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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Oct 13. 2021

시골 돈 1억으로 살 수 있는 것

 주 2회 파견근무를 가는 교동도 난정 보건진료소의 하루는 그야말로 육체와 정신이 서로 이탈하려는 현상을 막기 위해 부단히 애써야 한다. 주 5회 하는 진료소 운영을 단 이틀에 걸쳐해야 하니 하루 진료 환자수가 평소 평균의 두 배 이상이기 때문에 민원 응대와 쉬지 않고 걸려 오는 전화, 그리고 각종 보고서와 물품 관리에 신경을 쓰다 보면, 어떤 기업에 몸 담은 미생의 하루를 생각하며 그를 응원하게 되곤 한다.


 지난 목요일은 모처럼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되는 멋진 날씨여서 몸도 마음도 가볍게 교동대교를 건넜다. 집에서 자가용으로 4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이니 아예 일찌감치 출발하여 느긋하게 날씨를 만끽하며 출근한 후 진료소 뒤 언덕에 길게 가지를 늘어뜨리고 주저리주저리 열매를 달아맨 산딸기를 발견하여 이리저리 사진을 찍으며 그 색감을 즐기는데, 미처 업무 시작도 전에 전화가 울렸다. 냅다 달려가 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말투만은 평정하게 내려고 애쓰면서.

"건강하세요, 난정 보건진료소 김수진입니다."

'오늘 진료소장님 오시는 날 맞죠? 몇 시에 가면 진료받을 수 있나요?'

"네, 아버님, 지금 오시면 됩니다."

'거기 오줌 소태도 치료받을 수 있나요?'

"오줌소태는 요로감염이 원인이라서 병원에 가셔서 소변 검사받으시고 거기에 맞는 약을 쓰시는 것이 제일 빠르고 확실합니다만"

'병원에 갈 처지가 못돼서 전화해 보는 거예요.'

"거동을 못하시나요?"

'우리 집사람인데 거동을 못해서 유모차 끌고 가까스로 다니는 꼬부랑 할멈이에요.'

"정 그러시다면 일단 급한 증상 완화를 위해 약 정도는 조제가 가능하니 나와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한시적으로 대리처방도 가능합니다."

'알았어요, 지금 갈게요'


흔히 '오줌소태'라는 표현을 쓰는 증상은, 요로계 감염이 원인이다. 오줌소태가 나면 소변을 볼 때 탁탁 쏘게 아프거나 소변이 자주 마렵지만 시원하게 나오지 않고 아랫배가 묵직하고 소변 색이 탁하다. 나이가 들어서 걸리시는 분들은 대부분 면역이 떨어지거나 용변을 본 후 뒤에서 앞으로 닦는 습관을 가진 분들에게서 자주 나타나곤 한다. 잠시 후 오토바이 소리가 나고 곧 할아버지 어르신 한 분이 들어오셨다.

"어, 마스크를 깜박했네....."

어르신은 현관에 서서 못 들어오시고 당황하셨다. 딱 보기에도 시골 어르신치곤 깨끗한 입성에 몸체도 반듯하시다. 나는 진료실 책상에 준비된 '비말 차단용' 마스크 하나를 꺼내어 어르신께 보여드렸다.

"일단 들어오세요. 제가 이걸 하나 드릴게요."

내가 내민 마스크를 보고 반색을 하며 선뜻 들어오는 어르신께 마스크를 내밀었다.

"일단 벌금 십만 원을 내시고 이 마스크를 쓰세요."

나의 농담에 마스크를 귀에 거는 어르신이 유쾌하게 껄껄 웃는다. 체격이며 눈빛이 나이보다 분명 젊게 사시는 어르신으로 보였다. 시골에서는 드물게 점잖은 말투와 여유로운 자세가 보기에도 멋졌다.

"어머니께서 직접 못 오셨으니 전화 좀 걸어주세요. 제가 자세하게 증상을 여쭤볼게요."

전화를 받는 것도 아주 오래 걸리는 걸 보니 진짜로 거동이 많이 불편하신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자세하게 문진을 해보니 어머니가 불편을 겪으시는 증상은 요로감염이 아니라 요실금 증상이다. 소변이 자주 마렵고 마렵다고 생각하고 화장실을 가는 동안 이미 새어버리니 거동이 불편하신 분에겐 보통 문제가 아닐 것이다. 


 아무튼 통화를 한 후의 주호소를 토대로 할머니의 증상은 감염에 의해라기 보다는 과로 탓인 듯하여 혹시 뭔가 힘겨운 일을 하셨나 물었다. 

"엊그제 논에 약 주는데 줄 좀 잡았다고 그게 힘겨웠는지 모르지...."

경운기의 동력을 이용해 논에 약을 줄 때 누군가 한 명은 줄을 잡아 넘겨주거나 당겨주는 사람이 필요한데 꼬부랑 할머니가 하기엔 그것도 수월찮은 일이다. 

"거동도 잘 못하시는 할머니한테 그걸 시키셨어요? 주말에 자녀들 오라고 해서 같이 하시지. 그래서 병 나신 것 같아요."

어르신이 씁쓸하게 웃는다. 

"딸은 멀리 살아서 일 년에 몇 번도 못 오고 아들은 가까이 살긴 하는데 그거 뭐,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걸 뭘 시켜.... 우리 아들이 지금 마흔다섯인데 서른 초반에 뇌출혈로 쓰러져서 내가 삼 년을 끌고 다니면서 가까스로 살려놓았습니다."

