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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 파트너 이석재 Aug 21. 2020

밀입국자, 내게 은밀히 찾아왔다

마음이 방황하다

2018년 하반기로 생각한다. 사실 정확히 몇 월인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어렴풋이 그렇게 추측하는 것이다. 아침에 면도를 하는 데 면도날에 묵직함이 느껴졌다. 낯선 느낌이다.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거울을 보면서 얼핏 목을 만져보니 작은 몽우리가 있다. 이게 뭐지?


너는 누구냐?


  나는 그렇게  몸에 은밀히 침투한 밀입국자를 만났다. 만져 보니 제법 손끝으로 느낌이 전해졌다. 분명히  보던 징후였지만 피부 안에서 체온을 감싸고 있다 보니, 마치 나의 일부인  같았다. 이리저리 만져 보았다. 순간 멈칫했다. 혹시? 그러나 통증도 없고 그냥 함께 있는 분신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여러 증상이 소개되었지만, 일단 내 관심을 끌지 못했다. 나의 관심은 책을 출간하는 데 쏠려있었다. 소소한 일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오른쪽 턱 밑의 녀석도 관심 밖이었다.


  나와 체감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처음 알게 된 이후 면도를 하는 날에는 유심히 거울을 보며 그 부위를 만져보고 변화를 살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는 했으나, 그 이후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냥 인식의 대상이 되었을 뿐이다. 신분 상승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내 삶의 영역으로 들어온 밀입국자의 위장 전술은 대성공이었다. 내가 바쁜 시기에 나타나 얼굴을 내밀고 신고를 했다. 그리고 나의 무관심에 편승해 삶의 터전을 꾸렸으니 말이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다. 2020년 2월경에 프로필 사진이 필요했다. 새로 출간하는 책, ‘코칭 방법론’의 저자 소개를 위한 것이다. 그동안 후배가 찍어준 사진을 사용했는데, 새로운 분위기의 프로필 사진을 갖고 싶었다. 프로필 사진 전문점을 찾아가 촬영하는 것을 생각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공개적으로 실체를 드러내다!


  국민대 경영대학원에 '리더십과 코칭 MBA' 과정이 개설되었다. 첫 학기에 1기 생을 대상으로 '코칭 심리학'을 강의했다. 사실 나는 한양대 교육대학원에서 기존 과목을 코칭 심리학으로 개명해서 강의한 적이 있다. 나는 심리학자이며 코칭 1세대로서 코칭 심리학을 키우고 싶었다. 관련 연구도 하며 교재도 집필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지속하지 못했다. 그때 리더십과 코칭 MBA 1기 생으로 과정에 참석했던 한 수강생은 참 다재다능했다. 그중에 하나가 사진을 찍는 것이다.


  어느 날 전화를 걸어 내 프로필 사진을 부탁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내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지금까지 사용하는 프로필 사진은 그가 찍은 것이다. 그와의 추억을 상기하는 이유는 그때 턱 밑의 밀입국자가 프로필 사진에 보이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밀입국자는 프로필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세상에 자신의 실체를 드러냈다. 나는 얼굴의 방향을 틀어 그를 숨기려 했지만, 가끔 사진 각이 좋은 장면에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세상 사람은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는 언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사실 난 아직 그를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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