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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Aug 24. 2016

2016.7.1-비오는 날의 메밀국수

                                                                                                                                                                                                                                                                                                                                                                                                                                                                                                                              


블루베리가 한창이라 오며 가며 따서 그대로 입안에 털어 넣는다. 가난했던 시절의 한 작가는 먹을 것이 없어서 숲 속의 라즈베리 열매로 허기를 잠재웠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는 혹시 내가 충분히 가난하지 못해서 삶이 이렇듯 맨숭맨숭하고 호기심과 집요함과 끈기가 부족한 것인지 아주 잠시 생각한다. 그러다가 바로 다음 순간에 천성이 게으르고 쉽게 타협하며 그보다 더 겁이 많은 사람으로서의 결점을 주변 상황의 탓으로 돌리는 건 더 나쁜 버릇이라고 스스로를 질책하고 타이른다. 생각해보면 거의 항상 그래왔던 것 같다. 무언가를 향한 호기심이 자랄 때마다 이건 너무 지나치다고, 이건 욕심일 뿐이라고,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어쩌면 이건 허영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자신을 설득하면서 그대로 눈 감아버리고 뒤돌아 서곤 했던 시간들. 고개를 한 번 세차게 흔들고 점심 준비를 한다.



물에 간장과 미림, 설탕을 넣어 불에 올린 다음 끓어오르기 전에 가쓰오부시를 한 줌 넣어 제일 약한 불로 2분 정도 끓인 후 불을 끄고 식혀 걸러서 냉장고에 차게 보관해야 하는 게 정석이다. 나는 그 간단한 걸 미리 해놓지 못하고 오늘처럼 점심에 메밀국수가 먹고 싶으면 국수 국물을 만들어 얼음을 채운 볼에 넣고 식히다가 냉동실에 넣어버린다. 강판에 무를 갈다가 국수 그릇 옆에 강판을 놓고 무를 한 조각씩 놓아둘까 하는 생각도 한다. 우동을 좋아하는 하루키가 우동여행을 하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어느 국숫집에 갔더니 강판과 무를 먼저 놓아주더라는 이야기다. 국수가 나올 때까지 손님들은 앞에 놓인 무 조각을 강판에 갈면서 기다린다는 건데 그 이야기를 얼마나 맛깔나게 하는지 그곳에 찾아가서 나도 무를 갈고 싶어졌던 게 기억난다. 오래전 이야기다.



메밀국수가 끓는 시간은 얼마나 짧은가. 대충 식혀서 냉동실에 넣어 둔 맨쯔유가 시원하지 않을 것 같아서 얼마전 민트를 콩콩 찧어 함께 얼려둔 얼음을 꺼냈다. 메밀과 민트가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알지만 얼음이 녹아서 민트 맛이 우러나기 전에 메밀국수를 다 먹어버리자는 심정으로 얼음 꺼내고 김과 파를 준비한다.



둘이니까 두 그릇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 먹기 전에 얼음은 녹았지만 민트 맛을 느낄 만큼 섬세한 미각을 갖지 못한 행운으로 점심 식사는 맛있게 끝났다는 것. 



맨쯔유도 메밀국수도 남았으니 주말의 점심 한 끼는 메밀국수로 예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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