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같았던 그 날밤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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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태준이를 품에 안은채 미친 여자처럼 소리쳤다.
“하나님 우리 태준이 살려주세요! 하나님 우리 태준이 살려주세요! 하나님 우리 태준이 살려주세요!!” 이 말만 주문처럼 반복해서 외웠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태준이를 잃을 수도 있다는 극심한 공포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성이 마비되고 손발이 덜덜 떨려왔다. 내가 그 순간 할 수 있는 건 태준이 생명을 쥐고 있을 것 같은 절대자 앞에 납작 엎드리는 것뿐이었다.
단국대병원 응급실로 향하면서 신랑이 119에 전화를 걸었다.
“10개월 된 아이가 3미터 높이에서 떨어져서 응급실로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응급조치를 해야 할까요?”
119 대원의 이야기를 다 듣고 전화를 끊자마자 신랑이 나에게 말했다.
“목뼈가 부러졌을 확률이 가장 크다고 세워 앉지 말고 눕혀서 가야 한대.”
“여보! 태준이 계단에서 구른 게 아니라 2층에서 떨어진 거야?”
절규하듯 신랑에게 소리쳤다.
2층 난간 사이로 머리를 집어넣어 1층 아래로 추락한 거라니,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지금 내 품에 안겨 힘겨운 숨을 쉬고 있는 10개월의 작은 아기는 울지 못할 뿐 아니라 눈의 흰자가 검은 눈동자를 밀어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정신줄을 놓을 듯 위태로워 보였다.
“태준아 울어! 울어봐! 태준아 정신 차려! 여보 지금 똑바로 눕히는 게 문제가 아니야, 태준이가 정신을 잃어가....”
단순히 계단에서 구른 사고가 아니라면, 우리 태준이가 머리를 심하게 다쳤겠구나. 우리 태준이가 바보가 되는구나. 온갖 나쁜 생각으로 머릿속이 시끄러웠다.
“하나님 우리 태준이 바보가 돼도 좋으니까 살려만 주세요! 하나님 우리 태준이 살려주세요!” 간절한 기도가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점점 초점이 흐려지는 태준이의 눈을 바라보다가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느닷없이 태준이 입에 내 입술을 포개고 있는 힘껏 입김을 세게! 아주 세게! 계속 계속 불어넣었다.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태준이 양쪽 콧구멍으로 찐득찐득하고 검붉은 핏덩어리가 꾸역꾸역 밀려 나오면서 태준이가 힘겹게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여보! 태준이가 울어요! 태준이가 이제 숨을 쉬어!”
평소 15분이면 가는 가까운 거리의 병원이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는 태준이에겐 지금 1분 1초가 너무나 간절했다.
드디어 응급실에 도착했다. 태준이를 품에 안고 병원 안으로 뛰어 들어가면서도 “하나님 우리 태준이 살려주세요! 하나님 우리 태준이 살려주세요!”를 정신 나간 여자처럼 계속 외쳤다. 아이러니하게도 ‘의사 선생님 살려주세요’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간호사 한분이 나를 붙잡더니 다독이며 말했다.
“어머님! 이제 진정하세요. 여기 병원이에요. 어머니만 마음 추스르시면 될 것 같아요. 아기 이리 주세요. 저희가 볼게요.” 그제야 다리에 힘이 풀렸다.
태준이를 하얀 침대 위에 눕혀놓고, 의사 선생님이 이리저리 살피더니, 사고 경위를 물으셨다. 3미터 높이에서 추락했다고 말씀드렸더니, 일단 엑스레이를 찍고 수면제를 먹여 재운 뒤 CT와 MRI 검사를 하자고 하셨다.
의사 선생님도 역시나 목뼈가 부러졌을 확률이 가장 크다고 하신다. 가장 최악의 상황은 광대뼈가 부서졌을 경우인데 페이스오프 수술을 응급으로 진행할 수도 있다고. 뇌를 다쳤을 경우 역시 위험하다 판단되면 긴급수술에 들어갈 거라고 하셨다.
