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얼굴이 왜 그래요?!”
8년 전, 네 명의 아이들이 올망졸망하던 시절, 아이들을 데리고 집 근처 태조산 공원에 나들이를 나갔다.
두 살 태준이와 네 살 경준이의 손을 양쪽으로 잡고, 일곱 살 현준이와 아홉 살 세아를 앞세워 걷고 있었다. 어느덧 다른 무리의 엄마들과 나란히 걷게 되었는데, 갑자기 한 엄마가 놀란 듯 물었다.
“저.. 혹시.. 네 명의 아이들 모두 그쪽 아이세요?”
“아.. 네, 맞아요. 모두 제 아이예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순간 당황했지만 미소로 대답했다. 그러자 나를 쓰윽 훑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얼굴이 왜 그래요?!
되돌아온 물음이 하도 이상해서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일단, 이 말의 의미가 무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아 나는 작동 오류가 생긴 기계처럼 잠시 정지 상태가 되었다. 다시 정중히 여쭈었다.
“네?!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내 말에 당황한 건 오히려 그분이었다.
“아.. 그게 아니고요, 제 말은.. 아이넷을 키우면 뭔가 고단함에 얼굴이 찌들어야 하는데, 얼굴 표정이 너무 편안해 보이셔서 여쭤봤어요. 무슨 비결이라도 있으세요? 저는 둘을 키우는데도 이렇게 버거운데, 넷을 키우면서 어떻게 얼굴이 그럴 수 있나요?”
그제야, 그 말 뜻이 칭찬이었음을 알게 됐다.
“넷을 낳고 키우다 보니 어느새 제가 해탈을 한 걸까요? 아님 득도를 한 걸까요? 오히려 저도 한 명, 두 명 키울 때가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멋쩍게 웃어 보이며 이런 실없는 농담의 말을 했다. 그날 이후 “그런데, 얼굴이 왜 그래요?!” 는, 고된 육아로 허덕일 때마다 달콤한 당근과 비타민이 되어주었다.
그날의 내 얼굴이 어땠는지, 어쩌면 해답이 되어줄 것만 같은 그림이 한점 있다. 보기만 해도 저절로 웃게 되는 기분 좋은 그림이라 지금까지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내 눈에는 프랑스 박물관에 전시된 그 어떤 유명 화가의 그림보다 명작이고 수작이라 여겨지는 최고의 걸작품이다.
세아 5살 때 유치원에서 처음으로 그려온 엄마, 아빠 그림. 그날 세아가 이 그림을 들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들어오는데, 하마터면 너무 기뻐서 눈물 날 뻔했다. 엄마 아빠를 그려보라고 했더니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침없이 그렸다는 이 그림.
순간 떠오른 엄마 아빠의 얼굴 표정이 이랬다니.. 내가 우리 세아를 대할 때 저렇게 웃고 있었구나, 그것도 하얀 이빨을 다 드러내고 활짝 웃어줬구나. 거울처럼 나를 비춰볼 수 있는 매우 정직한 그림이었다.
그날 나를 처음 본 그분의 눈에도 내 모습이 이랬을까. 그래서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질문을 던졌던 것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그날의 나는 화사하게 화장을 한 예쁜 얼굴도, 멋진 옷을 잘 차려입은 고운 차림도 아니었다. 타잔도 울고 갈 정도의 민망한 민낯과 츄리닝이었으니.. 다만 딱하나, "밝은 미소” 만 장착했을 뿐이었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참 많은 육아 서적을 읽었다. 그중 한 육아 서적에서 이런 질문을 마주한 적이 있다.
진지하게 생각해 본 뒤, 책에 답을 써넣었다.
어떤 위기가 찾아와도, 그저 엄마(나)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고난이 다가와도, 미소를 잃지 않고 툭툭 털고 일어섰던 엄마(나)를 기억하고, 웃으며 훌훌 털고 일어섰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네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정신적 유산은 “긍정과 웃음” “긍정의 마인드와 웃는 얼굴”입니다.
긍정과 웃음은 그 어떤 위기도 뛰어넘을 수 있고, 그 어떤 고난도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믿는다. 감사하게도 나는 타고난 천성 덕분에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매사에 긍정적이고 될 수 있으면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네 아이의 육아, 그것도 가장 손이 많이 가던 시절의 육아는 녹록지 않았다. 왜 고단하지 않았겠는가.. 아이들 다 재워놓고 늦은 밤 남몰래 흘린 눈물이 왜 없었겠는가.. 소리치고, 다그치고, 혼낸 적이 왜 없었겠는가.. 눈물로 얼룩진채 잠든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슴이 아파 잠못든 불면의 밤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고, 엄마가 웃어야 아이가 웃는다'는 말을 육아 신조로 삼고 이를 악물었다. 까르르 웃음소리가 집안 가득 울려 퍼지길 소망하며, 우리 아이들의 얼굴에서 긍정의 미소가 걷히지 않길 기도하며, 내가 먼저 웃고 또 웃으려고 노력했다.
작고 귀여웠던 아이들은 어느덧 자라, “고1, 중2, 초5, 초3”이 되었다. 나는 종종 그 시절로 다시 되돌아가도 그때만큼 잘할 자신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보다 더 잘할 자신이 없다. 왜냐면 정말 후회 없는 사랑을, 시간을, 정성을 쏟았기 때문이다.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걸 후회 없이 다 쏟아 주었다. 그보다 더 잘할 순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분이 물었던 질문, “비결이 있으세요?” 의 해답은 있었다.
전원에서 자연의 절기를 따라 순리대로 천천히 키운 넉넉함과 여유 덕분에 아이들을 너른 품으로 안을 수 있었다. 소리치고 싶은데 봄햇살이 집안 가득 들어왔고, 다그치고 싶어지면 여름날 초록 나뭇잎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울고 싶은데 가을 노을이 가슴 설레게 아름다웠고, 혼내고 싶어지면 때마침 하얀 눈이 포슬포슬 내려주었다. 바람이 살랑거리며 실수하려는 내 입을 막아주고, 고운 꽃은 어느새 부릅뜬 내 눈을 가려주었다. 이렇듯 자연은 언제나 맑고 밝은 얼굴로 내편이 되어 속상한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뛰지 마!” 대신 “맘껏 뛰어!” “뛰어놀아!”라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게 되면 육아는 200프로 쉬워진다. 그건 정답이다. 특히 남자아이들이라면 더더욱. 흙을 밟고 뒹굴며 자연이 주는 사계절의 신비로움을 보고 느끼며 자란 아이들은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마음과 생각이 곱게 물들어갔다. 나는 항상 내가 키운 게 아니라 자연이 키웠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서툰 나를 따뜻한 엄마로 만들어 준 스승도 자연이다.
나이 40이 넘어가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동안 어떤 얼굴로 살아왔는지 그 성품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얼굴 명함. 오늘, 내 얼굴은 안녕한지 8년 전 그날의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그런데,
얼굴이 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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