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들을 위한

뇌하수체 선종을 아시나요? - 4월 그날의 일기

by 모야

3년 전, 남편이 시야가 좁아지는 것 같다며 부산의 한 안과를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은 채 안구건조증이라며 우릴 돌려보냈다.

그때 조금이라도 고집을 부려 검사를 더 해봤다면, 오늘 너는 덜 아팠을까.


야간 운전이 힘들어진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남편의 말을

나는 ‘안경 문제겠지’ 하며 웃어넘겼다.


안경점 시력검사에서 “시력이 잡히지 않으니 안과에 가보라더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내가 또 ‘엄살 아니냐’고 말할까 봐, 남편은 멋쩍게 웃으며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번엔 정말 안과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알게 된 안과를 예약했고, 다행히 빠르게 정밀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검사 후 남편은 녹내장 의심 진단을 받았다.

‘참나, 서른에 녹내장이라니. 휴대폰 달고 살더니 결국 오네.’

그렇게 가볍게 생각했다.


큰 병원이라 바로 녹내장 검사를 진행할 수 있었고, 2시간가량 검사를 마친 뒤

선생님은 안구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셨다.

우리는 다행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였다.

“큰 병원에서 한 번 더 보시죠.

뇌에 종양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너무 불안해하진 말고, 예약부터 잡아보세요.”


지금 생각하면 ‘뇌에 종양이 있는데 별일 아닐 거라니’ 하는 말이 참 우습지만

그때 우리는 기계처럼 바로 종합병원 신경외과에 전화를 걸었다.

운 좋게도 이틀 뒤 월요일 아침 진료가 잡혔다.


4월 15일

사촌동생의 ADHD 검사 때문에 연차를 썼던 하루였다.

그 연차로 남편 병원에 가게 될 줄이야.

이른 아침 진료라, 결과를 듣고 사촌동생 병원까지 가면 되겠다며 둘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당일 MRI는 불가능하다는 답을 들었다.

3일 뒤에나 가능하다며.

우리는 주말 내내 진단 결과를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또 며칠을 더 기다리라니.

뭐 하나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아 주변 병원에 무작정 전화를 돌렸다.

그러나 큰 병원들은 초진 없이 검사가 안 되고, 초진과 검사를 같은 날 하는 것도 어렵다며 모두 거절했다.


그때 또 주변 지인이 도와주셨다.

당일 예약 가능한 병원을 찾아 연락까지 해주셨다.

절망감이 가시기도 전에 찾아온 그 도움에 손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였다.


병원에 도착해 남편이 CT를 찍는 동안 비가 유난히 많이 왔다.

혼자 사촌동생을 병원에 보낼 수 없어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불안해서 휴대폰을 놓지 못했다.

전화로 남편도, 나도 계속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괜찮을 거야. 별일 아닐 거야. 분명 또 이겨낼 거야.”


그렇게 다시 남편 병원으로 돌아왔지만 결과는 오후에나 나온다고 했다.

배가 고파 근처로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우산이 없어 비를 맞으며 뛰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둘이 있으니 그마저 따뜻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삼계탕을 먹으며 “든든하다, 힘난다”며 웃었다.

“여기 맛있네, 또 오자” 하며 계속 웃었다.


오후, 검사 결과를 들으러 들어갔다.

CT 화면 한가운데 조막만 한 흰 부분이 보였다.

나는 의사도 아니니 조용히 설명을 듣기만 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말했다.

“저게 다 종양입니다.”


1분 전까지만 해도 ‘괜찮을 거야’ 웃으며 말했던 우리가

그 작은 흰 점을 보고 무너져버렸다.

나는 그저 엉엉 울었다.

부끄러운 것도, 주변 시선도 생각나지 않았다.


주말 내내 ‘작은 종양일 거니까 금방 끝나는 수술일 거야’ 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는데

왜 내 남편의 머릿속 종양은 저렇게 크게 자라 있었을까.


선생님은 종양이 이미 시신경을 심하게 눌렀다고 했다.

아마 3년 전 시야가 좁아지기 시작할 때부터 자라오고 있었을 것이다.


남편은 남들보다 더 피곤해하고, 머리가 아프다고 했고, 시야도 좁아졌고

그러다 보니 업무 실수도 잦아졌다.

그런데 나는 남편에게

“다들 피곤해. 긍정적으로 살아.”

“예민해서 그런 거 아니야?”

이런 말들을 내뱉으며 불편함을 덮어버렸다.


하지만 남편은 병실을 나오는 순간, 원망 대신 나를 안아주었다.

연약하다고만 생각했던 남편은 누구보다 강하고 든든한 사람이었다.

뇌하수체에 붙어 있는 4cm가 넘는 종양.

뇌하수체 거대선종이라는 진단.


다행히 대부분은 양성이라 했지만 수술 중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부산에서는 수술이 어렵다며 큰 병원 의뢰서를 써주시며 서울에서 수술을 알아보라고 하셨다.

이미 알아보고 있던 서울 모 대학병원 교수님 예약을 시도했다.

당시 의료대란으로 예약이 거의 불가능하다 해서 걱정이 컸는데

전화로 이것저것 확인하시더니 4월 말, 딱 한 시간만 비어 있다며 예약이 잡혔다.

이것마저도 기적 같았다.


이미 너무 많은 충격을 받아서

‘이번엔 울지 말고 남편 손 꼭 잡아줘야지’ 다짐하면서도

혹시 더 나쁜 이야기가 덧붙을까 봐 심장이 조여 왔다.

심장은 빨리 뛰었다가 끝없는 바닥으로 떨어지길 반복했다.


일주일을 울고, 웃고, 떨고, 잠 못 이루는 시간을 지나며

그래도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끼니도 안부도 챙겨주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응원하는데

남편도, 나도 잘못될 리 없다고 믿었다.


매일 서로의 손을 잡고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참 복 받은 부부다.’

우리의 아픔을 함께 아파해주고 함께 기도해 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엄마, 아빠도 매일 전화해

자신들도 얼마나 겁이 날 텐데도

우리 안부부터 물어주셨다.


내일은 조금 더 든든한 아내가 되어

너의 곁을 지킬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