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의령에서 축제 기획자로 한 달 살기(2)
순천 한달살기가 끝나고,
다음 일정은 축제 기획자로 의령에서 한달을 사는 일.
순천에서 돌아온 내내 나물이를 하루종일 쳐다보고 있었더니 피곤한 모양인지 곯아떨어져 있다.
미안. 누나가 또 한동안 집에 없을 예정이라
벌써부터 그리운 마음에 널 못살게 굴었구나.
누나 또 다녀올게.
누나 없는 동안에도 건강하게 잘 지내렴.
(동생들이 잘 보살펴 줄 건데도 혼자서 아련 가득 담아 인사하고 나왔다)
순천 한달살기에서는 20인치 캐리어와 백팩이었는데,
이번엔 캐리어가 24인치로 커졌고, 이것저것 짐이 좀 많아졌다.
순천 한달살기를 하며 꼭 필요하다 싶었던 것들을 욱여넣었기 때문인데,
그 덕에 버스 1번만 타면 도착하는 마산역까지
거금을 주고 택시로 이동했다.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제일 아까운 지출 중 하나가 택시를 타는 일인데,
커다란 백팩과 캐리어를 들고 시내버스를 타는 건
정말 무리였으니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하자.
마산역에 있으니 '망고'님이 픽업 나오셨고,
나 외에도 썸머님과 또치님이 마산역에 내려서 함께 차를 타고 의령으로 이동했다.
의령에 오는 길, 망고님은 곳곳을 지나며 의령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망고님도 원래 의령 출신은 아니었지만, 이곳이 좋아 정착해 로컬 기획자로 살아가고 계셨다.
의령을 너무 잘 아시는 것 같아 따로 공부하신 건지 여쭤보니,
관심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레 알게 된 것들이라고 하셨다.
지역을 사랑한다는 건 단순히 “여기에 이런 게 있구나” 하고 아는 수준을 넘어,
그 땅의 역사와 특색까지 몸에 스며드는 일인 걸까?
희주님에 이어 망고님까지.
다양한 지역을 살아보며 만나는 이들의 삶을 통해, 나의 세계는 이렇게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다.
의령 청년센터에 들러 키와 주의사항이 적힌 종이를 들고 방으로 향하는 길.
의령 한달살기는 순천 한달살기와는 다르게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진 숙소에서 지내게 된다.
좋은 점은 1인 1실이라 혼자만의 시간을 오롯이 즐길 수 있다는 것이고,
아쉬운 점은 룸메들이 없어 수다를 떨 수 없다는 것이다.
의령 청년센터 건물에는 커피 머신과 정수기를 포함한 편이시설이 갖춰져 있는데,
세탁기와 건조기도 있고, 냉장고나 간단하게 조리를 할 수 있는 씽크대까지 구비되어 있다.
1분만 나가면 빵집과 식당이 즐비했던 순천과는 달리
의령에서는 요리를 해먹어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긴 나의 방!
침대와 테이블, 옷장이 있어 혼자가 쓰기에는 넘칠 정도로 충분하다.
의령에 오기 전 이미 수많은 블로그 글을 뒤져보고 후기를 보고 온 것이었지만
눈으로 보는 숙소는 훨씬 더 쾌적하고 좋았다.
화장실까지 둘러보고도 약간의 시간이 남아
짐을 풀기 시작했다.
캐리어를 열어 이것저것 싸온 짐을 정리하고 있으니 정말 실감났다.
나 정말 의령에 도착한 거구나.
의령에서 나의 닉네임은 '나나'
의령에 오기 전 닉네임을 알려달라고 해서 집에서 쓰는 애칭을 알려드렸다.
닉네임을 짓기 전 아주 짧게 고민하고 '나나'로 알려드렸는데,
썸머님은 여름이 좋아서 닉네임을 지었다 하고,
또치님은 친구들의 추천으로 지은 이름인데 와서 보니 마음에 안 든다며 울상을 지으셨다.
인상 깊었던 홍의별곡의 뜻.
