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도망치고 싶은 과거가 있다.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과연’ 있을까?
놀랍지는 않지만, 우리가 처한 지금의 모습은 어느 한 순간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쌓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과거가 한겹씩 쌓여서 현재의 내가 빚어진 것. 과거의 빛남도, 어수룩함도, 좌절도 모두 나의 것이고 그 모든것이 현재의 나를 만드는데 기여했다. 십 대 시절을 겪은 누군가는 어렴풋이 또는 선명하게 기억할 것이다. 열여덟이라는 나이가 가지는 삶의 무게가 결코 공기처럼 가볍지만은 않다는 것. 모두들 아무생각 없는 듯 해맑게 웃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제각각 무게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의 주인공은 서유리라는 이름의 고등학교 2학년 소녀다. 익숙해 보이던 소설이 조금 낯설었던 것은 아마 유리가 입양 출신이라는 것 때문일 것이다. 유리는 본인의 입으로 한번도 자신이 입양아라는 것을 알리지 않았고, 앞으로도 결코 밝히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2년이 지나 대학에 가게되면 엉켜있던 과거따위는 모두 잊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4년 전액 장학금, 기숙사, 취업전망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다. 그만큼 자신을 옭아맨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유리는 과연 자신의 출신으로부터, 가족으로부터,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목표 충만한 유리의 삶에 어느 날 뜻하지 않은 방해꾼이 등장한다. 유리 자신을 입양했던, 소식 모르던 엄마의 죽음과 함께 등장한 그의 ‘친’아들 연우. 11살 연우는 엄마의 죽음과 함께 유리네 집으로 오게 된다. 이런 연우의 등장은 유리의 목표와 기대했던 삶을 서서히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겨우’ 아이 하나 들어왔을 뿐인데. 연우를 키워줘야 할 할아버지는 암 선고를 받고 치료를 받고 있으며, 남은 생을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연우 아빠를 간신히 찾았지만, 연우의 출생을 모르고 이미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유리가 연우를 키워야한다는 강력한(?) 의무는 없지만, 왠일인지 유리는 자신의 삶에 어느덧 연우와 함께하게 된다.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던 집이었는데, 어떻게 된 것일까? 연우와 함께 하겠다는 결정은 유리의 삶을 생각치도 못한 방향으로 이끌고, 이 소설은 이어진다.
인생이 버거운데는 각자의 이유가 있지만, 마음이 가벼워지는 법은 어쩌면 단 하나 있다.고 이 소설에서 말한다. 그것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버거운 삶을 조금씩 가볍게 만들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조금 버틸 수 있지 않을까?
과거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그 순간에도 나는 인생을 충실히 살았고, 누렸고, 버텼다. 그런 삶이 지속되어 현재 은은히 존재하는 내가 있다. 그 누가 자신의 인생을 ‘감히’ 사랑하지 않는다 말할 수 있을까. 만족스럽지 못한 현재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도토리 만큼의 맘에 드는 구석이 있을 테고, 버리고 싶었던 과거도 돌이켜보면 밥알 만큼 내 인생에 기여했을 것이다.
과거를 ‘훌훌’ 털고 싶었던 유리가 하루 하루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가듯 오늘 하루도 ‘훌훌’ 지나가 내 인생을 다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