힘겨운 검사를 모두 끝내고 곤히 잠든 태준이 얼굴을 바라보는데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태준이 손을 어루만지며 한시름 놓으려는데,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 또 한 번 정신이 아득해졌다.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지도 못하고 그냥 나왔다는 사실이 기억난 거다. 깊은 밤 외딴집에 남겨져 무서움에 떨고 있을 어린 삼 남매가 떠올랐고 또다시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받자마자
“태준이는 좀 어때? 괜찮아?” 하고 먼저 물으신다.
“엄마, 어떻게 알았어요?!” 깜짝 놀라 되물었다.
“지금 너네 집이야! 세아가 울면서 전화해서 깜짝 놀랐어. 태준이가 다쳐서 아빠 엄마가 병원에 갔는데 자기들끼리 너무 무섭다고. 그래서 중일이랑 같이 왔어! 애들은 다 재웠으니까 걱정하지 마!”
“엄마 고마워요. 검사 결과 나오면 다시 전화드릴게. 아이들 좀 부탁해요”
친정엄마와 전화통화를 끝마치고 태준이 침대로 돌아가 보니, 콜을 받고 오셨는지 나이가 지긋하신 교수님 한분이 앉아 계셨다. 다시 한번 사고의 경위에 대해 여러 가지를 꼼꼼히 묻고 체크하셨다. 차 안에서 태준이에게 입김을 아주 세게 불어넣었던 일들을 자세히 설명했더니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조금만 늦었으면 뇌사상태로 갈 수 있는 아주 위급한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어머님이 응급조치를 아주 잘해주셔서 아이가 위급한 상황을 넘겼네요. 아주 지혜롭게 잘하셨어요!” 하며 칭찬해주셨다. 그 소리를 들으니 온몸에 소름이 가시처럼 돋아났다.
드디어 검사 결과가 나왔다.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우리 부부는 공손히 손을 모으고 서서 의사 선생님 입만 초조하게 바라봤다. 어떤 결과든 겸허히 받아들이자고 굳게 마음먹었지만 떨리는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목뼈, 광대뼈, 모든 뼈 이상 없음!
뇌에도 아무 이상 없음!
할렐루야! 이 무슨 기적 같은 결과란 말인가!
그래도 일단 안심하기에는 이르다고 하셨다. 뇌에 충격이 가해졌기 때문에 갑자기 뇌압이 오를 수도 있다고.. 2박 3일간 입원을 해서 살펴보자고 하셨다.
평화로운 입원기간을 끝내고 퇴원하는 날, 담당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퇴원을 축하드립니다. 저..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의외의 질문을 하셨다.
“네, 말씀하세요. 선생님, 어떤….” 말끝을 흐렸다.
“다름이 아니라, 지금 어디서 목회 생활하세요? 교회가 어디인지 궁금해서요..”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다.
“네?! … 아… 저희 신랑.. 목사 아닌데요?… 저희는 장로교회에 다니는 일반 성도인데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죄송합니다. 사실은 응급실에 오신 그날, 어머님이 하나님을 찾으셨다고 하고 또 아이들이 넷이라고 하니 저희는 당연히 목사님 가정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하나님을 믿지 않지만 태준이 일은 그저 기적이라고 밖에 생각이 안됩니다.”
시간이 흘러 현재 초등학교 3학년이 된 태준이는 사 남매 중에 가장 튼튼하다. 지금도 가끔씩 그날 일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엄마! 그날 떨어지는 저를
천사가 안아 준거 맞죠?
햇살 같은 태준이 미소에 잊고 있었던 감사가 강물처럼 흐른다.
아파트보다 안전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큰 전원주택에서 어른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끔찍했던 그 사건 이후 저희 부부는 깊이 반성하면서 집 안팎으로 위험한 요소는 없는지 살피고 또 체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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