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 있던 것은 결국 밖으로
릴리Riley가 어느덧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중학생이 되었다. 사춘기(思春期), “몸의 생식 기능이 거의 완성되며, 이성(異性)에 관심을 갖게 되고 춘정을 느낄 만한 나이”라고 한컴 사전은 정의해 놓았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한컴 사전은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놓쳤다. 사춘기는 예상치 못하게 빨리 자라난 신체를 마음이 따라가기 위해 무진장 노력하는 시기이다. 즉, 신체의 갑작스러운 성숙을 마음이 적절히 따라잡으려 하지만 그러지 못해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바로 사춘기다. 어른의 몸을 아이의 마음이 따라잡기 위해 겪게 되는 우여곡절을 뇌심리학은 어떻게 설명할까?
기쁨(joy)과 슬픔(sadness), 화(anger), 두려움(fear), 혐오(disgust)에 더해 사춘기에는 불안(anxiety), 질투(envy), 당황(embarrassment), 지루함(boredom) 같은 새로운 감정들이 릴리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사춘기가 되면 모든 게 엉망진창으로 변합니다(Puberty is messy).”라는 간판을 앞세우고 쳐들어온 사춘기 공사 군단은 지금까지 릴리의 뇌를 관리하던 조종석을 인정사정없이 부숴 버렸다. 감정을 적재적소에 경험하고 제어하는 능력을 상실한 릴리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능력 또한 잃게 된다.
기쁨과 슬픔, 화, 두려움, 혐오를 내보낸 자리에는 불안(anxiety)이 남았다. 두려움과 공포가 대상을 전제로 발생한다면, 불안은 대상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끝없이 상상하며, 상상 속 가능성을 현실로 착각하게 만들어 상상에 대한 대비로 현실을 지휘하고 통제하게 한다. 그 대가는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에 대한 망각과, 상상의 현실과는 다른 실제 현실에 대한 무관심과 지루함이다.
태어날 때부터 몸에 내재한 감정과 사춘기와 함께 새롭게 발생하는 감정 사이의 충돌을 뇌심리학적 지식을 동원해 이해한 걸 바탕으로 만든 만화 영화 「안에서 밖으로Inside Out 2」의 주제는, 마음속에서 ‘자기라는 체계’(sense of self)가 어떻게 형성되고 자라나는지다. 기쁨, 슬픔, 화, 두려움, 혐오가 사춘기에 접어들기 전까지 릴리의 경험 중 긍정적인 요소들만 선별해서 하나의 신념 체계(belief system)를 만들어 놨다면, 불안, 질투, 당황, 지루함 같은 감정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걱정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계획과 노력에서 또 다른 신념 체계를 만들어 간다. 이 두 신념 체계가 상충할 때 릴리가 반사적으로 보이는 반응이 바로 냉소(sarcasm)다. 흥미로운 건, 냉소가 이 두 상반된 신념 체계를 이어 주고 지탱하는 뇌 구조를 파괴할 정도로 우리 마음에 해롭다는 사실이다.
여자 고등학교 아이스하키 대표팀(ice hockey varsity)에 들어가기 위해, 릴리는 감독과 선수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하고, 중학교 때부터 함께 아이스하키를 해 온 친구들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만 한다. 이렇게 상충하는 두 가지 갈등을 잘 조절하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건강한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타의로 만들어진 신념 체계가 아니라 지금까지 릴리가 경험하고 느낀 모든 것을 종합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오늘의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의 모든 경험을 종합하고 압축하며 융화한 결과물이다. 삶이란,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가치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2024.10.16.(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