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로니카의 참견 Apr 28. 2022

한식을 배우러 다닌다고?

우리 엄마는 내게 음식을 가르치지 않으셨다.

 전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하고 있는데, 나는 어쩌자고 피난 갈 사람처럼 밤 12시에 얼갈이를 소금물에 절였을까. 아침 6시에 퍼뜩 잠이 깨어 후다닥 일어나 얼갈이 절여진 상태를 보니 다행히 얼갈이 절일 소금물을 심심하게 타서 맞춤하다 싶게 절여져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단 감자 두 알을 슥슥 까서 똑똑 잘라 삶아 채에 받쳐 얼른 식으라고 주방 창문턱에 두고, 간 밤에 씻어 담갔던 보리쌀을 앉혔다. 여름 김치는 무조건 시원해야 하니까 풀을 쑤어 넣지 않고 삶은 감자와 보리밥을 넣을 생각이다. 홍고추를 꺼내어 물에 씻을 참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수돗물이 안 나온다!


 황당했다. 간 밤에 분명 단지 내 방송으로 공지가 되었을 텐데, 저녁 초대를 받고 나갔다가 밤 10시에  돌아온 내 탓이다. 아마도 저수조 청소라도 하는 모양이다. 낭패다.....


 선택은 없다. 그냥 진행해야 한다. 생수 한 병으로 홍고추를 씻고 블랜더에 홍고추 15개, 양파 한 개, 배 반 개, 마늘, 생강, 새우젓 한 숟갈, 생수 조금을 넣고 삶아서 식힌 감자 한 개를 넣고 갈아 놓았다. 물이 나와야 절인 얼갈이를 씻을 수 있다. 혹시 물이 나오지 않으면 통에 담아 직장으로 가져갈 생각도 일단 해 보았다. 


 다행히 잠시 후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쨌든 생수 3리터에 까나리액젓 100ml와 소금 간을 한 물에 갈아 놓은 양념과 식힌 보리밥을 섞었다. 김치는 국물을 찍어 먹어 보아 일단 짭짤하다 싶으면 간은 맞는 것이라고 우리 엄마가 그랬다. 씻어서 물기가 빠진 얼갈이와 쪽파 그리고 풋고추를 통에 한 켜 담은 뒤 양념 물 절반을 붓는다. 그리고 나머지 얼갈이와 썰은 쪽파, 풋고추를 모두 담고 양념을 그 위에 살살 부으면 끝. 출근 시간이 임박하다. 서둘러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는데 윗 층 젊은 이웃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다. 

"오늘은 좀 늦으셨네요? 저도 좀 늦었거든요."

밝은 얼굴로 인사하는 은행원인 엄마의 곁에 키가 훌쩍 큰 아들이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새벽에 일어나서 급살로 얼갈이 물김치 담느라 시간이 지난 줄도 몰랐어요."

"이 시간에 김치를? 와! 대단하세요!"

"시간이 없으니까.... 아들이 이제는 완전히 청년이네! 고3?"

"고3인데 아직도 애기예요. 반찬 투정 겁나 해요."

"엄마가 맛있는 거 안 해줘?"

내가 웃으면서 놀리듯 한 말에 평소 입도 벙긋하지 않는 아이가 툭 한 마디 한다. 

"우리 엄마는 요리를 안 해요."

아들의 말에 나는 웃었고 엄마가 민망한 듯 아들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친다. 

"아닌 게 아니라 요리를 좀 배우러 다녀야겠어요. 직장생활만 해서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다들 그렇지 뭐"

"요리 잘하시죠? 소문 났던데. 어떻게 그렇게 잘 하세요? 요리 배우러 어디 다니셨어요?"  

"그냥 대충 해 먹는 거죠. 배우러 다니기에는 자기나 나나 시간이 없잖아"

"복지관 같은데 야간반 있으면 한식 배우러 다니려고 생각도 해요."

"한식을 배우러 다닌다고?"

"너무 할 줄 아는 게 없어서요...."

"시간 내서 배워 두면 좋지요."


