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일주일은 지난 것 같은데 4일째라니
9시부터 기본 일정이 시작되는 다른 날과는 달리
10시부터 강의가 시작되는 오늘.
그걸 믿고 막걸리를 먹기 시작했다가
잔뜩 취해버리고 말았다.
잔뜩 취했을 때의 가장 큰 단점이 있다면
내일이 없는 것처럼 술을 마신다는 것이고
내가 얼마나 취해있는지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매일 오전마다 엉망진창인 상태로 깨어나다니.
오랜만에 느껴보는 청춘의 기분이다.
나랑 늦게까지 술을 마신 연주는
아주 씩씩하게 일어나 아침 운동까지 끝마치고 왔다는데,
체력이 아주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나는
아침도 포기하고 쭉 자다가
특강 전 부랴부랴 일어나 씻고 나왔다.
이번 특강은 해양 쓰레기 관련 비영리법인인 디프다 제주 대표 변수빈님의 특강이었다.
디프다 제주는 제주 바다의 해양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청년 환경단체 및 해양 정화 봉사활동을 의미합니다. ‘디프다’는 ‘Deep & Freediving(깊이 잠수하기)’의 약자이자, ‘고래자리 별(Diphda, 적색거성)’을 뜻하며, ‘봉그다(줍다)’와 ‘플로깅(plogging)’의 합성어인 ‘봉그깅’ 캠페인과도 연결된다.
특강이 끝나고 12시부터 점심 시간.
아침마다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음에 매일 감사한 마음이 든다.
무엇보다 이런 풍경을 더 잘 감상할 수 있도록
벤치나 해먹 등을 센스 있게 배치해둔 것도 한몫하는 듯하다.
덕분에 다들 틈만 나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방에서 쉴 생각은 하지 않고,
밖으로 나와 제주의 일상 풍경을 즐기곤 한다.
오늘의 점심은 비빔밥!!!!
내게 좋아하는 음식을 물으면
첫 번째는 김밥, 두 번째는 비빔밥, 세 번째는 볶음밥이라고 대답하는데,
오늘은 그중 두 번째로 좋아하는 비빔밥이 나왔다.
1층 특강장 바로 옆에서 음식이 준비되어서인지
아침 특강을 듣던 중에도 참기름 냄새가 솔솔 났다.
아니나 다를까, 직접 무쳐낸 정성 가득한 나물들이 한가득이었다.
모든 나물이 싱겁지도 짜지도 않고 간이 딱 맞아서 너무 맛있었다.
함께 나온 건 떡국 같은 느낌의 수제비였는데,
비빔밥과 의외로 잘 어울려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늘 이렇게 맛있는 밥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오늘의 원래 일정은 ‘예래논짓물 해변’에서 물놀이를 하는 것이었지만,
쌀쌀한 가을 날씨 탓에 물놀이는 무리라는 의견이 많아
대신 ‘성이시돌 목장’으로 일정이 수정되었다.
나는 성이시돌 목장에 예전에 동생과 함께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평화로운 풍경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다시 방문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다 함께 차를 타고 성이시돌 목장으로 향하는 길.
가을임에도 경계가 뚜렷한 뭉게구름이 하늘에 가득했다.
컨디션만 좋았다면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좋은 날씨였을 텐데,
점심을 먹었음에도 숙취로 머리가 아파
우와, 예쁘다- 하고 사진을 찍은 뒤엔
계속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목장으로 향했다.
성이시돌 목장 주차장에 차를 대자마자 눈앞에 말들이 보였다.
예전에 성이시돌 목장을 방문했을 때도 날씨가 좋아 행복했는데,
오늘도 마찬가지로 하늘이 맑고 공기가 상쾌했다.
아무렇게나 찍어도 사진이 예쁘게 나올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내리자마자 보이는 말들에 진심인 사람들.
안쪽으로 들어가서 봐도 되는 걸,
초입부터 신기하다며 다 같이 한마음 한뜻으로 모여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귀여워서 그들을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푸른 들판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말이라니.
눈에도, 마음에도, 휴대폰에도 남기고 싶을 만하지. 암.
날씨가 화창한 탓일까.
아니면 성이시돌 목장이 주는 평화로움 탓일까.
뭘 어떻게 찍어도 그냥 동화속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성이시돌 목장에는
진한 우유맛이 살아있는 아이스크림과 커피,
감귤 당근 주스 같은 메뉴를 파는 작은 가게도 있다.
자연을 거닐며 잠시 힐링하고 싶다면,
이곳을 꼭 추천하고 싶다.
여긴 성이시돌 목장 안쪽에 있는 ‘마스터 밀크’라는 공간.
유유샌드나 치즈 같은 먹거리뿐 아니라,
파우치나 접시 같은 소품도 판매하고 있다.
마침 한정 프로모션으로
우유샌드 5개를 사면 20퍼센트 할인 이벤트를 진행 중이었다.
이럴 땐 단체 방문의 장점을 적극 활용해야지.
