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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AI 스타트업들은 어떤 액셀러레이터 출신일까

대변혁기에 진입한 실리콘밸리 액셀러레이터 산업

by CapitalEDGE

AI 스타트업의 원픽, AI Grant


AI 생태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지금, 유망한 스타트업들은 어떤 요람에서 탄생하고 있을까요? 2022년 이후 설립되어 현재까지 2천만 달러 이상의 자금을 조달한 286곳의 AI 스타트업들의 출신 액셀러레이터를 추적해 본 결과, 예상을 뒤엎는 흥미로운 패턴이 드러납니다.


우선 AI Grant 출신이 17곳으로 1위를 차지한 반면, 실리콘밸리의 원탑 액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 출신 기업은 10 곳에 그쳤습니다. 그 뒤를 이어 Plug and Play가 4곳, 500 Startups가 3곳을 기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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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과가 더욱 놀라운 이유는 액셀러레이터의 규모 차이에 있습니다. AI Grant는 현재까지 총 4개 배치에서 97개의 스타트업만을 배출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와이콤비네이터는 1,000개가 넘는 스타트업을 육성했죠. 단순 비율로 봐도 AI Grant의 성공률은 압도적입니다.


물론 액셀러레이터 참여 여부가 사업 및 펀드레이징 성공에 대한 인과관계를 의미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벤처 투자보다 더욱 치열한 실리콘밸리의 액셀러레이터 간 경쟁 환경에서 AI Grant가 어떻게 단기간 내 이렇게 집중적으로 뛰어난 AI 스타트업들의 코호트를 구성할 수 있었는지는 분명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AI Grant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AI Grant의 시작은 의외로 오래되었습니다. 2016년 알파고가 세상을 놀라게 한 이후 일부 창업자들을 중심으로 AI 연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점이었죠. 연쇄 창업자 출신으로 와이콤비네이터의 파트너를 거쳤던 다니엘 그로스는 마찬가지로 창업자이면서 2018년부터 깃허브(GitHub)의 CEO를 역임한 바 있는 냇 프리드만과 손잡고 2017년 시작한 전 세계 유망 AI 연구자들에게 소규모 연구비를 지원하는 프로젝트가 그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1인당 최대 5만 달러 수준의 그랜트를 제공하며, 순수하게 오픈소스 AI 연구와 프로젝트를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첫해에만 36명의 연구자에게 그랜트를 지급했고, 훗날 코히어(Cohere), 헬리아(Helia), 크레스타(Cresta) 같은 유명 AI 스타트업의 창업자들이 당시 그랜트를 받았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는 조용히 연구자 지원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고등학생부터 아프리카 연구자까지 다양한 배경의 인재들을 발굴했고, AI/ML 논문, 오픈소스 도구, 실험적 연구 등 폭넓은 분야를 지원했죠. 이 기간 동안 약 50명의 연구자에게 그랜트를 지급하며 AI 커뮤니티 내에서 탄탄한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https%3A%2F%2Fsubstack-post-media.s3.amazonaws.com%2Fpublic%2Fimages%2F2904e079-3294-4f08-b81a-ad7c816659ca_1551x1139.png 2017년 해커뉴스에 AI Grant 론칭 소식을 알린 다니엘 그로스


가장 주목할 점은 이들이 AI 연구를 바라보는 장기적 시각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단기 수익에 집중할 때, 프리드만과 그로스는 AI 기술의 근본적 발전에 투자했죠.


큰 전환점은 2022년이었습니다. 챗GPT의 등장으로 AI 열풍이 불기 시작하자, AI Grant는 연구 지원 프로그램에서 본격적인 AI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로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프리드만과 그로스는 개인 자금 1천만 달러를 투자해 AI-first 제품 스타트업에 25만 달러를 Uncapped SAFE 방식으로 투자하기 시작했죠. 여기에 35만 달러 상당의 Azure 크레딧을 별도로 제공하며 초기 AI 스타트업들의 인프라 부담을 크게 줄여주었습니다.


https%3A%2F%2Fsubstack-post-media.s3.amazonaws.com%2Fpublic%2Fimages%2F92876801-86e4-4c1f-8a0d-7589f132d074_1251x1400.png AI Grant 선정 시 받을 수 있는 혜택


AI Grant의 성공은 소위 '타이밍'의 중요성을 잘 보여줍니다. 인공지능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식었을 때도 꾸준히 관련 연구를 지원하며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쌓아온 덕분에, 챗GPT가 등장한 후 가장 먼저, 가장 공격적으로 AI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로 변신할 수 있었죠. 덕분에 AI Grant를 거쳐간 기업들 중에는 퍼플렉시티 (Perplexity), 커서(Cursor), 일레븐랩스 (Eleven Labs) 등 데카콘과 유니콘이 즐비합니다.


AI Grant가 갖는 가장 큰 경쟁력은 다른 액셀러레이터와 달리 AI에만 집중함으로써 얻은 깊은 전문성과 네트워크입니다. 반면 와이콤비네이터는 개리 탠이 CEO로 취임한 2022년 8월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AI 중심으로 방향을 선회했지만 여전히 AI Grant가 쌓아온 전문성과 초기 선점 효과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현지에서는 ‘될성부른 AI 스타트업은 AI Grant, 바이브 코딩으로 에이전트 만들며 바이럴에 집중하는 대학생들은 와이콤비네이터’라는 이미지마저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액셀러레이터 언번들링


와이콤비네이터 독주 체제로 견고해 보였던 실리콘밸리 액셀러레이터 시장에서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와이콤비네이터와 같은 종합 액셀러레이터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단일 섹터에 특화되거나 극초기를 넘어 파운딩 스테이지에만 집중하는 버티컬 액셀러레이터들이 주목받고 있죠. 이러한 변화는 AI Grant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현상입니다.


