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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발달

by 켈리황

집 앞에 두 개의 카페가 나란히 붙어 있다. A 카페는 반년 넘게 공실이었다가 드디어 오픈을 했고, 카페가 별로 없는 동네에 관심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그전에 있던 카페는 3층 건물, 한강 조망, 깔끔한 인테리어로 나름 괜찮아서 종종 갔는데 어느 시점부터 할인 행사가 많아지고, 3층에는 코인 노래방까지 생기는 걸 보고 운영이 잘 안 되나 싶었는데 결국 폐업을 했다. 새로운 A 카페가 눈에 띈 건 몇 가지, 우선 소보로 특화 카페, 소보로로 장사를 할까 했지만 역시나 소보로 기반 다양한 종류의 빵을 만들어 적지 않은 가격에 판매한다. 대신 커피는 아메리카노가 1500원이니 저렴한 편이다. 두 번째, 1층은 대기 공간이고 2층과 3층에 테이블이 많았던 그전 카페와 테이블 배치를 완전히 바꾸었다. 우선 3층을 다른 곳에 임대를 줘고 1층과 2층만 운영을 하고, 테이블 배치를 1층에 집중했다. 2층은 매일 직접 만드는 베이커리 공간과 테이블 몇 개. 마지막으로 주말 임시 주차장을 따로 만들었다. 재개발이 예정된 구역들 주변이라 그중 한 구역을 주말용 임시 주차장으로 만들었다. 경영 마인드가 있는 사람이 사장일 거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B 카페는 오래된 동네 카페다. 인테리어도 평범하고 공간도 크지 않다. 크지 않은 그 공간에 테이블은 참 많다. 그게 내 첫인상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이 카페 주차장이 늘 붐비는 게 아닌가. 속으로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저 카페는 특별한 게 없이 참 평범한데 왜 사람들이 저렇게 가는 걸까?


요즘 나는 B 카페만 간다. 오늘 아침에도 다녀왔다. 문을 여는 아침 9시경은 사람들이 별로 없다. 속이 안 좋으니 오늘은 커피 대신 카모마일 차와 크림치즈 베이글을 주문했다. 의자가 편해 보이는 테이블에 가서 버지니아 울프에 관해 쓴 책을 폈다. 베이글이 차가워지기 전에 크림치즈를 발라 놓고 버지니아 울프가 살던 시대의 성 불평등에 관한 내용을 읽고 있는데, 문득 음악이 귀에 들어왔다. 부드럽고 잔잔한, 읽고 있는 책과 카모마일 차와 더없이 잘 어울리는 음악이...


그 순간 내가 왜 B 카페만 가는지 깨달았다. 카페가 주는 경험이(ambience) 부드럽고 잔잔하며 격이 있었다. 삼사십 대의 주인과 직원들은 늘 잔잔한 웃음을 보이며 친절히 응대하고, 크림치즈 묻힌 따뜻한 베이글도 맛있고, 처음 시켜 본 카모마일 차도 전혀 떫지 않고 부드럽고... 참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지난겨울 A 카페에서의 경험이 생각났다. 업무 미팅이 있어 테이블 수가 적은 2층이 더 조용하겠다 생각해 거기 있었는데, 캐럴이 정신없이 소리치고 있었다. 시끄러운 음악을 볼륨까지 최대로 해 놓으니 먼 길 오신 손님께도 너무 미안했다. 같은 공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여기를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1층으로 내려가자고 양해를 구했고, 그나마 1층 음악의 소음도는 어느 정도 참을 만했다. 그 뒤로 A 카페는 다시 가지 않는다. 물론 매일과 매 순간 B카페의 경험이 좋고, A카페의 경험이 나쁘지는 않은 것이다. A 카페를 오전 9시에 가면 다른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테지만, B 카페가 제공하는 경험의 수준이 A 카페보다 내게는 훨씬 편안하게 느껴졌다.


얼마 전 오은영 박사님과 이이경 씨가 나오는 '백억짜리 아침식사'라는 방송이 새로 시작 됐다. 첫 화의 런던베이글 뮤지엄 대표와 두 번째 화의 H아몬드 대표의 공통점 중 내가 느낀 한 가지는 그 두 사람의 감각이 상당히 발달했다는 것이다. 런베뮤 대표가 맥시멀 속에서 감각을, H아몬드 대표가 미니멀 속에서 감각을 찾는다는 점이 크게 달랐지만, 감각이 비범한 수준으로 발달했다는 건 두 사람 모두에게 느껴졌다. 집에서도 운동화를 신지 않으면 룩(Look)이 완성되지 않은 것 같고, 아침 식사로 만든 구운 채소들의 컬러감이 중요하다고 말하던 런베뉴 대표. 가장 중요한 오전 10시 미팅을 위해 속을 편하게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 따뜻한 우롱차와 교꼬만 먹는 H아몬드 대표. 이렇게 감각이 고도로 발달한 두 사람이 선보이는 제품들은 만나면 행복하겠구나 싶다. 어쩌면 이 두 사람은 경영으로 포장된 예술가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감각은 얼마나 발달되어 있는가?"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하고 있는가?"


조만간 미뤄두었던 뮤지엄 산과 장욱진 미술관에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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