혼의 많은 번민과 나쁜 생각들을 굳이 표현한다면 저렇게 징그러운 새끼뱀들이 엉켜있는 모습이겠구나 라고 생각하니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반성이 된다.
사악한 영혼의 반쪽과 선한 반쪽이 우리 영혼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착한 자작과 결혼하기로 결심한 파멜라 앞에 악한 자작이 나타나고 둘은 서로 결투를 벌인다. 그러다 악한 자작이 메다르도의 몸이 반으로 갈릴 때 생긴 단면을 따라 칼을 휘두른다. 두 반쪽에게 일직선으로 생긴 상처 때문에 정맥들이 다시 모두 터지고 둘은 쓰러진다. 이때 의사가 등장해 둘을 하나로 묶는 치료를 한다.
그렇게 해서 외삼촌은 사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사악하면서도 선한 온전한 인간으로 되돌아왔다.
지킬앤 하이드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어느 때는 사악한 영혼의 지배를 받다가 가끔은 선한 영혼이 이끌기도 한다. 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로 정반대의 행동을 할 때도 있다. 무엇을 선택해야하는가는 자명하지만 이기심과 질투, 탐욕 때문에 사악한 행동을 한다.
작가의 스토리를 끌어가는 모티브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참혹한 전쟁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고 설정이 특이하다. 있을 수 없는 신화나 잔인한 동화와도 같은 이야기를 통해 인간 내면의 본성을 묘사한 작품이다. 악한 영혼이 지나다니는 곳마다 풍기는 악취를 보고 흠칫 놀란다. 내가 살아온 발자취는 어떤 향기를 풍겼을까? 어느 쪽에 더 많이 치중해 살았나? 강렬하고 솔직한 스토리에 숨을 쉬지 못하고 단박에 읽어버렸다. 신선하고 경이롭다. '뮤지컬로 만들면 끔찍하려나?'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