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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보기

by 오로시

아이를 키울 때는 땅만 보고 살았다. (물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긴 하다)

아이들은 작으니까 내 눈은 키 작은 아이를 향해 있었고 그러다보면 시야가 좁아지면서 땅만 보고 걷게 되는 거다.

한시도 한눈을 팔 수 없을 때가 있었다.

특히 아이가 아장아장 걸을 때가 가장 위험했을 때였던 것 같다.

잘 넘어지고, 어디로 갈지 모르니 내 눈은 항상 아이를 향해 있었다.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좋은 곳으로 단풍구경을 가도, 벚꽃 구경을 가도 남는 건 아이들 뒷모습이나 위험한 행동을 말렸다는 기억 뿐.

그래서 아이를 낳고서는 장소가 중요하지 않았다.

쇼핑몰이든 광릉숲이든 그 모든 곳이 그냥 집이 아닌 곳. 이었으니까.

집과 집이 아닌 곳. 그렇게 이분화된 세상에서 몇 년동안 머물렀던 것 같다.


이제야 허리를 펴고 나무를 보고 하늘을 본다.


재수생활할 때는 그 폴더폰에 매일 하늘 사진을 찍어놨었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시간이 가는 게 무서웠던 것 같다.

수험생활은 매일 똑같은 일의 반복, 연속이다.

내가 유일하게 다르다고 느꼈던 건 하늘이었다.

내가 봤던 하늘은 단 하루도 같지 않았다.

공부하러 가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던 가장 생산적이고 창의적이었던 일.

하늘 사진을 찍으면서 다짐 했었다.

매일 하늘 사진을 찍고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기록하고 싶다고. 그 당시에는 사진만 찍었지 기록까진 못했었다.

그리고 그 과정이 번거롭기도 했다.

핸드폰의 사진을 컴퓨터에 전송시켜서 또 노트북이나 피씨로 글을 써야했으니까.


20년 후에 컴퓨터가 내 손에 들어왔을 줄이야. 그때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매일 하늘 사진을 찍어서 올릴 수 있는 챌린저스 같은 도전하는 앱도 있고, 일기를 쓸 수 있는 앱도 있고

바로 사진을 찍어서 여러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sns도 있다.


그러나 난 어느 것도 하지 않고 있다.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사진을 찍으면서도

사진을 정리하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어버렸고

화질 좋은 카메라가 핸드폰에 달려있고, 사진기이자 인터넷까지 되는 컴퓨터를 들고 다니면서

마음만 먹는다면 매일 글이나 사진을 올릴 수도 있는데 말이다.


20년 전 폴더폰에 달려있던 카메라 화질을 생각하면 지금은 엄청나지 않은가!!

요즘은 너무 편해져서. 너무 많아져서

그것들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20살 때는 하늘사진 한장에도 마음을 담고, 하늘 사진을 찍고 싶었었는데...

필름 카메라의 한방 한방이 참 소중했는데.


지난 8년을 땅만 보고 다녔으니

이제는 하늘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쩌면 하늘사진을 찍고 일기를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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