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 파트너 이석재 Aug 19. 2020

인내라는 독선에 대한 자각

떠도는 마음에 귀 기울이다

너, 작아졌구나


방사선 치료를 시작한 지 삼일이 지났다. 거울을 보고 놀라운 변화를 보았다. 거울에 비친 환부가 처음의 크기보다 20 퍼센트 이상 작아 보였다. 나도 모르게 환부에게 말을 했다. "너, 작아졌구나." 겉으로 확연하게 보였던 환부가 눈에 띄게 줄어든 모습이다. 악성 종양이 아니고 지연성이라서 그럴까? 정확하게 언제 인지를 알 수 없다. 아마 작년 초인 것 같다. 면도를 하면서 턱 밑에 작은 혹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그때의 느낌보다 훨씬 크기가 크다. 그러나 치료를 시작할 때의 크기와 비교하면 놀랍게 작아졌다. 고맙다. 감사하다.


환부와 대화를 하다


  나는 환부와 대화를 해 보기로 했다. 심리치료에서 사용하는 포커싱 기법이다. 가끔 감정이 격해 있거나 깊은 슬픔이나 우울, 무력감, 한으로 힘들어하는 팀장이나 임원을 코칭할 때 사용했다. 지금이 좋은 시간이다. 새벽 4시경에 눈을 떴다.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떠돌았다. 거실로 나와 불을 켰다. 모두 잠든 시간이다. 적막이 흐른다. 거실의 불을 켜 둔 채 아주 편안한 자세를 가졌다. 잠시 후 환부와의 대화를 마치고 돌아와 경험한 것을 글로 남긴다.


  눈을 감았다. 나는 두정부에서 시작해 의식이 멈추는 곳까지 몸을 스캔하며 내려갔다. 그래. 거기에 있었구나. 나도 네가 거기에 있는 곳을 알고 있지. 연한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손바닥으로 그곳을 감샀다. 네가 아파하고 있구나. 미안하다. 일 년이 넘게 함께 있으면서도 이렇게 너와 대화를 해보기는 처음이다. 나는 너를 어떻게 부르면 좋을까? 나는 너에 대한 글을 쓸 때 '밀입국자'라고 이름을 붙였다. 지금 너에게도 알려줄게. 너의 이름은 밀입국자야. 만나서 반갑다.


  나는 밀입국자와 인사를 나누고 난 후 그를 느껴보기 시작했다. 그에게서 통증이 느껴진다. 그 통증이 손바닥을 통해 나에게 전해 진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너의 통증이 왜 나에게는 눈물일까? 나는 눈물을 타고 그의 통증으로 들어가 본다. 피에 젖은 그의 상처를 본다. 붉고 오묘한 색들로 채워져 있다. 그는 둥근 집에 살고 있다. 지친 모습을 하고 있는지 그의 겉옷은 어두운 색이다. 나는 그 아픔의 근원을 알고 싶다. 너는 어디에서 왔으며 지금 여기 아픈 모습으로 나를 찾아온 이유를 알고 싶다. 너는 왜 여기 있니?


   그의 아픔에서 내가 하고 싶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내 모습을 본다. 나의 부족한 부분과 불완전한 부분을 견뎌내며 노력하는 과정을 버텨주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본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색도 하지 못하고 인내라는 이름에 갇혀 있는 내 아픈 마음을 본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내면의 아픔이 그만큼 컸음을 내게 느끼고 알게 해 주려는 것이구나. 어쩌면 네가 없었다면, 나는 의욕과 의지라는 이름으로 너를 계속 힘들게 했을 것이다. 지금 네가 밀입국자의 이름으로 이렇게  내게 나타난 것은 무심한 나에 대한 호소였구나.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초집중할 때 너는 그동안 아픔을 견디며 나를 도와주고 있었네. 이제 더 이상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이렇게 찾아왔구나. 너에게 이 큰 아픔을 줘서 미안하다. 늦었지만, 지금부터 내가 너를 돌봐 줄게. 네가 나를 찾아왔듯이 나도 너를 찾아갈게. 그동안 무심한 나를 용서해줘. 나는 밀입국자를 깊게 안아주었다. 그의 아픔이 온전히 전해졌다. 그의 아픔은 나에게 각성과 자각으로 다가왔다. "이제 너는 입국자야. 나의 일부야." 나는 그를 더 깊게 꼬옥 안아주었다.


인내라는 독선에 대한 자각


  나는 입국자를 통해 삶을 살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지난한 노력을 하는 또 다른 나를 보았다. 의지를 내세우고, 상황을 통제하고, '이것만 마치고 쉬자'라며 힘들어하는 몸의 신호를 그동안 무시하며 눌러왔다. 그 마음이 몸에 상처를 남겼다. 밀입국자를 통해 내 정신의 뒷모습을 보았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앞으로 나갈 때 끌려오는 또 다른 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때로는 인내라는 말이 얼마나 의지와 의욕의 독선인가. 인내로 상처 받은 또 다른 내가 여기 있다. 내 정신의 상처는 곧 몸의 상처로 남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내 정신의 뒷모습이다. 무형의 정신이 몸의 형체를 빌어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그릇을 깨뜨리는 것은 몸이 아니라 정신이다.



 

톨레도, 스페인


작가의 이전글 경계인의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