과거에는 차별화된 스타트업 방법론과 방대한 네트워크가 실리콘밸리의 핵심 경쟁력이었고, 와이콤비네이터가 수천 곳에 달하는 출신 기업의 네트워크를 통해 이를 가장 잘 활용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기술 변혁기에는 Like-minded 투자자와 유관 창업자 간의 끈끈하고 집중된 네트워크가 더 큰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벤처캐피탈들의 액셀러레이터 시장 진입장벽도 예전 대비 상당히 낮아졌죠. 결과적으로 새로운 스타트업 붐이 새로운 액셀러레이터 붐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1️⃣ 하푼벤처스 - 블랙 플래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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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우주항공, 로봇공학 등 딥테크 분야에 집중해온 하푼벤처스(Harpoon Ventures)는 최근 자체 액셀러레이터인 'Black Flag'를 시작하였습니다. "미국의 차세대 핵심 기술을 구축하는 창업자를 위한 액셀러레이터"라는 명확한 포지셔닝을 가진 Black Flag는 특히 우주항공, 생물학, 국방, 에너지, 로봇공학 등 심층 기술 분야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특정 시간에 묶인 배치가 아닌 상시 지원 방식(rolling accelerator)을 운영하고 있죠. 이는 전통적인 액셀러레이터 모델에서 탈피한 새로운 접근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테레인 - 프리 에이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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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러티브 파괴’란 키워드로 유명한 베드록 캐피탈(Bedrock Capital)의 공동창업자였던 에릭 토렌버그가 2024년 새롭게 시작한 초기 벤처캐피탈 테레인(Terrain)에서 운영하는 액셀러레이터 'Free Agency'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들은 기존 액셀러레이터들과 달리 회사 설립이나 자금 조달 이전에 "올바른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선정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90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스포츠의 프리 에이전시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 프로그램은, 운동선수들이 팀을 선택하기 전에 구조화된 프로세스를 거치며 다양한 옵션을 평가하는 것처럼, 창업자들이 올바른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죠.


Free Agency는 코호트, 데모데이, 과장된 선전이나 일반적인 프로그램이 없는 "고도로 개인화된" 방식을 강조합니다. 이들은 마이크로소프트, OpenAI, Framer 등에서 제공하는 35만 달러 이상의 기술 크레딧과 함께 경험 있는 투자자와 창업자와의 1:1 파트너십, 전문가, 고객 및 CEO 어드바이저 접근 등을 제공합니다. 90일 후에는 두 가지 결과 중 하나에 도달하게 되죠: (1) 초기 모멘텀을 가진 높은 확신의 스타트업 또는 (2) 지금이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는 명확한 깨달음입니다. 후자의 경우도 "승리"로 간주한다는 점이 특별합니다.


이처럼 특정 분야나 단계에 집중하는 액셀러레이터들은 범용 액셀러레이터보다 더 깊은 전문성과 맞춤형 지원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마치 AI Grant가 AI 분야에서 와이콤비네이터를 능가한 것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버티컬 액셀러레이터들이 기존 거인들의 자리를 위협하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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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 신념(Conviction)


한때 대형 벤처캐피탈은 제네럴리스트, 특정 섹터나 특정 단계에 집중하는 벤처캐피탈은 스페셜리스트로 구분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형 펀드들이 더욱 대형화되고 전문화되면서 시리즈 A 이후 단계에서 섹터 전문 벤처캐피탈이나 특정 단계에 집중하는 벤처캐피탈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고 있는 형국입니다. 게다가 자본은 더욱 큰 펀드로 몰리고 네트워크의 접근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죠.


결국 차별화를 추구하는 펀드나 새롭게 시작하는 펀드들은 대형사들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더욱 초기, 심지어 프리시드보다도 앞선 법인 설립 전 단계(Foundation Stage)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트랙션이나 데이터가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투자자 개인의 독자적 인사이트와 차별화된 네트워크가 결정적인 경쟁력으로 작용합니다. 다른 이들이 가치를 인식하기도 전에 창업자의 잠재력과 시장 기회를 파악하는 능력, 즉 투자 신념(Conviction)이 투자 성공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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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만난 펀드오브펀드(FoF) 관계자에 따르면 새롭게 초기 벤처캐피탈에 뛰어들고 있는 신진 운용사(Emerging Manager)들은 하나같이 프리시드에 집중한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프리시드 집중 전략이 아니면 오히려 차별화가 된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이는 반대로 이야기하면 자신만의 투자 신념으로 프리시드 이전의 극초기 단계에서 존재감을 발휘할 수 없으면, 새로운 벤처캐피탈은 점점 더 존재의 이유를 찾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시장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창업자에게는 더없이 좋은 환경입니다. 액셀러레이터가 언번들링되면서 단순히 자본을 넘어 전문성, 네트워크, 맞춤형 지원 등 다차원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파트너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치 AI Grant가 AI 분야에서 증명한 것처럼, 특화된 전문성과 집중된 네트워크가 가진 가치는 범용 액셀러레이터의 규모와 브랜드를 능가할 수 있음이 명확해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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