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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Oct 11. 2016

가을 정원

대파와 라즈베리

                                                                                               

아침 일찍 나가는 이가 없으니 기상시간이 절로 늦어진다. 설핏 눈을 떴는데 창밖에 노란 햇살이 일렁인다. 일 년에 몇 번 이런 날이 있다. 갑자기 눈이 좋아진 것처럼 세상이 맑게 보인다. 오늘은 거기에 바람까지 더해서 마음이 파도를 탄 것처럼 울렁였다.



이렇듯 투명한 날에는 집안에 있을 수 없으니 맨발에 슬리퍼 신고 마당을 서성이다 보니 손이 곱고 발이 시리다. 가을이 하루 사이에 또 이만큼 깊어졌구나. 횡성에서 양평 오는 길 어디쯤의 막국수집에서 만난 대파 트럭에서 산 대파 한 단을 빈 화분에 심어 두었는데 마치 농사를 짓는 것처럼 푸짐하고 싱싱해서 파 한 대 뽑을 때마다 신이 난다. 며칠 전에는 한 움큼 뽑아서 끓고 있는 육수에 넣어 데쳐내는데 그 빛이 얼마나 고운지 마음까지 착해지더라.



무더운 여름을 지나고 요즘 제철을 만난 란타나, 꽃송이도 여름보다 크고 빛깔도 선명하고 곱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를 원망할 수도 없고 다만 애틋한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본래 라즈베리가 봄과 가을 두 번 열리는지 알 수는 없으나 가을 라즈베리는 늦봄의 라즈베리보다 알도 굵고 맛도 좋아서 더 즐거운 가을이 되었다. 아까워서 먹지도 못하고 구경만 하다가 하늘이, 바람이가 다가오면 인심 쓴다. 내가 라즈베리 앞에 앉아 있으면 어느새 옆에 와서 내 얼굴을 얼마나 빤히 들여다보는지 도저히 그냥 못 넘어가는 우스운 풍경.



지난주에 동경에서 하얀 추명국을 보았다. 욕심이 와락 생겼다. 돌아오자마자 하얀 추명국을 사러 가야겠다고 말은 꺼냈으나 여전히 꼼짝도 못하고 집에 붙잡혀있다. 연보라색을 띤 나의 추명국 옆에 하얀 추명국이 들어오면 좀 좋을까.



쑥부쟁이가 꽃잎을 열기 시작하고



제라늄은 여전히 곱다.



날씨가 이렇게 밝으니 토마토 한 알, 바질 이파리 한 장도 보석 같구나.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블루베리와



여전히 꽃을 피우는 라벤더의 그림자.



내일은 오늘보다 기온이 더 내려간다고 해서 지난여름 강릉 테라로사에서 사온 커피나무를 화분에 옮겨 세탁실에 들여놓았다. 대파와 월계수와 세이지, 바질과 타임, 로즈마리가 오종종 모여있는 나의 화분 텃밭은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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