의병을 일으켜 우리를 지켜냈던 붉은 의지의 표현 '홍의'와 그 마음을 청년의 개성으로 노래하는 우리만의 '별곡'을 합친 이름이라 한다.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리엔테이션 시작!
참가자인 나, 썸머, 또치 말고도 세 분이 더 계셨는데
왕바우, 망고, 만듀 님이셨다.
왕바우 님은 이 회사의 대표님으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셨는데,
의령 한달살기를 기획하게 된 긴 역사에 대해 말씀해주셔서 홍의별곡은 물론 의령 청년마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참 동안 진지하게 설명을 듣고 있었더니
망고님께서 의령의 특산품인 망개떡을 슬그머니 올려놓고 가셨다.
망개떡은 처음 먹어봤는데 생각보다 안 달고 맛있었다.
왕바우님의 오리엔테이션 설명을 들으며
최근까지 지냈던 순천 한달살기가 떠올랐다.
순천 한달살기는 좀 더 여유롭고, 치유의 시간이었다면
의령 한달살기는 축제 기획자로 온 것이니 만큼 좀 더 예리하게 머리를 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4년 동안 마케터로 살아오면서도
마케팅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나는
이미 잘 짜여진 이곳에서 내가 뭘 도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슬며시 피어올랐다.
한 시간 반가량의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뒤,
“열심히는 하겠지만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걱정을 조심스레 내비치자,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거라며 의지를 북돋아주셨다.
그래, 너무 걱정하지 말자.
그저 이번 축제를 통해 얼마나 보고 듣고 배울 수 있을지만 생각하자.
나는 홀로 주먹을 꼭 쥐며 의지를 다졌다.
이 경험이 나를 더 큰 세계로 이끌어주기를 바라면서.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뒤 우리가 향한 곳은 ‘해드니 전골’. 저녁을 먹기 위해서였다.
순천 한 달 살이 때는 숙소에서 매일 조식을 제공받았고,
그 외에는 프로그램 중에 함께 먹는 한 끼 정도가 전부였다.
의령 한 달 살이는 조금 다른 방식이다.
한 끼 최대 9,000원, 하루 최대 27,000원 안에서 자유롭게 결제하면,
한 달 뒤 영수증 내역을 확인하고 입금해주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하지만 오늘은 첫날이라 아직 영수증 처리가 안 되어,
대표님인 왕바우님께서 저녁을 사주셨다.
오늘의 메뉴는 소고기 버섯 전골.
아직은 서로 어색해 조용히 밥을 먹었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친해지기 위해서는 필수인 맥주도 곁들이고,
안주가 부족할 것 같다며 추가로 주문해주신 순대와 한국인의 후식 볶음밥까지.
아주 배부르고 맛있게 먹을 수 있었던 저녁이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니 19시가 조금 지난 시각.
상가가 거의 없는 사각사각 하우스 주변은 이미 땅거미가 내려앉아 어둑어둑했다.
배가 불러 소화도 시킬 겸, 가볍게 걸어보기로 했다.
거리는 마치 모두가 잠든 듯 고요했고, 풀벌레 소리만 귓가를 간질였다.
그 덕분에 밤하늘의 별빛은 더욱 선명하게 반짝였고,
나는 천천히 풍경을 바라보며 파출소까지 걸어 다녀왔다.
사각사각 하우스에서 파출소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약 15분 남짓.
앞으로 밤이 너무 어둡지 않다면, 이 길을 내 산책 코스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길에 본 귀여운 고양이.
몸집이 새끼 같아서 놀라지 않게 천천히 다가가 사진을 찍고 있는데,
나를 견제하는 듯한 어미 고양이가 톡 튀어 나와서 홀로 웃었다.
걱정마, 해코지도 안하고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을게.
속으로 고양이들에게 말을 건네고 몸을 돌려 숙소로 향했다.
앞으로 의령에서의 한달은 어떻게 흘러갈까?
그리고 축제 기획자로 산다는 건 어떤 걸까 기대가 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