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에 대한 나의 소신
현시대에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유아 교육을 전공한 나는, 아이들 육아와 교육에 관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아이들 개월 수에 맞는 장난감을 사거나, 꼭 맞는 책을 읽어 주기 위해 고가의 전집을 사곤 했다.
내게는 아이들 정서 발달을 위해 아파트 엄마들과 함께 품앗이 교육을 했던 좋은 추억이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한 해 두 해 자라면서 점점 다른 고민이 많아졌다. ‘육아’보다는 ‘교육’에 대한 고민의 비중이 커지는 것이다. 학습지, 영어 교육, 피아노, 미술, 요리, 발레, 수영, 블록, 은물 수업 등등… 아파트 엄마들과 삼삼오오 모이면 어떻게 가르치면 좋을지 이야기 꽃을 피웠다.
씁쓸한 풍경이 아닐 수 없으나, 대한민국에 사는 부모 중에 교육의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부모가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나라 교육의 끝에는 ‘입시’라는 거대한 산이 버티고 있지 않은가! 성적, 등수, 학원, 과외, 학벌, 스펙이 마치 행복의 지표로 여겨지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나 또한 그런 부분에 아예 귀를 닫고 살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학습지 등을 시켜가며 일찍부터 스트레스를 줄 마음 또한 없었다.
“언니! 세아 아직도 영어 교육 안 시켜? 그러다 시기 놓치면 어쩌려고?”
“세아 엄마! 현준이 아직도 한글 못 떼었어?”
때때로 들려오는 걱정 반 호기심 반 질문엔 대답 대신 조용한 미소로 답하곤 했다. 유치원 교육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시키지 않고 있던 나는 아파트 친한 엄마들 사이에서는 "희귀 종" 또는 "천연기념물"로 불렸다. 속으로는 유별나다고 또는 너무 무신경하다고 흉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딸, 세아 유치원 방학식이 있던 날, 저 멀리 유치원 버스에 내려 어기적 어기적 무언가를 낑낑 거리며 들고 오는 세아가 보였다. 얼른 달려가 받아보니, 자신 몸 절반 크기의 포트폴리오 스크랩북 3권이다.
“세아야 이게 다 뭐야?”
“으응, 엄마 내가 그동안 유치원에서 열심히 공부한 거야”
집에 가서 펼쳐보고 경악했다. 한 권이면 몰라도 3권 이라니! 고사리 손으로 끙끙거리며 완성했을 모습이 눈에 그려지며 기쁘기보다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세아야 이거 공부할 때 기분이 어땠어?”
“엄마 나 진짜 엄청 힘들었어, 손이 너무 아팠는데 꼭 해야 해서 한 거야”
사실, 나 역시 유치원 교사 시절에는 어떻게든 많은 양의 스크랩북을 완성시켜 아이들 집으로 보내야 한다는 목표 의식이 있었다. 많이 보낼수록 성과를 보여주기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가 되어 마주한 스크랩 북은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차라리 그 방대한 공부를 할 시간에 밖에서 실컷 뛰어놀면 좋겠다는 인식의 전환이 생겼다.
스크랩북을 만난 그날 이후 아이들 교육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다. 과연 무엇을 교육해야, 어떻게 가르쳐야 내 아이가 행복할까? 15층 아파트 좁은 공간에서 벗어나 흙을 밟고 맘껏 뛰며 자연을 벗 삼아 살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막연히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일어났다.
건축과 관련된 사회학을 연구한 로버트 거트만에 의하면 ‘ 1,2층 저층 주거지에 사는 사람들은 고층 주거지에 사는 사람보다 친구가 세 배 많다” 고 한다. 그리고 유 현준이 쓴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는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인간관계를 쌓은 사람이 어른이 돼서도 다양한 사람과 생각을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어느 날 시아버님께 걸려온 전화 한 통.
“너희 명의로 오늘 땅 샀다.”
“네?!”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내 오랜 소망이었던 기도에 응답이 된 순간이었다. 꿈은 이루어진다더니, 정말 눈물이 핑 돌았다. 아니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더 고민할 것도 없이 우리는 아파트를 팔고 그 땅에 집을 짓기로 했다. 아무 미련 없이 그렇게 짐을 쌌다. 그때가 벌써 10년 전이다. 첫아이 6살, 둘째 4살, 셋째 1살로 이미 3명의 아이를 키우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이사를 와서 넷째를 임신했다.
너른 자연에서 마음껏 달리며 자연을 누비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갈등했던 시간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층간소음 걱정 때문에 온 집안 바닥에 몇백만 원을 들여 두꺼운 매트를 주문 제작해 모두 깔고도 까치발을 들고 다녀야 했던 아파트. “맘껏 뛰어놀아”라고 해야 할 어린아이들에게 “뛰지 마”소리를 입에 달고 달아야 했던 시간들. 잔디밭과 텃밭 모래 놀이장을 가로질러 해맑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내 가슴이 다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텃밭에 상추, 고추, 방울토마토, 강낭콩, 오이를 심고 아이들은 매일매일 고사리 손으로 물을 주며 정성껏 가꾸었다. 방울토마토는 포도송이처럼 조롱조롱 귀엽게 자라고, 오이는 제크와 콩나무 올라가듯 챙챙 줄을 감아 올라타며 신기하게 자란다는 걸 새록새록 알아가는 것은 기쁨 그 자체였다.
"엄마! 꽃 밥 드세요!"
들려오는 세아의 설레는 목소리.
정원 곳곳에서 꽃잎, 잎사귀, 새싹을 수집해 세아의 감수성을 데코레이션 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수제 "꽃밥"이었다. 뭉클! 뜨거운 감동이 목구멍에서 올라왔다. 온몸으로 환희가 퍼지는 전율을 느꼈다. 아이들에게 소꿉놀이는 최고의 놀이다.
봄에는 민트빛 세상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나고, 여름에는 신록의 푸르름이 매미 소리와 함께 짙어가며, 가을에는 수채 물감을 쏟아부은 듯한 총천연색 낙엽이 지고, 겨울에는 앙상한 가지 위에 눈송이가 내려앉았다. 바람은 어디서 불어와 어디로 가는지 손끝으로 느끼는 그 낯선 신비로움과 구름의 종류에는 안개구름, 비구름, 양떼구름, 뭉게구름, 깃털 구름, 먹구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즐거움에 감성 가득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15층 아파트에서 바쁜 일상을 살았던 그때는 절대 알 수 없었던 여유와 느림의 미학, 그리고 소박하고 잔잔한 풍경을 매일매일 누렸다. “전원주택 살아보니 어때?!”라는 묻는 가족, 친지, 친구, 지인들에게 우리 가족은 모두 ‘자연 전도사’가 되어 대답했다. “너무 좋아. 다시 아파트로는 절대 못 돌아가.”
나의 교육 이념은 구름과 바람이 쉬었다 가는 시골, 이곳에서 '희망의 꽃밭’이라는 단어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예쁜 꽃밭에서 우리 아이들의 ‘삶의 향기’가 피어나고 있음을 또렷하게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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