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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 1%의 여행 경험

여행의 순간들은 많은 경우 '불편한 사치'를 감당해야 한다

by 고재열 여행감독


우리의 삶이 늘 빛나는 순간들로만 채워지지 않듯이, 여행의 순간들도 때로 어두운 순간들이 있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이듯 이 어두운 순간 또한 여행의 일부다.


여행의 순간은 대부분 상위 1%의 순간들로 채워져 있다. 상위 1%의 풍경, 상위 1%의 숙소와 식사, 상위 1%의 경험들. 여행에서는 대부분 일상보다 상위의 경험을 누리게 된다.


그런데 때론 그 상위 1%의 경험이 ‘불편한 사치’를 감당해야 얻을 수 있을 때가 있다. 카자흐스탄의 광야에서 와인을 마시는 사치를 누리기 위해 비비노 평점 하위 1%의 와인을 삼켜야 하듯이.



지난 남미기행 때 본 풍경 중에 가장 좋은 풍경으로 꼽히는 곳이 안데스산맥이었다. 하지만 그 산맥을 넘기 위해 이용한 호스텔엔 장수 돌침대 대신 안데스 콘크리트 침대가 있었다. 콘크리트에서 올라오는 안데스의 냉기가 핫팩의 온기를 뚫고 올라왔다고(나는 다인실을 빼앗기고 다른 방으로 옮겼는데 거긴 보통 침대라 이 안데스의 기운을 느끼지 못했다) 하소연했다.


히말라야에서 트레킹 중에 이용하는 롯지는 대부분 하위 1%에 속하는 숙소들이다. 천하의 문재인 대통령도 트레킹 중에는 이런 숙소를 피할 수 없었다. 일부러 이용했던 네팔 민가에는 창문에 창틀만 있었다. 유리창은 없고. 실내와 실외의 차이가 거의 없는, 방 안에서 즐기는 비박이었다! 강진곰파의 롯지는 창문에 유리가 있었지만 야무지게 잠그고 자도 눈이 방 안쪽에 쌓였다.



곰팡이가 벽을 장식한 롯지도 2년째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마차푸차레(마르디히말) 하산에서 가장 효율적인 루트에 있는 롯지라. 유독 그 방만 그 모양이었는데 두 번다 내가 맡았다. 돈 내고 오는 사람에겐 권리가 있지만, 돈 받고 오는 사람에겐 의무만 있으니. 방음 기능이 거의 없는 합판 벽으로 되어 있는 롯지의 화장실 옆방도 내가 맡았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화장실에 청진기를 댄 것처럼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방이었다. 똥인지 오줌인지 구분될 정도로.


몽골의 여행 중 이용한 게르 중 한 곳은 제대로 전통방식으로 만든 곳이었다. 양모를 지붕에 넣어 보온재로 쓰는 곳이었는데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비가 새서 뭔가 썩어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대부분의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도 후각에 가장 취약하다. 힘든 밤이었다.



허리케인이 올 때 묵었던 쿠바의 까사에서는 창을 굳기 닫아도 빗물이 안으로 샜다. 어떤 분은 물에 빠지는 꿈을 꾸다 침대에서 떨어졌는데 바닥에 찬 물에 흥건히 젖었다고 했다. 시속 180km의 허리케인에 쿠바의 창틀은 너무나 허술했다. 바람맞는 쪽에 있던 우리 방도 모내기 해도 될 정도로 물이 차올라왔다.


허리케인에 발이 묶여 까사에 하루 더 있어야 했는데 주인 살림집이 딸리지 않은 곳이라 식재료가 없다 했다. 근처 구멍가게 가서 먹을 수 있는 것은 죄다 털어왔다. 쿠바 아주머니가 완두콩 통조림 한 통만 자기한테 되팔라고 하는 것을 외면했다. 계란인 줄 알고 산 것은 계란이 아니라며(조리사가 끝내 요리를 못했다)…



카자흐스탄의 천산산맥 아래 숙소에서는 2인실에 수건을 한 장만 주었다. 사람들에게는 서열정리용 수건이라 설명해 주었다. 서로 양쪽을 잡고 당겨서 당긴 쪽 사람이 먼저 쓰고 뺏긴 쪽 사람은 나중에 쓰는 거라고. ㅋㅋ


카자흐스탄의 협곡에서 캠핑을 할 때는 러시아계 카작인들의 색다른 태업을 목격했다. 무쇠 압력솥에 고기와 야채를 넣어 푹 끓여내는 전통요리를 했는데, 내가 보기엔 그냥 넣고 끓이면 될 것 같은데, 그들은 무얼 먼저 넣느니, 얼마나 끓이니, 이런저런걸 놓고 다투느라고 세 명 모두 솥앞에서 수다만 떨고, 아무도 텐트 설치를 돕지 않았다.




캄차카반도의 호텔은 미리 구글 지도로 검색해 보니 우리 직전에 이용한 사람이 ‘빨리 키친도 완성되었으면 좋겠다’는 후기를 ㅗ남겨 놓은 것을 발견했다. 부랴부랴 여행사 통해 확인해 보니 우리 도착 전에 완공한다고. 도착해 보니 건물만 지었다. 속엔 아무런 조리시설도 없이.


캄차카에선 차 밑에서 식사를 한 적도 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허허벌판인데 차 안에서는 음식물을 먹으면 안 된다고 금지해서 차 밑에서 먹었다. 아들과 함께 온 천만배우도 함께. 화물차 개조한 단체버스라 차체가 높아 나름 아늑했다.



이런 ‘불편한 사치’는 감당할만한 가치가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그래야 감당한 뒤에 가치있는 추억이 된다. 감당할 이유가 없는 불편은 컴플레인 요소일 뿐. 이런 감당할만한 불편을 풀어가는 ‘계산된 모험’이 좋은 여행이다.


올해는 또 어디에서 어떤 여행의 함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누군가 말했듯이,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배를 만든 목적이 아니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와 가장 근접한 것은 여행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튼 그래서, 여행은 계속된다. 불편한 사치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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