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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소득 십만불인데, 노르웨이인들이 심플하게 사는 이유

세 번째 노르웨이 여행을 마치고

by 고재열 여행감독

노르웨이 단상


노르웨이는 자연을 만나러 가는 곳이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곳은 아니었다. 세 번째 노르웨이 여행을 해보니 그래도 이제는 좀 친숙한 느낌이 든다. 다음엔 좀더 편안한 기분으로 노르웨이에 올 수 있을 것 같다. 나름 정가는 부분도 있고.


노르웨이에와 노르웨이인에 대한 생각도 좀 정리가 되었다. 처음에는 거칠고 건조하게만 보였는데, 이젠 관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몇 가지 단상을 적어본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인상비평적인 것이니, 너무 의미는 두지 마시고~



@ 프랑스 시골의 집이 성을 축소한 격이라면, 노르웨이 시골의 집은 오두막을 확대한 격이다. 프랑스보다 국민소득이 두 배인데 집은 1/2이다. 담이나 담 역할을 하는 경계가 없어 집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그들의 소박한 삶을 보여준다.


@ 집뿐만 아니라 대체로 큰 건물을 잘 안 짓는다. 되도록 크게 짓는 건물들(성당이나 교회 등)도 사이즈가 대부분 적은 편. 경제력에 비해 크고 높은 건물이 없다. 아담한 바이킹 배로 대양을 가로지르듯 작은 건물을 효율적으로 쓰는 듯. 겉치레가 없다.


@ 암튼 국민소득 십만불을 어디다 쓰는지 부자티가 참 안 난다. 드러내놓고 사치하는 것은 수치라 생각해서 숨어서 한다는데, 대체로 비싸 보이는 걸 접하기 힘들다. 부에 대한 위화감은 없는 나라인 듯.


@ 국가가 세금 걷어서 터널 뚫는데 다 쓰는 듯. 곳곳이 터널이다. 여름에 왔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겨울에 오로라기행 해보고는 인정. 겨울에 눈이 많고 언덕이 많으니 터널로 극복하려 했을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구석.


@ 치장이 적은 것을 넘어서 정리도 잘 안 하고 산다. 뭔가가 너저분한 것이 우리와 닮았다. 일하다 대충 두고 가는 것도 비슷하고. 결과물만 좋으면 과정은 좀 뒤죽박죽이더라도 상관 없다는 듯. 시각적으로 불편한 것에 유연하다.


@ 삶이 심플하다. 그래서 선택성이 적다. 마트의 술은 맥주뿐. 맥주 중에서도 필스너뿐. 도수는 4.7%로 통일. 이렇게 선택성을 중시하지 않는 선진국은 처음 본다.


@ 사람들이 순하다. 바이킹의 피는 모계로 계승된 듯. 일본 남자 보고 사무라이의 기상이 안 느껴지듯, 노르웨이 남자 보면서 바이킹의 마초성도 느끼지 못한다. 다만 노르웨이 여인들의 강인함에서 바이킹의 흔적이 희미하게 느껴진다.



@ 규칙은 있지만 유도리가 있다. 다른 유럽처럼 돈 내는 화장실이 드문 편인데 간혹 있다. 그런데 먼저 간 사람이 문을 잡아주고 뒷사람이 그냥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아마 그도 그런 친절을 받았던 듯).


@ 노상방뇨는 물론 노상배변도 일상이다. 야외에서 앉아 있는 사람에게 함부로 인사하면 안 된다. 똥 싸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실제로 우리 일행이 그런 상황을 당했다.


@ 아웃도어 활동은 많이 한다. 취미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인 듯. 산책 나가면서 노느니 이 잡는다는 기분으로 낚싯대 들고 가서 물고기 몇 마리 건져가기도.


@ 자연이 매력적이니 아웃도어 활동을 많이 안 할 수 없을 듯. 그런데 그에 비해 아웃도어 브랜드는 이웃 스웨덴에 비해 별로 없는 편이다. 수수한 노르웨이인의 성향이 반영된 듯.



@ 노르웨이 산들 특히 로포텐제도의 산들은 큰 산의 정상부만 압축해 놓은 느낌이다. 수목 한계선도 200~300m에서 나타나서 시야가 확 트인다. 정상부 직전의 깔딱고개와 고바위길도 자주 만나는데, 암튼 오르기에 만만치 않다.


@ 겨울에 오로라기행에 왔을 때는 우울해 보였는데(낮이 없는 극야를 일주일 정도 겪고 가니 나도 우울해졌다), 여름에 보니 활기차다.


@ 여름은 축복의 계절. 모두들 삶의 속도를 늦추고 여유를 즐긴다. 그들의 여유 위에 숟가락 하나 얹는 것이 바로 노르웨이 여행의 매력이다.


@ 오로라만큼 백야의 석양도 매력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낮이 길다는 것은 석양도 길다는 것과 같은 의미. 해가 슬로우 비디오처럼 천천히 진다. 일출도 천천히 일어나고.



@ 노르웨이 여름 하늘도 참 매력적이다. 하늘색도 매력적이고 구름도 예쁜 것이 몽골 하늘같다. 다만 몽골처럼 은하수는 보지 못한다. 왜? 어두운 밤이 없어서~


@ 노르웨이 물가는 비싸다. 마트 물가도 비싸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마트가 백화점 식품코너 퀄리티의 식자재를 냉동식품 가격으로 사는 것이라면 노르웨이 마트는 냉동식품을 백화점 식품코너 가격으로 사는 곳.


@ 노르웨이에서 싼 건 피자밖에 없다. 피자 한 판 가격이 파스타 한 그릇과 비슷. 노르웨이 사람은 혼자 피자 한 판을 먹지만 우리는 두세 명이 나눠 먹으니 상대적인 가격.


@ 그래도 대구는 실컷 먹을 수 있다. 대구를 사서 대구탕 대구조림 대구스테이크 대구스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해 먹었다. 고등어는 청어와 마찬가지로 조리된 것들만 판다.


@ 그런데 오징어는 거의 안 먹는 듯. 어물전은 물론, 마트 냉동코너에서도 볼 수 없었다. 오징어볶음과 해물라면은 불발.


@ 식자재 중 염도가 넘 높아서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짠 베이컨을 먹었다. 염도 확인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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