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를 그만두고 여행감독으로 전향하자마자 코로나가 발발했다. 그 시기에 해외로 나가지 못해서 국내여행 답사를 많이 했다. 그때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한 번 정리해 보았다. 중년 여행자의 관점이다.
우리의 지방은 자체 논리를 통해 끝없이 변화하고 있다. 이 변화를 읽어내는 여행을 한다면 핫하다는 곳을 찾아다니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뜨거운 건 금방 식기 마련이니.
1) 주 주 주자로 끝나는 도시들, 치사하게 자기들끼리 할인제도를 적용한다. 나주 청주 충주 경주, 이런 도시 주민등록증 있으면 다른 주자 도시의 관광시설에서 할인해 준다. 주자로 끝나는 도시는 대체로 역사도시다. 지역이 역사문화 유적을 둘러볼만한 곳.
2) 양 양 양자로 끝나는 도시들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볕 양자를 쓰는, 예전에 양반도시였던 셈인데… 언양 담양 밀양 단양 광양, 다들 유명한 고기 요리가 있다. 언양불고기 광양불고기 담양떡갈비 밀양돼지국밥 단양떡갈비. 음식문화라는 것이 과거의 풍요가 녹아있게 마련이다.
3) 마케팅 잘한 도시보다 실제 생산량 많은 도시에서 먹는 게 낫다. 대게는 영덕대게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영덕은 포항(구룡포) 울진에 이어 생산량 3위다. 대게 어선은 다른 항구에서 나와서 같은 바다에서 잡아간다. 비싼 영덕에서 꼭 먹을 필요는 없다. 소도 마찬가지다. 소들은 횡성에 가서 죽는다. 사육 두 수가 많은 영주 경주 안동 등에서 먹는 것이 가성비가 좋다.
4) 우리나라 1진 관광도시는 대부분 폐허다. 유명해서 먼저 개발된 곳들은 시설이 그 시절 단체관광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 시절에는 오늘만 노는 관광을 했다. 배가 터져라 먹고, 코가 비뚤어져라 마시고, 세상이 떠나라가 노래하고. 그런 사람들에게 맞게 최적화된 곳이라 이제 경쟁력이 없다. 경주보문단지, 수안보온천단지, 설악산 설악동, 산정호수 등등.
5) 대부분의 도시인들은 제철 해산물을 모른다. 금어기 끝날 때 꽃게 잡히는 곳에 가면 살수율 좋고 단 꽃게를 먹을 수 있다. 자연산 광어가 양식 광어보다 싼 시기도 있다. 우리 바다 수온이 높아져 남해안에 여름에 정어리가 잘 잡히는데 물회로 최고다. 해산물은 제철 해산물을 먹는 것이 좋다.
6) 경상도 도시 중 맛있는 순위를 자의적으로 꼽아보면 이렇다. 부산 - 통영 - 포항 - 안동 - 경주 정도(통영도 맛있지만 부산의 소비력이 끌어올린 맛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전라도는 남해안 포구와 섬 음식이 특히 좋다. 내륙의 전라도식은 서울에 재현되어 있지만 바닷가는 현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 많다. 충청도에선 전라도 자방 이름이 붙은 식당에서 먹는 게 맛있을 가능성이 크다.
7) 호남에서 편한 숙소는 여수에서 찾는 것이 낮다. 호남 전체 고급 숙소의 1/2 이상이 여수에 있다고 보면 된다. 다만 여수는 관광물가가 가장 비싼 곳이다. 그래도 제값 한다는 느낌을 주는 곳이긴 하다. 전주에서 먹는 한정식은 서울 한정식과 거의 차이가 없다. 이젠 비빔밥도. 여수는 그래도 현장의 맛이 있다.
8) 여름 물회는 포항 쪽이 원조다. 셔벗식으로 육수를 얼리는 방식도 포항 죽도시장이 먼저고. 포항 위아래 동해안 지역에서는 물회에 주로 가자미를 쓴다(광어 쓰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강릉/속초는 수도권 관광객이 주 고객이라 서울식(광어)으로 한다. 전라도식과 제주식은 비슷한데 양념은 전라도가 잘하고 내용물은 제주도가 다채롭다.
9) 막국수는 영서식과 영동식이 다르다. 춘천식은 또 다르고. 춘천식은 비빔장을 중시한다. 영서식은 이걸 좀 더 칼칼하게 하눈 편이고 영동식은 동치미 국물을 중시한다. 비유하자면 영서식은 함흥냉면, 영동식은 평양냉면. 그런데 수도권 입맛에 맞추다 보니 서로 많이 튜닝되었다.
10) 외국 음식 중에 현지 음식맛을 기대한다면 지방에서 찾는 것이 낫다. 외노자들이 펼쳐 놓은 풍경이다. 포천에서 태국 아유타야 지역 음식을 하는 식당을 만났다. 키르기스스탄 음식점은 서울에서도 못봤는데 세종시에서 보았다. 경주에서는 러시아마트가 서울보다 더 구색이 좋았고.
기타, 지역 고유의 식자재를 색다른 조리법으로 하는 것들 중 추천할만한 것들이 있다. 포항에서 대구뽈찜을 치킨처럼 튀기는 것이 있는데, 맥주 안주로 최고다. 제주에서 우럭을 중식 탕수육처럼 튀기고 양념 입히는 것이 있는데 역시 맛나다. (청도에서 미나리밭에서 삼겹살 구워 먹는 게 재미있다는데 아직 못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