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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우드 Apr 11. 2021

오늘도 먹어치우셨나요?

먹는 것만큼은 자유롭고 싶다.

2학년 담임을 했을 때 가장 곤혹스러웠던 점은 점심 급식이었다. 11시 30분부터 급식을 먹어야 하는데배가 전혀 고프지 않았던 것이다그도 그럴 것이 매일 아침 배고파를 외치며 일어나 주섬주섬 챙겨 7시 30분에 배부르게 먹고 출근하기 때문이다덕분에 오후 1시가 넘으면 슬슬 뭐 좀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러한 식습관이 문제가 될 줄이야.


학기초에는 그래도 아이들에게 올바른 급식의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받아먹었는데점점 이건 아닌데 싶었다매일 더부룩한 배를 부여잡고 억지로 먹으려고 하니 그런 고역이 따로 없었다결국 한 달이 지나고 더 이상 못 먹겠다고 선언했다괜한 의지로 혹사시킨 내 몸에게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었다그래도 중간에 그만둬서 다행이지 억지로 꾸역꾸역 일 년 동안 먹었으면 아마 내 몸은 내 몸이 아닌 게 되어 버렸을지도그렇게 급식을 중단하고 아이들이 하교한 후 2시 이후에 간단히 점심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만큼 먹으니 살 것 같았다. 이게 뭐라고.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무조건 밥을 다 먹어야 했다집에서든 학교든 장소를 불문하고 반찬이 맛이 없어도속이 안 좋아도별로 허기지지 않아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처음 학교 급식을 할 때당연히 식판을 싹싹 비우고 교실로 돌아갔었다그런데 나는 왜 급식을 남기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돌이켜보면 학교와 집에서 그런 교육을 받았던 것 같다음식을 남기는 것은 힘들게 일한 농부 아저씨에게 정말 죄송한 일이고(실제로 우리 아빠가 농부다)지구촌 어딘가에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어른들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배가 홀쭉하여 갈비뼈가 당연하게 드러나 있는 아프리카의 알지 못하는 아이들의 영상은 어른이 된 지금도 정말 충격적이었고음식물을 남길 때마다 그 아이가 생각났다. 그래서 잔반통으로 가야 할 음식조차 입에 넣었다. 내 입은 쓰레기통이 아닌데.


 물론 이런 교육은 지금도 초등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진다특히 저학년 급식지도에서는 음식물을 남기지 않고 골고루 먹어요.라는 것이 거의 불문율이 정도로 골고루 싹싹 다 먹는 것은 급식지도에서 굉장히 중요한 영역이다때로는 급식 관련하여 학부모의 전화를 받기도 한다. 집에서 먹지 않는 채소 반찬은 담임선생님이 이야기하면 먹으니까 잘 좀 부탁드린다고. 민원 전화가 아닌 '부탁'이기에 거절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아이를 키워보니 학부모의 마음이 어떤 건지는 조금은 알겠다. 육아에서 아이가 이것저것 잘 먹는 것만큼 고마운 것이 없다잘 먹는다는 것은 아이가 현재 건강하고, 아이의 키와 몸무게가 적어도 평균 이상은 된다는 의미를 가진다. 또한 음식을 준비하는 부모는 어떤 반찬을 해줘야 잘 먹을까 하는 부담감을 조금 덜 수 있다입이 짧은 아이에게는 끼니때마다 어떤 음식을 해주면 좋을까 고민하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걸 아니까 더욱더 학부모 부탁을 거절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어느 날 유치원에 다녀온 아이가 말을 했다

"엄마 이건 먹기 싫었는데선생님이 다 먹어야 스티커 준다고 해서 먹었어

근데 정말 먹기 싫었어요."


 ..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해줘야 하는 걸까선생님 말씀은 잘 들어야 하니까 무조건 잘했어먹기 싫은 반찬도 남기지 않아야 하고음식은 골고루 먹어야 한다고 대답해야 했었나. 정말 이성적이고, 교과서적인 답이다. 그런데 현실은 교과서와 다르다. 이럴 땐 솔직하게 말했다그 반찬이 맛이 없지. 엄마도 잘 못 먹어. 그런데 선생님은 왜 먹으라고 했을까. 아마 골고루 먹어야 키가 크니까 그렇게 말씀하셨을 거야. 그런데 정말 먹기 싫으면 선생님께 말씀드려. 알았지?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도 매번 혼란스럽다. 


아이는 내 말보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법이니, 내가 이렇게 말해도 아마 유치원에서는 먹기 싫은 반찬도 다 먹을 것이다.  반찬투정은 그걸 받아주는 집에서나 가능할 일이겠지.   


올해 담임을 맡은 5학년 아이들에게 부탁한 것은 나는 잔반 검사를 하지 않을 테니 먹을 만큼 적당히 먹고남은 잔반은 모아서 버려달라는 것이었다이렇게 말한 바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고기를 잘 먹지 않는 나는 고기반찬이 나올 때마다 난감하다반찬을 주시는 급식 조리원에게 매번 고기 안 먹어요라고 말하는 것도 민망하다고기가 거의 매일 나오기에 그것을 빼면 다른 반찬 중 먹을 것이 거의 없지만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다어떤 날은 고기를 빼고 나니 먹을 것이 김하고 깍두기 밖에 없어서 우리 집 식탁을 보는 것 같아 웃음이 나기도 했다나부터가 이렇게 편식쟁이인데 누구한테 골고루 먹으라 강요할 수는 없지 않은가


스스로 고기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은 이미 성인이 된 후의 일이었다그 전에는 주는 대로 남김없이 먹어치우는데 익숙하여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잘 맞는지 따져볼 시간이 없었다언제부터인가 고기를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고소화가 안 되는 것이 분명히 느껴졌다그리고 고기를 씹을 때 오래오래 씹다 보면 이것이 무슨 맛인가 싶은 느낌이 들어서 회의감이 들었다그 이후로는 나는 덩어리 고기를 먹지 않는다.


물론 고기를 좋아하고잘 맞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학생들 중에도 고기가 없으면 오늘 먹을 게 없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많다그리고 고기반찬이 없으면 종종 학부모로부터 급식이 부실하다는 전화를 종종 받기도 한다그렇기 때문에 초등학교 급식에서 고기를 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그렇게 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때로는 음식이 먹고 싶지 않은 날도 있다. 어딘지 불편하고 불안한 날은 별로 음식이 당기지 않는다어른이든 아이든 자신의 몸이 보내는 신호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본인이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면 안 된다. 괜히 남기지 않으려고 습관적으로 다 먹다가는 몸의 신호를 무시한 결과니 체하거나 먹고 나서 오히려 기분이 나빠질 수 있는 것이다몸은 거짓말을 못한다.      


좋은 식습관이란 무엇일까. 초등 교사의 급식 지도는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까. 매번 먹는 것을 앞에 두고 하는 고민이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아무렇지 않게 버리는 것은 여러모로 문제가 있지만 그것보다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는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것이 조금 더 중요하지 않을까


아이든 어른이든 자신에게 맞는 식습관을 찾는 경험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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