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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탈하지 않은 하루를 보낸 너에게.

by 오로시

나중에서야 너에게 연락을 받긴 했지만..

그보다 앞서 다른 친구에게 연락을 받았어.

나에게 먼저 연락이 오지 않아 속상했다기 보다.. 믿기지 않았던 것 같아.


앞으로 겪게 될 너의 마음이,

그 전부터 무너졌을 너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 것 같아서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었어.


자식 입장에서 부모님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니.

병환으로 그동안 아프셨더라도 마음의 준비가 됐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기적을 바라고

내 기적이 유리파편처럼 깨지는 그런 가슴 아픈 순간을 겪어야만 하나봐


너는 4남매의 막내.

그래서 해맑다, 철없다 했지만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막내에게 쏟는 애정은 사실.. 각별한 것 같아.

첫째는 처음이라 어설프고 힘들지만 그래도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아이이고.

막내는 육아의 종종걸음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마냥 예쁘게만 보이는 아이.

그리고 이 아이와의 시간은 가장 짧겠구나... 느껴질 때 마음이 막막해.

미안함은 아닌데... 아쉬움이랄까.


너와 나는 벌써 알고 지낸 지 20년이 지나서 참 편한 사이지만

서로의 고민,아픔을 까놓고 털어놓는 사이는 아니었지

만나면 서로 놀리고, 주고받는 농담으로도 시간이 모자랐으니까.

하지만 내가 한동안 방황하고 연락두절일 때에도 너의 서글서글함으로 우리는 연락의 끈을 놓지 않고 지냈지.


결혼하고 애를 낳으면서 공감대는 쌓여갔지만

바빠서, 멀리 떨어져있어서 서로의 힘듦을, 상처를 알 수는 없었던 것 같아.


너의 아버지가 우리 엄마와 같은 병으로 아프셨고,

호스피스로 옮겨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또 예전 기억이 떠오를 수 밖에 없어.

호스피스 병실, 마지막 인사, 가슴에 묻어둔 회한들...


사람들이 찾아올 때는 정신없다가도 혼자 있을 때 얼마나 가슴 아플지,

낯선 곳에서 새우잠을 자면서도 이건 꿈이지 않을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던 그 순간들.

때로는 그냥 혼자 슬픔에 젖어있고 싶은데 찾아오는 사람들로 인해 그런 감정 조차 내 안으로 구겨넣어야 했을 때.


나는 내가 장례식에 상주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어.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검정색 옷을 입고 슬픔에 잠긴 나를 사람들이 본다는 게.

그건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니까.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시작이더라.

부모님의 죽음으로 인해 다가올 큰 슬픔의 완충 장소가.. 장례식장이었어.


그 3일 간은 제대로 슬플 수도 없잖아.

아파도 아픈 줄 모르고 지나가고,

고인을 기리기 위해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말을 하고, 밥을 먹고

그렇게 나를 3일 간 온전한 슬픔에 빠지지 않게 주변에서 큰 소음을 내고 있는 그 시간들이 없어

바로 혼자가 됐었다면... 내 마음이 버틸 수 없었을 것 같아.


누구에겐 앞으로 닥칠 일.

누군가에겐 이미 겪어본 일.


나에게는 더 이상 떠나보낼 엄마아빠가 계시지 않지.

그래서 나와 같은 일을 당한 친구들을 보면

그때의 내가 떠올려져서 마음이 참 아파.

나는...겪어보지 않았다면 모를 그 슬픔을 일찍 겪어서

앞으로 더 많이 떠올릴 수 밖에 없겠구나 싶어.


그래서.. 먼 거리니 오지 말라는 너의 말은 들리지 않고 그냥 손만 잡아주고 와야지.. 하며 기어이 너에게 가게 된 것 같아.

나는 더이상 행복을 바라지 않아.

그저 무탈한 하루조차도 얼마나 감사한지 알게 되어 버렸어.


편안한 내 집에서

아픈 가족들 없이

-잘자. 내일 아침에 봐 라고 이야기하며 잠들 수 있는 게

내가 꿈꾸는 완벽한 하루가 되어 버린거지.


무탈하지 않은 하루를 보낸 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알아.

그리고 이 글조차 보여줄 수 없다는 것도.

나는 그저 너의 마음을 짐작하며 언젠가는 다시 무탈한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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