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다섯 살 아기들이랑 놀기
아침부터 꾸물꾸물 구름이 끼어모이는가 싶더니, 수업 직전에 비예보가 뜨더군요. 다행히 수업 90분 전에 떠서 어머님들께 비소식을 전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늘은 다섯 살 아이들과 비 오는 숲엘 다녀왔습니다. 비가 왔다고는 하지만, 그냥 부슬비 수준이었죠. 그래도,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우산은 필수입니다. 숲에서 체온이 떨어지면 좋을 것이 없거든요. 특히나, 이제 갓 아기티를 벗어나기 시작하는 아이들은 잘 놀다가도 갑자기 체력이 떨어지곤 해서, 체온의 유지는 더욱더 중요합니다.
이제 겨우 한두 번 숲에 온 아이들과 비 오는 날 무얼 하고 놀까 고민하다가, 숲길 산책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지난번에는 북쪽에 있는 도토리숲에서 놀아봤으니, 이번엔 남쪽에 있는 도깨비숲에 가볼 생각이었죠. 마침 도깨비숲에는 약수터 쉼터가 두 군데나 있어서, 혹시라도 비가 쏟아지거나 한다면, 잠시 지붕아래에서 비를 피하기도 좋습니다.
보통 숲에서 소나기가 내린다면, 오늘처럼 부슬부슬 올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쏟아집니다. 시간당 20~30미리쯤 되는 양의 강우가 삼십 분 정도 쏟아진 후 맑아지는 것이 패턴이죠. 그래서, 소나기가 쏟아질 때는 무조건 바로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 멀리 있는 지붕을 찾아가는 길에 비를 맞기보다는, 엉성하더라도 가까운 나무밑에서 비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게 낫죠. 우산이 있어도, 30미리 정도 되는 비가 온다면, 어깨며 바짓단이며 젖게 마련이거든요. 어린아이들과 함께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렇게, 오늘은 남쪽 계곡을 지나 도깨비숲엘 갔었습니다. 가는 도중에 만난 계곡에 내려가서, 난생처음 가재도 잡아봤죠. 아이들 손가락 만한, 가재와 손톱만 한 아기가재도 잡았습니다.
가재는 보통 삼 년이나 사 년을 산다고 하는데, 계곡의 얕은 물속, 돌멩이 아래에 숨어서 옆새우나 작은 물벌레들을 사냥하며 먹고삽니다.
난생처음 가재를 잡아본 아이는, 겁도 없이 자기도 한번 잡아보겠다며 주변의 돌멩이를 들추기 시작했는데, 마침 방금 잡았다가 풀어준 가재가 뒷걸음치며 도망가는 게 보여서
“야~ 저기 가재 도망간다! 잡아봐라~”
“네~! “ ”아야~!! “
그렇게 난생처음 가재의 커다란 집게에 물리고 말았답니다. 하지만 다치지는 않았죠.
가재의 집게는 자르는 목적보다는 잡는 목적이 더 커서, 별로 날카롭지는 않답니다. 웬만큼 큰 가재에게 물려도 따끔하는 정도로 피가 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사슴벌레 암컷이나, 하늘소에게 물리면 날카로운 턱 때문에 피가 조금 날 수도 있죠.
아프다는 아이를 보며
“피는 안 났어, 괜찮아요”
하고 진정시켜 주고, 조금 더 물가에서 놀다가 도깨비숲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늘은, 지난번 숲체험에 비해서 꽤 많이 걸었죠.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아, 피곤해요 선생님”
“다리 아파요”
“쉬었다가요. 네? “
하는 비명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하지만 움직이는 모양을 봐서는 아직 멀쩡해 보이더군요.
아이들이 쉬고 싶다고 하면, 가능한 한 빨리 쉬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데서나 쉴 수는 없습니다. 특히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이라면, 최소한 울창한 나무들 아래에서 쉬는 게 낫죠. 쉬다가 비가 갑자기 내리기라도 한다면, 우산을 다시 쓰는 동안 몸이 젖어버리거든요.
그렇게, 힘들다는 아이들을 살살 달래 가며 나무들이 빽빽한 돌무덤 앞에서 잠시 간식시간을 가진 후, 오늘의 목적지인 약수터쉼터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약수터쉼터는 널찍한 지붕이 있는 평상이 있어서 비를 피하며, 숲의 빗소리를 편안하게 감상하기 좋은 장소죠. 또, 바로 옆에는 넓은 비탈면이 있어서, 줄을 걸어놓고 흙사면을 오르내리며 놀기 좋은 곳입니다.
약수터에 도착해서, 짐을 풀어놓고 간식을 먹으면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휴식시간을 가지는 동안에는 이런저런 숲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오늘 갔었던 약수터는 커다란 계수나무들 덕분에 달콤한 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는 곳이죠. 주변에 있는 전나무, 계수나무 등에 대해서, 깊은 숲에서 놀 때 주의할 점등에 대해서 조금 말해준 뒤에, 약수터 위쪽의 경사면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짐들은 약수터에 놔두고, 가벼운 몸으로 경사면에 가서, 쓰러져서 걸려있는 도토리나무에 줄을 묶고 당겨보라고 하니, 다들 거침없이 줄을 당기더군요. 교사도 함께 당겨보니, 대략 일 미터 정도 아래로 끌려 내려오다가 멈춰 섰습니다. 대략 봐도 오육 미터는 됨직한 커다란 나무가 끌려내려오니 아이들이 환성을 지르더군요.
오늘 갔었던 경사면처럼 가파르고 쓰러진 나무들이 많은 곳에서 밧줄을 가지고 놀 때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주변의 환경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쓰러진 나무를 당겨보고, 돌멩이를 건드려보고, 주변에 혹시 밤송이나 다른 날카로운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죠. 그렇게 어느 정도 주변을 파악하고 나서 놀아야 다치지 않고 놀 수 있습니다. 물론 온몸이 흙범벅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요. 특히 엉덩이는 엉망이 된답니다.
그렇게, 오늘은 경사면과 인사하는 정도로 쓰러진 나무들도 좀 끌어당겨보고, 위험한 것들을 한켠에 치우고, 흙에서 발견한 지렁이랑도 조금 놀고 하며 있다가, 천천히 공원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 온 아이들은 시흥계곡의 숲과는 이제 막 인사를 나눈 정도여서, 여기저기 조심스럽게 돌아다니며 숲과 안면을 트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서너 번 정도 숲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숲이 익숙해지기 시작해야 스스로 놀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무엇이 숲의 어디에 있는지, 거기서 뭘 하고 놀 수 있는지를 알아야, 어디에서 놀지를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교사는 한걸음 물러서서 아이들이 가자는 대로 따라다니면 되는 것이죠.
... 숲에서 아이들과 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고 가능하면 아이들의 말을 따르는 것입니다. 어른들이 숲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지만, 경험을 돌이켜보면,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스스로에게 가장 좋은 것을 알아보고 찾아가는 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른은, 그 옆에서 지켜봐 주고 돌봐주는 역할에 머무르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오늘, 비도 오고 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숲의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좀 많이 걸었습니다. 아마도, 막판에는 조금 힘들었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숲에서 노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좋지 않지만, 가끔은 이렇게 많이 걸으면서 자신의 한계를 알아가는 것도 중요하답니다. 자신이 얼마나 움직일 수 있는지를 알아야 얼만큼 가도 되는지를 알 수 있거든요. 말하자면 자신만의 안전거리가 얼만큼인지 알게 되는 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