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잡아줘서 고마워. 잘 버텨줘서 고마워
벌써 결혼 10주년.
10년 전 입동 때 결혼을 했다.
그때는 그날이 절기상 입동인지도 몰랐다.
스몰웨딩 레스토랑 야외결혼식을 계획했다가 그날 비가 엄청 와서
급하게 레스토랑 실내로 바꿔서 식이 끝나고 다시 음식 먹을 장소를 세팅하느냐 아주... 난리법석이었던 결혼식.
10년 후에는 아이들과 다시 발리에 왔으면 좋겠다고 신혼여행 중에 이야기했었는데
그때는 몰랐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다 보면 10년은 훅 간다는 걸.
아이가 없다면 모를까...
아이를 키운다면 10주년에 아이를 데리고 가긴 무리라는 것을.
나만해도 막내가 4살인데 감히 엄두도 못 낸다.
결혼 10주년이 되면 마냥 행복할 줄 알았는데
되돌아보니 자꾸 마음이 씁쓸하더라
나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뿌듯하고 즐거운 마음보다 왜 무거운 걸까.
며칠 동안 왜 그럴까.. 를 생각해 봤다.
지난 10년은 자의식이 강했던 내가 철저히 사라진 시간들이었다.
나로 살지 못한 10년은 그 중간중간 우울이라는 파도가 나를 집어삼켰고,
내가 없으면 먹지도, 씻지도, 살아갈 수도 없는 연약한 생명체를 돌보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도, 제대로 쉬지도 못한 시간들이었다.
내가 아니라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온 시간 10년.
뿌듯하고 행복한 순간도 있었겠지만
나처럼 개인적이고 자의식이 강한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날 장어구이를 먹고 들어오면서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10주년이 되면 되게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런데 씁쓸한 감정도 있네. 그래서 좀 당황했어.
이제 내가 없어진 것 같아.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이제는 모르겠어.
나는 행복이들 엄마로만 존재하게 되어버린 것 같아.
그래서 10년 동안 내가 참 많이 흔들렸는데... 나 잘 잡아줘서 고마워
남편이 말했다.
-잘 버텨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