 우리는 짧은 시간 그런 대화를 나누고 '좋은 하루'를 서로에게 나누며 각자 출근길에 올랐다. 출근을 하면서 요리 좀 한다는 나는 언제부터 음식을 맛있게 할 줄 알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할 줄 아는 그 모든 한식 메뉴가 따지고 보면 '우리 엄마 스타일'이 기본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내게 음식을 가르치시진 않았다. 엄마 역시 일하는 엄마였고 새벽형 인간이어서 우리들이 자고 일어나 보면 김치도 국도 찌개도 반찬도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할머니까지 여덟 식구였던 우리 집은 뭐든 대량이었다. 김도 재워 구워 먹었는데 한 번에 100장씩 구워도 일주일이 안 갔다. 나는 그저 엄마가 해 주시는 음식들을 먹으며 어른이 되었을 뿐인데 그 입맛이 내 혀와 뇌에 새겨진 모양이다. 먹어 보면 그 맛이 구현되곤 한다. 엄마도 내 음식을 맛보시며 '내가 한 것 같다'라고 칭찬해 주신다. 신기한 일이다. 


 요리책이며 요리 학원이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결혼 혼수 품목으로 요리책 세트가 들어 있었고 유명 요리 선생들이 방송에 나와 요리를 시연하고 그 선생들이 운영하는 요리 학원이 수강생으로 가득했던 시절. 하지만 나는 요리책 혼수도 요리학원도 갖추지 못하고 신혼 생활을 시작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가족에 대한 사랑이 음식으로도 표현되기 시작하면서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어 내며 내공이 쌓였다. 요즘은 'YOUTUBE'나 온라인 상에서 전 세계의 온갖 요리 레시피가 검색만으로 시연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내 책장에 꽂힌 수많은 요리책들을 더 이상 열어 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 엄마 스타일'의 한식, 그냥 해 먹는 매일의 밥상은 그 어디를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내 입맛에 맞춰 긴 시간을 해내던 음식들은 이제는 '내 스타일'의 한식이 되었다. 지나치게 짜지도 지나치게 달지도 않은 내 음식을 맛 본 '동네 시동생'이 그랬다. '형수님 음식은 얄미울 정도로 간이 딱 맞는다'라고. 그런 말을 들으면 그저 다행이다 싶다. 이름 있는 선생에게서 배운 정통 한식은 아니어도 계절과 제 철에 맞는 식재료를 사용해 그 계절에 꼭 한 번은 먹어야 하는 음식들을 만들어 낼 줄 알게 된 것에 감사하는 것이다. 


 서울살이에 지치고 고단한 자식들이 엄마를 찾아왔을 때 엄마가 정성으로 지어낸 밥상은 약이다. 나의 두 딸들도 금요일 밤, 지칠 대로 지쳐 엄마를 찾아온다. 그리고 주말 동안 엄마의 밥을 먹고 늘어지게 누워 쉬다 보면 '얼른 가서 나도 내 집 청소랑 정리 좀 해야지'하며 힘차게 서울을 향해 떠난다. 그럴 때마다 음식과 약은 그 근본이 같다는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말이 매번 와닿는다. 직장 생활만 하고 공부만 하느라 할 줄 아는 음식이 없어서 배달 음식을 먹다 보면 내 손으로 누군가를 살릴 기회를 잃을지도 모른다. 쿠킹 클래스에 다니는 것이 여의치 않으면 집에서 아주 기본적이고 조리가 간단한 한식을 웹으로라도 배워가며 자꾸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든 한식의 미각 유전자가 깨어날 것이다. 얼마나 좋은가, 내가 한 음식이 내 입에 맛있다는 그 느낌이 바로 행복감을 준다는 것이. (하필 우리 엄마가 한 음식은 맛이 없었다면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면 그만이다.) 최소한 모르는 이에게 팔 음식 말고 내 식구 먹일 음식 몇 가지 정도는 레시피를 보지 않고도 만들 수 있다면, 거기에서도 '주는 행복'과 '받는 행복'이 봄날의 꽃처럼 피어날 것이다. 날이 갑자기 더워졌으니 오늘 퇴근해서 집에 가면 오늘 아침 담가놓고 나온 보리밥 얼갈이 물김치가 적당히 익었을 것이다. 주말에 두 딸들이 엄마 집에 놀러 오면 시원하게 국수를 말아줘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需于血 出自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