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말 한마디가 무너뜨린 가족의 평화
“싫어, 너 하고 싶은 것만 하지?”
브런치 카페에 가서 딸이 좋아하는 주꾸미를 먹고 영화 보러 가자고 하자,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명절 내내 비가 와서 남편이 기다리던 낚시를 가지 못해 마음이 상해 있었던 걸까.
그 한마디로 가족 사이의 공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내가 안 간다고 한 게 아니라, 가라고 했는데 10시 넘었다고 당신이 안 간다며?”
지기 싫은 마음에 나도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 순간부터 나의 감정이 틀어졌다.
아니, 남편에게 묶여 있던 오래된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딸! 우리 둘이 가자.”
어찌 되었든 참고 옷을 챙겨 입으며 딸을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이 아무렇지도 않게 옷을 입고 나왔다.
“안 간다며? 왜 옷 입고 나와?”
그냥 모른 척 같이 나가면 될 일인데, 꼭 이렇게 말을 던져 감정을 건드린다.
그게 미워서 또 한마디 해버렸다.
그때 딸이 방에서 나왔다.
그런데 입은 바지를 보고 내가 한마디 하자,
“내가 말했잖아. 그거 안 입는다고! 엄마가 알았다고 했는데.”
짜증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결국 우리는 브런치 카페에 도착했고,
웨이팅 자리에서 남처럼 떨어져 앉아 있었다.
“딸, 우리 가족 이대로 가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주문을 마친 후 조심스레 물었다.
“끝장이지.”
딸의 대답이었다.
왜?
우리 가족은,
딸이 ‘끝장이지’라고 말할 만큼의 사이가 되어버린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누구의 잘못일까?.
가족 간의 문제는 누구 한 사람 때문만은 아니다.
서로의 감정과 방식이 얽히고 쌓여 만들어진 결과다.
남편이 대화가 안 되는 사람일지라도,
집안일을 전혀 돕지 않고,
부탁을 해도 듣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그 안에는 분명 나의 문제도 있다.
그 문제의 시작은,
아마도 어릴 적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것 같다.
어린 시절,
대화가 통하지 않는 아버지,
술만 마시면 폭언과 폭력이 이어졌고,
그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어머니와, 당하기만 했던 어린 나.
아버지의 폭력으로 집 안 벽은 담배 연기로 누렇게 변했고,
문과 가구엔 폭력의 흔적이 남았다.
허름한 월세 집은 아무리 치워도 지저분해 보였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나는 어른이 되어
‘흐트러짐’이 싫은 사람이 되었다.
현관의 신발은 나란히,
책상 위 물건은 제자리에,
외출복은 들어오자마자 걸어야 한다.
깔끔함은 내게 ‘안전’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정반대다.
집에 들어와도 외출복을 벗지 않고,
책상 위는 늘 뒤죽박죽,
심지어 손톱깎이와 잘라낸 손톱까지 그대로 올려둔다.
싱크대엔 설거지가 쌓이고,
밥상을 다 차려도 한참 후에야 식탁에 나온다.
15년 동안 좋게 말해도, 화를 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어느새 딸에게서도 남편의 모습이 비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딸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과거의 나, 지금의 남편, 그리고 점점 그 모습을 닮아가는 딸을 바라보며
나는 자꾸 묻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그래서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말이 제일 쉽고도 어렵다.
하지만 나는 지저분하게 살기도, 흐트러짐 속에 있는 것도 싫다.
지금까지 가족의 방과 책상을 정리해 온 것도 나다.
그런데 이제는 내 몸도, 마음도 지쳐간다.
오늘도 남편에게, 딸에게 짜증을 냈고
지금,
우리는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일을 하고 있다.
남처럼.
과연,
우리 가족은 안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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