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퇴근하는 기분으로 집에 돌아가는 길
이제 가을이 코끝으로 느껴진다.
피부에 닿는 공기는 한층 선선해져, 얇은 반팔티를 입고 있으면 작은 소름이 돋을 정도다.
이렇게 또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올해가 100일도 채 남지 않았다고 하니,
어느새 1년의 3분의 2가 지나버린 셈이다.
치열하게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가을이 되면 낙엽을 떨어뜨리는 나뭇가지처럼 마음이 쓸쓸해진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마음을 다잡게 된다.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듯이.
오늘 회의는 대표님인 왕바우까지 참석한 전체 회의였다.
오늘을 기점으로 추석 연휴가 시작되어,
나를 포함한 또치도 퇴근 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 부랴부랴 집에 미리 가져갈 짐들을 챙겨두고 출근을 했더랬다.
왕바우가 우리에게 추석 선물로
다향연에서 파는 ‘돌배계피차’를 건넸다.
카페쇼 때 마셔보고 반했던 차였는데, 딱 그걸 선물로 받아 무척 기뻤다.
우리는 보통 오전 10시에 모여 12시에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까지 아침을 거른 채 일을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왕바우가 함께 먹자며 커피와 토스트를 사 와서,
아침을 먹으며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머니플레이에 대해 꽤 구체적으로 잘 준비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대표님인 왕바우가 오자 관점이 달라지면서 다시 점검 해볼 수 있는 부분들이 생겼다.
덕분에 게임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생긴 것.
어느덧 시간이 흘러 12시.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어 회의 분위기가 조금 과열되고 있던 참이었는데
때마침 점심 시간이 되어 우리는 점심을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점심 때를 놓치면 끼니를 챙기기 어려워
우리는 비교적 간단한 면 요리를 골라
‘화정소바’로 향했다.
의령에서도 손에 꼽히는 맛집인 ‘화정소바’는 오늘도 여전히 웨이팅이 있었다.
저번에는 운 좋게 전화로 예약 후 방문한 거라 바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오늘은 예약 없이 방문한 터라 잠시 기다린 터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망고가 왕바우를 도우러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왔는데,
타이밍이 딱 맞게 그때 우리 차례가 되어
무사히 모두 함께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오늘 우리가 주문한 메뉴는
온소바, 들기름소바, 비빔소바, 그리고 돈가스.
오전에 먹은 토스트가 아직 소화디지 않아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역시 소바는 맛있었다.
국물 위주로 천천히, 맛있게 먹었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와서는
수작업이 필요한 부분을 정리하고,
오전 회의에서 나온 보완 사항들을 하나씩 톺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추석 전날이라 일찍 퇴근한 동생이 데리러 오기로 해서
그 차를 타고 집에 가기로 했는데,
그 전에 내가 맡은 일을 마무리해야 해서 마음이 불편했다.
“우리 그건 다 샀지?”
“그건 다 준비해뒀지?”
내가 여러 번 되묻자, 만듀가 웃으며 말했다.
“마음이 불편해서 그러는 거지?”
매 라운드마다 5개의 상회가
번갈아 진행할 미니게임은
적게는 500리치,
많게는 1000리치의 참가비를 내고 참여할 수 있다.
그 게임의 난이도가 적절한지,
또 돈을 딸 확률은 어느 정도인지
다시 한번 확인해봤다.
5개의 미니게임을 실제로 진행해보니
난이도를 조절해야 할 부분과 기준을 세워야 할 지점이 있었다.
그 부분들을 메모해가며 테스트를 이어갔다.
하루도 빠짐없이 무언가를 열심히 해온 것 같은데,
아직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남아 있다.
협찬으로 들어온 하리보 젤리와 물티슈를 선물 파우치에 넣어야 하고,
미니게임 안내 시계를 색칠해야 하며,
돈 파우치마다 설명서도 챙겨 넣어야 한다.
할 일은 많은데, 곧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자꾸 불편해진다.
몸은 분주한데, 마음은 자꾸 뒤를 돌아보는 듯하다.
일을 하다 보니 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밖으로 나가보니 차가 멀지 않은 골목길 앞에 서 있었다. 동생과 함께 짐을 가지러 사각사각 하우스로 향하는 길.
저번에 간식을 줬던 여러 마리 고양이 중 한 마리가
나무 테이블 위에 앉아 아주 귀엽게 나를 보고 있었다.
너무 예뻐서 가까이 가 쓰다듬고 싶었지만
그 마음은 고이 접어두기로 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데 이번엔 다른 고양이가 몸을 둥그렇게 말고 자고 있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고양이들이 많이 보인다.
나는 브런치 닉네임마저 ‘고양이’를 쓸 만큼 고양이를 좋아한다.
어렸을 때는 주인만 믿고 따르는 개를 더 좋아했던 것 같은데,
완두와 콩, 나물이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그 마음은 고양이 쪽으로 기울었다.
고양이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고양이는 애교가 없다’는 말이 얼마나 틀린지.
고양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확실히 알고,
그걸 아주 당당하게 표현한다.
그 당당함이 밉지 않고 오히려 사랑스러운 건
그 모습 자체가 ‘어여쁘기’ 때문일 것이다.
콩이와 나물이 이전에는,
길 위에서 마주치는 고양이들에게 캔 하나 사주고
무사하길 기원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는 집에서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지내다 보니
길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에게도 마음이 더 깊게 쓰인다.
그들이 행복하기를,
아프지 않기를,
미움 받지 않기를,
그리고 조금만 더 오래 살아주기를
그저 그렇게, 마음속으로 조용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