"어머, 정말요? 고생 많이 하셨네요!"

내가 놀라자 어르신이 다시 씁쓸하게 웃으시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아닌 게 아니라 참, 돈으로 살린 거지..."

그 타이밍에 내가 얼른 커피를 한 잔 타서 어르신께 내어드렸다. 어르신이 커피를 손에 들고 희미하게 웃으며 살아온 이야기를 꺼내신다. 


 "내가 그래도 운이 좋아서 나이 칠십에 현찰로 일억을 모았어요. 그 시절에 일억이 면 은퇴해서 먹고살 만하다 생각하던 금액이었지. 그래서 여기 고향으로 내려와서 옛날 살던 집을 싹 개조하고 논도 마련해서 슬슬 농사나 지으면서 좀 살아보려고 맘먹었는데 아들이 쓰러졌다는 소식이 왔어요. 병원에서는 어렵다고 하는 걸 내가 이 병원 저 병원 삼 년을 끌고 다니면서 가까스로 저렇게 살려놨지. 지금은 결혼도 하고 직장도 다니기는 하는데 힘든 일은 전혀 못해. 그래도 살아서 '아버지 아버지' 하니 그것만으로 나는 만족해요. 그때 당시 걔한테 들어 간 돈이 팔 천이야. 그러고 나니 농사를 그만 둘 수가 있나, 먹고 살려니 이 나이 먹도록 기를 쓰고 농살 짓는 거지. 그나마 남았던 돈도 저 할멈이 허리 수술이다, 무릎 수술이다, 해서 다 쓰고 남은 돈이 없지."

"고생 많이 하셨겠어요......"

"그래도 아들이 살아났고 밥 해 줄 할멈이 저렇게 기어 다니지만 있으니까 난 뭐 더 바라는 것이 없어요. 일억이나 가지고 혼자 살면 그게 뭐 좋은 일이 있겠어?"

그렇게 말씀하시는 어르신의 표정은 한없이 평안해 보였다. 약을 가지고 일어나는 어르신께서는 내게 고생이 많다는 말씀도 고맙다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사실 그랬다. 그 시절의 일억 이라면 지금 생각하는 은퇴자금은 되었다. 더구나 시골에서 현찰 일억 이라면 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했을 돈이었다. 젊은 시절 평생을 번 일억으로 느긋한 전원생활을 꿈꾸었지만 아들을 살리고 아내를 살리느라 아낌없이 내어 놓은 그 돈을 어르신은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허긴 누구라도 가족을 살리는데 인색할 사람은 없으리라. 있다고 해도 절대 발설하지 말지어다.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한 일 억 이라면 아마도 백억의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 짧은 시간 돈의 가치는 가속도라도 붙은 듯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시골에선 단 돈 얼마가 없어 원하는 인생을 사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 그 어르신의 일억이 그저 통장 속의 현찰로 지금까지 잠들어 있었다면 보나 마나 지금은 가치가 급속히 떨어져 사람의 긴 수명을 따라가지 못하고 푼돈이 되어버렸을지 모른다. 


 가끔 시골 마을을 위해 땅이나 재물을 내어 놓으시는 분들을 본다. 하지만 자신이 내어 놓은 땅에 지은 경로당이 자신의 것인 양 유세하거나 마을의 대소사에 자신의 뜻을 우기며 큰소리를 내는 분들도 계시곤 하니 '돈은 그렇게 쓰는 것'이라고 쉽게 말하긴 어렵기도 하다. 재물을 기꺼이 버렸다는 것이 내게 교만이 되고 권위가 된다면 재물을 내어 놓았다기보다 '샀다'는 표현이 더 가깝겠다.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담배를 끊고 숙직비를 받아 쓰는 유일한 용돈을 모아 성당에 당시로서는 큰돈을 봉헌한 적이 있었다. 물론 내 부모님은 겸손하셨지만 주변 신자들에게 특별한 대우를 받을 때 싫어하시지는 않으셨던 기억이 있다. 어렸던 나는 그 돈을, 모든 것이 부족했던 우리 오 남매들에게 써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지만 부모님의 기쁨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었다. 하지만 그 돈이 주는 기쁨의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부모님은 십 년을 넘게 냉담 신자가 되어 버렸었다. 심지어 그 돈을 아까워하기고 봉헌을 한 일에 대해 후회하는 말씀도 하셨었다.  


 난정리의 어르신이 아주 오랜 세월 생각할수록 참 잘한 일이라 여기면서 자랑스러워 할 수 있었던 것은 시골 돈 일억이 아니라 그 돈으로 샀던 가족의 건강과 행복이었다. 그것은 누구에게는 당연한 일이고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 어르신의 가족에게는 죽을 때까지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사는 일이었다. 아들은 생명의 은인인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며 아내는 거동이 불편한 가운데에도 남편에게 힘이 되려고 애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관계가 되는 데 사용한 일 억은 얼마나 큰돈이 되었는지. 어르신의 여유와 너그러움은 아마도 자신이 평생 모은 돈으로 가족을 살린 보람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아닐지. 어르신의 그 모습이 내내 오랫동안 내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남긴다. 나까지도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고 용기가 되는 시골 돈 일억. 큰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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