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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 vs 비관적

난 비관적인게 아니라 현실적인 거라니까???

by Kelvin

내 동생은 야망이 크고 해보고 싶은 것들이 아주 많으며 내가 보기엔 아주 터무니없는 일들이라도 혼자 그 계획을 상상해 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자주 보곤 한다. 나는 그런 동생을 어이구 그래그래 하고 싶은 거 다 해 우쭈쭈 해주고 넘어가지만 내 동생의 시선으로는 내가 내 삶을 대하는 태도가 그리 탐탁지 않은 것 같아 보인다.


여느 때와 같이 동생과 통화를 하고 있던 도중 돈 버는 것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현재 회계/세금 분야를 전공하고 있는 동생은 돈에 대해 꽤 밝다. 대체적으로 세계의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돈을 어디에 어떻게 투자해야 하는지 등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도 있고 본인도 재밌어한다. 우리 가족들 중 유일하게 주식을 하는데 꽤 많이 벌었다고 한다. 그렇게 돈 관련 얘기를 하던 도중 동생이 자기는 나보다 훨씬 더 돈을 많이 그리고 나보다 빨리 벌 것이라는 포부를 내놓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의학이라는 분야의 특성상 돈이 꽂히는 때가 늦고 병리학이라는 분야도 다른 의학 세부전공에 비해 들어오는 돈이 적은 편이다. 그래서 나는 동생에게 난 너보다 돈을 더 잘 벌 운명이 아니니 제발 그래달라며 그리고 부모님께 효도 많이 해달라는 답변을 해주었다. 이 말을 들은 동생은 발끈하며 나에게 설교를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1시간가량의 토론을 했다.


동생이 보기에 나는 인생을 아주 비관적으로 산다고 했다. 항상 ‘절대’, ‘무조건’이라는 단어를 지금처럼 안 될 거야라는 부정적인 내용을 얘기할 때만 쓴다고 했고 그로 인해 나 스스로 내 무한한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사람은 변화와 도전, 그리고 그로 인해 오는 스트레스를 통해 성장하지만 난 변화보다 안정을 좋아한다는 점, 내 comfort zone에서 나오기보다 예측 가능한 삶을 더 선호한다는 점도 내 동생은 의문을 가졌다. 내 동생은 언제나 새로운 경험, 변화, 도전을 즐기는 스타일이라 더욱 그런 것 같다.


이 말을 들은 그때 당시의 나는 심히 당황스러웠다. 난 내가 그 누구보다 긍정적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는 일이 뜻하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항상 '에이, 뭐 어떻게든 되겠지' 혹은 '그래, 사람이 그냥 죽으란 법은 없지'라는 마인드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어감은 조금 부정적이게 들리긴 하지만 어쨌든 이 문장들이 내포하고 있는 결론은 '괜찮아, 결국엔 잘 풀릴 거야'라는 뜻이니 않나). 그리고 조금 후에 언급하겠지만 비록 내 삶이 타인의 삶에 비해 조금 고요하다 할지라도 난 내 인생이 꽤 다채롭고 재밌다고 생각한다.


예전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난 매사의 ‘기대’라는 걸 잘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내 옛 글인 '간절함의 기준'에 자세히 쓰여 있다. 동생은 이 점에 대해 살아가면서 아무 기대도 없이 살면 무슨 낙으로 삶을 사냐며 의아해했다. 하지만 나는 일상을 살아가며 찾을 수 있는 작고 소소한 행복들이면 충분하다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며 내 삶에 만족하고 있다. 한 친구에게서 나의 이 가치관이 기대를 저버린 실망감을 다시 받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인 것 같다고 말해준 적이 있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생각하지만 그렇다 한들 나는 현재 내 이런 가치관에 변화를 줄 생각은 없다. 삶에 큰 지장이 없으니까.


