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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어디 있어요!
【세일즈맨의 죽음】

by 글로

아서 밀러/ 민음사/ 2009년


윌리와 린다부부, 아들 비프와 해피


린다: 왜 그런 짓을 했어요? 오늘 주택 할부금을 다 갚았어요. 그런데 이제 집에는 아무도 없어요. 이제 우리는 자유롭다고요. 자유롭다고요. 자유.....



아이러니, 아이러니, 가장 행복해야 할 때 최고의 불행을 맛봐야하는 상황. 어렵게 세일즈를 이어가던 남편은 생활비를 마련하지 못한다. 변변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아들 둘과 말다툼을 심하게 벌이고 남편은 자살한다.

아들 비프는 농장에서 일하지만 내세울 만한 직업 없이 전전하다 집으로 돌아온다. 동생 해피 또한 여자를 꼬셔서 결혼하고 싶어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남편의 마음과 몸을 살뜰히 보살피고 걱정하는 건 오로지 아내인 린다뿐이다.


잘 나가던 미식축구선수 출신 큰아들은 이제 꿈을 잃고 계획도 없이 빈둥대는 실업자가 되었다. 게다가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아들은 아버지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막말을 쏟아붓는다. 동생 해피도 가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적이 생기지 않고 노쇠한 가장 윌리는 사장을 찾아가 애원하지만 나몰라라 한다. 적당한 일을 준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는다. 남들보다 못한 가족 간의 대화는 막장으로 치닫는다.

25년간의 주택융자할부를 다 갚은 날 가장인 윌리는 나쁜 선택을 하고야 만다.



너무나 유명해서 읽지 않았지만 이미 알고 있는듯한 고전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

왜 이 희곡이 오랜 시간 세계적으로 명성과 공감을 얻을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누구나의 가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 힘들게 생계를 꾸려가는 가장과 직업을 찾지 못하고 꿈만 꾸는 아들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가시 돋힌 말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자살을 암시하는 여러 가지 장치들이 등장하지만 실제로 감행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던 아내 린다는 충격에 할 말을 잃는다.

흔한 갈등, 아버지와 아들들의 험한 말들, 생활비를 충당하지 못하는 가장의 절망. 무엇이 윌리를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이제는 더 이상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는 자신을 향한 비난, 초라함, 아들들의 방황이 그를 절망하게 했을까? 주택이 온전히 자신들의 것이 되었지만 삶을 향한 의욕을 완전히 잃고 죽음을 선택한 윌리의 내면은 괴로움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가장의 무게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미국 전역을 누비며 세일즈를 하고 실적이 높을 때도 있었고 아이들도 모두 성장했다. 시간은 흐르고, 지친 윌리는 젊을 때의 자신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하며 감당할 수 없는 비탄에 빠진다.




아버지나 나나 결국 1달러짜리 인생이라는 아들 비프의 말은 윌리에게 비수로 꽂힌다. 나가 죽으라며 아들을 비난하는 윌리는 결국 죽음을 선택하고 홀로 남은 린다는 울음을 터뜨리지도 못한다. 황망함에 ‘이제 우리는 자유인데 당신은 없네요’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행복과 불행은 쌍둥이처럼 함께 올 수밖에 없는 것일까? ‘저 고개를 넘으면 이제 쉴 수 있겠지? 이 고비를 넘으면 우리에게 무지개가 보이겠지?’ 하는 인간의 단순한 생각은 인생이라는 굴곡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새옹지마 인생은 고생 뒤에 행복이 올 거라는 희망도 여지없이 꺾어버린다.

주택할부금도 다 갚았으니 아들들이 조금만 성실하게 일을 해서 생활비를 충당하면 잘 살 수 있겠지라는 생각은 너무 단순한 생각일까? 그저 가정해볼 뿐이다. 이렇게 하면 저렇게 하면 잘 될 거라는 생각은 꼭 들어맞지 않을 때가 많다. 그렇다면 가정에 불행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완벽한 가정은 없다. 완벽한 인생이 없듯이. 그 끝이 무엇이든 절망으로 치닫지 말아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소한의 희망을 품을 기운조차 없었을까? 윌리의 인생이 처참하게 느껴져 여운이 남는다.



보편적인 소재와 현실적인 대화 내용이 낯설지 않은 건 어느 가정이나 다소의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생계를 이어가지 못하는 가장의 고민과 심리를 모두 이해할 수 없으니 그의 자살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가 더 이상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인생을 이어갈 동력을 잃어버렸으리라.


‘숲이 불타고 있거든’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전방위적으로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때 느끼는 가장의 책임감과 절망은 상상조차 힘들다. 자신이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재난 같은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윌리는 불이 빨리 번질 수 있다는 것을, 모든 걸 삼킬 수 있다는 것을 걱정한 것이다. 자신과 가정을 덮칠 것이라는 예상을 했을 것이다.


그의 자살은 잘한 일이 아니지만 납득할 수 있다. 삶이 무겁게 그를 짓누르며 태울 때 그의 정신은 이미 활활 타올라 현실을 직시할 수 없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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