단톡에 소식을 알리고 함께 살 사람을 구했더니,
몇 명이 우르르 마스터 밀크로 몰려와 할인받고 구매했다.
사실 우유샌드를 사면서 받은 치즈가 내 스타일이라
더 사고 싶었지만, 일정이 남아 있어서 참았다.
다음에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그땐 꼭 치즈도 사야지.
제주 버킷 근처는 관광지가 아니라서,
바닷가를 코앞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유동인구나 상점이 많지 않다.
그래서 이렇게 평화로운 제주를 느낄 수 있다는 게 늘 기뻤다.
그런데 성이시돌 목장에 오고 보니, 역시 관광지는 관광지였다.
주차장에도, 화장실에도, 목장에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말은 즉슨
사람이 많아서 한 바퀴만 크게 둘러보고 다시 차에 탔다는 말이다. ㅎ
차에 타서 목격한 장면.
동기랑 정범오빠가 둘이서 오붓하게 데이트를 하고 있길래
멀리서 찍고 단톡에 올려줬다.
그다음으로 향한 곳은 ‘산양큰엉곶’이라는 곳.
다음 방문지로 산양큰엉곶을 추천해주셨는데,
성이시돌만 보고 돌아가면 아쉬울 것 같아 가겠다고 적극적으로 대답했다.
사실 어떤 곳인지도,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모른 채 왔지만,
결과적으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사진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귀를 기울이다가 찍은 것이다.
잠시 후 사랑을 듬뿍 받는 듯 윤기 흐르는 털을 가진 고양이가 보여 홀린 듯 다가갔다.
이내 주인으로 보이는 분이 나오자
고양이는 애교를 부리며 졸졸 따라다녔다.
그 모습을 보는데,
순간적으로 나물이가 너무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간단히 '산양큰엉곶'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산양큰엉곶은 곶자왈 지대로서 제주 4대 곶자왈인 한경 - 안덕 곶자왈에 속해있다고 한다.
'곶자왈'은 제주도만의 독특한 지질학적, 생태적 특서을 가지고 있는 제주 숲으로, 불규칙한 암괴지대에서 다양한 식생이 자라고 있다고 한다.
사실 여행의 팔할은 날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날씨가 좋으면 무엇을 하든, 그렇지 않을 때보다 행복할 확률이 높다.
제주에 온 이후 내내 맑은 날씨라,
이건 어쩌면 축복일지도 모르겠다.
2기 때는 비가 많이 와서 다들 힘들었다고 들었는데,
3기로 함께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장 예매를 하면 8천 원의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이 작은 숲에 뭐가 있길래 8천 원일까 궁금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서자마자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숲의 입구부터 끝까지 곳곳에 아기자기한 오브젝트들이 놓여 있어,
걷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마치 작은 요정들의 마을을 산책하는 기분이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사진은
작은 요정 집 같은 곳에 덩치 큰 영민이가 들어가는 모습이 웃겨 찍은 짤이다.
물론 영민이가 스스로 들어가고 싶어서 들어간 건 아니고,
문 앞을 기웃거리길래 “한번 들어가봐!” 하고 부추겼더니
착한 영민이는 진짜 문을 열고 들어갔다.ㅋㅋㅋ
사실 들어가는 것도, 나오는 것도 꽤 힘겨워 보였는데
우리의 부추김에 굳이 들어가 준 게 왠지 감동이었다.
(물론, 진심으로 우리를 위해 들어간 건 아니었겠지만.)
우리 프로그램이 끝나는 다음 주 금요일은 할로윈.
벌써 숲 곳곳에 할로윈 분위기가 물씬 나는 인형들이 세워져 있었다.
귀신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인형들 옆에는
작은 미니 카페가 하나 있었는데,
숲속에서 혼자 귀신 소리를 들으며 일해야 한다면
꽤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기서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친해지고 싶어서
아주 부지런히 다가가 말을 걸고 친해지고 있는데
그런 성격이 이럴 땐 참 좋다.
나는 이곳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친해지고 싶어서 부지런히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네고 있다.
이럴 때 보면 내 성격이 참 좋다 싶다.
평소엔 접점이 없어서 깊게 이야기해본 적 없던
은서와 윤영이와도 오늘은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많은 프로그램을 경험해봤지만,
이렇게 30명 넘는 인원이 함께하는 건 처음이라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내 세계를 조금 더 넓혀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처음 통성명을 할 때만 해도
평균 나이로 봤을 때 내가 좀 많은 편이라
혹시나 어색할까 걱정했는데,
막상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이라는 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결국 다 통하게 되는 법이니까. (…물론, 이건 나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길 바라며.)
숙소로 돌아와 잠깐 쉰 뒤 저녁을 먹었다.
한참을 걷고 난 뒤라 그런지, 오늘의 저녁은 유난히 꿀맛 같았다.
게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역국까지 곁들여져 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처음 음식을 받을 때는 양이 많아 보여
조금 기다렸다가 더 받을까 고민했지만,
뒤늦게 오는 친구들이 앉을 자리가 없어
그냥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밤이 되면 또 배고프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