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축하해.
네가 떠나고 세 번째 생일이 돌아왔어.
생일날에 맞춰 좋아하던 케이크와 함께 자기 산소에 들렀어. 그동안 비도 오고 궂었던 날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청명한 가을을 보여주더라. 맥문동은 정말 나무처럼 씩씩하게 키가 커있었고, 그 틈에서 단정화도 붓꽃도 잎이 두 배는 튼튼하게 커있었어. 내년 봄엔 꽃을 볼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럼 각시붓꽃과 함께 예쁜 봄이 될지도. 저번에 벌초하다 모기에게 100군데 정도 물린 이후 1달은 넘게 못 왔네, 미안.
너무 일을 많이 해서 글을 쓰지 못했어. 차를 몰고 집에 오는 길에 자기가 선곡해 둔 음악들을 들으며 울컥하다 집에 오면 씻고 쓰러졌어. 아침에 자기에게 인사하고 나와서 또 차 안에 있는 작은 사진에 대고 때로는 그리움을, 때로는 원망을 내뱉다가 사무실에 도착하면 일에 휘둘려서 지냈어.
뭐랄까, 만약 평생을 사는 삶의 에너지가 있다면 '조금씩 길게'가 아니라 '많이 짧게', 화염처럼 쏟아내고 빨리 이 삶을 끝내고 싶다는 비밀스러운 소망이 숨어있더라고. 세상살이 현명하게 한 이들이 본다면 바보 같은 일이라 할지 모르나, 현명함이 삶의 모두가 아니지. 나는 종종 내게 중요한 그 모든 것을 너와 함께 보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남들이 보기엔 멀쩡하니 잘 살아있다 할지 몰라도, 사실 여기 남아있는 건 일종의 껍데기, 흔적 같은 것일지도. 많은 이들이 시간이 가면 괜찮다고 하고, 또 그건 시간이 가지는 위대한 힘이기도 할 거야. 그 말이 진리에 가깝다고 알고 있긴 해, 시간이 흐르며 새로운 경험을 하고 그것이 나를 변화시킨다면 말이지.
거부할 생각은 없지만, 글쎄. 나는 마치 권교정의 마법사처럼, 내 마음을 너와 헤어지는 순간에 두고 와버렸는지도 몰라. 그런 것 치고는 여전히 화도 내고 하는 걸 보면... 아니겠지만.
분명 목소리도 너를 만지던 촉감도 희미해져 가는데, 왜 너를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같을까. 이미 죽은 사람을. 다시는 만져보지도, 말도 생각도 나누지도 못하는데. 살아있을 때 더 잘해주지 못했다는 후회 때문일까. 아니면 떠나고 나서야 네가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당연하게 받았던 애정들이 결코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어떤 마음으로 내게 그랬을까, 그 힘들 때 왜 아무런 하소연도 호소도 하지 않았을까를 이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그때 알았었어야지, 이제야 후회하면 뭘 하나. 이 한심함이라니.
여하간 자기는, 그 고통 속에서 의연하게 마무리함으로써 내 마음을 붙잡아두는 데 성공했어. 그런데 이게 성공일까. 자기가 그런 걸 바란 걸까. 머리는 아니라고 보는데, 내가 행복하기만을 바래고 또 바랬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행복하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안 생기네.
부모들이 소중하게 안고 가는 아기들을 보면 생각한다, 저렇게 행복해 보이는 아기로 다시 태어난 거라면 참 좋겠다고. 꼭 한 번씩 웃어주고 손 흔드는 데는 그런 마음이 있더라고. 모든 소중한 이를 떠나보낸 이들이 다 그럴지도 모르지. 아니면 인간살이 너무나 힘들어서 소원대로 참나무가 되었을까.
가을이 왔어. 밤이 보이기 시작해. 두 번째 호스피스 병원에서 나와서 시골집 아래까지 내려갔다 올라오며 주운 밤을 꼭 쥐어주던 손길이 떠올라서 또 눈시울이 붉어지지. 이러다 곧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오면 네가 떠난 추운 시간이 돌아오겠지. 여전히 잘 지낸다고는 말 못 하겠어. 어차피, 너도, 더 이상은 내게 말을 하지 않잖아. 이젠 더 이상 어떤 방법을 찾으려고 하기도 힘들어. 그냥, 이렇게 시간을 보내보자, 어떻게라도 되겠지... 하는 생각뿐.
생일축하선물치 고는 내용이 너무 썰렁하지? 어쩌겠어, 내가 요즘 이런 것을. 싫다면 꿈에라도 나타나 말해주면 되지 않을까. 보고 싶다, 여전히.
그래도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나와 만날 수 있어서, 내가 보내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해.
태어나줬어서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