동생이 얘기한 사람은 도전을 통해 성장한다는 것엔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회와 변화가 오길 기다리는 건 터무니없다는 걸 내 예전 글에서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난 내 나름대로 차근차근히 내 인생에 도전과 변화를 주고 있다. 애초에 의대를 그것도 미국에서 도전한다는 것부터 그 결심의 크기를 당시에는 몰랐을 뿐 내겐 엄청난 도전이었다. 그리고 이번 마지막 의대결과가 좋지 않게 나올 경우 다음으로 하고 싶은 분야도 생각해 두고 플랜 B를 짜고 있다. 내가 의대를 세 번 도전하지 않는 것도 내가 ‘아,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의대에 들어갈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구나’라는 비관적인 생각 때문이 아니다. 두 번의 도전동안 난 충분히 많은 노력을 쏟을 만큼 쏟아부었고 그럼에도 떨어진다면 의사와는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떨어진다 한들 의사에 대한 미련이 내 다음 계획을 향한 설렘에 턱없이 못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생이 얘기한 스스로를 제한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난 자기 객관화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얘기한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한 삶이란 전혀 변화가 없는 무미건조한 삶이 아니다. 옛날처럼 한국에서 프랑스로,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를 하는, 내 인생을 송두리째 뒤엎는 변화를 또다시 '자발적으로' 겪고 싶지 않을 뿐이지, 내가 지금까지 꾸려놓은 인생의 틀 안에서 조그마한 그리고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변화들을 조금씩 주는 것은 나는 반기고 또 필요하다 생각한다. 한창 의대 원서를 작성하고 있을 적엔 이것 말고는 내 머릿속에 다른 변화를 줄 생각 자체를 하지 못 했고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원서 작성이 끝난 지금 내 생활에 조금 색깔을 더해줄 마음이 생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배드민턴 동아리에 나가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땀 흘리며 배우고 있다. 또, 항상 친구들이 먼저 내게 어디 놀러 가자, 여행 가자며 제안했다면 최근엔 내가 먼저 주변 사람들에게 스키 타러 가자며 플랜을 짜놓고 조르고 있고 긍정적인 답변을 보여 실제로 여행계획을 추진 중에 있기도 하다. 이런 소소한 것들이 모여 내 인생을 재밌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비관적’의 반대말은 ‘낙관적’이지 ‘현실적’은 아니다. 난 내가 낙관적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언제나 다 잘 될 거야라고 하는 성격은 아니기 때문. 하지만 그렇다고 이래서 안 될 거야 혹은 저래서 안 될 거야 하는 성격 역시 아니다. 좀 구체적으로는 초연한 성격이라고 하는게 맞는 것 같다. 흘러가는 대로, 일어날 일은 어차피 일어날 테고 일어나지 않을 일은 일어나지 않은 운명이다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 관점은 과연 비관적인가 혹은 현실적인가?


현재 회계학/세금 분야를 전공하고 있고, 경제관념이 뚜렷하게 잡혀 있고, 돈을 아주 좋아하는 내 동생에 비해 난 아직 돈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고 코인은 커녕 주식도 겁나고 공부하기 귀찮아서 손도 대지 않고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월급쟁이로 살아가도 큰 불만이 없다. 그렇기에 사업 아이디어를 가족 저녁 식사 때마다 마구 늘어놓는 내 동생이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벌 것이라는 예상을 나는 자연스레 하게 된다. 이런 나는 과연 비관적인가 아니면 현실적인가?


이런 내용의 대화를 주고받은 후 동생은 이제 왜 내가 이런 성격과 가치관을 갖게 되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본인의 기준으론 내 삶의 방식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더라. 나는 그래서 워낙에 다른 두 성격을 가진 터라 앞으로 동생과 내가 서로 배울 점/보완할 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 다양성이 있어야 살아가는데 있어서 더 재밌지 않을까. 통화를 마치며 여느 혈육관계의 통화 내용처럼 그래 니가 알아서 해로 끝이 났다. 끝으로 나는 내 삶의 가치관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요새 chill guy 밈이 유행하던데, 난 아주 chill 한 사람이기에 그저 내 인생을 긍정의 색깔로 chill 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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