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던 나는 방학마다 제주 본가에 내려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휴식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갈 때면 엄마는 언제나 나를 배웅해 주었다. 그런데 엄마의 배웅은 그때나 지금이나 참 특이한 구석이 있다. 엄마는 작별 인사를 하고 나서, 나를 끝까지 보지도 않고 뒤돌아서 가버리는 게 다반사다. 그래서 긴 줄에 서있곤 하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엄마의 뒷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데 나는 그런 엄마에게 하나도 섭섭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그 모습이 좋아 흐뭇하게 웃으며 바라본다. 엄마의 뒷모습은 어릴 적 남대문 시장에서 보았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뭣보다 즐거워 보였다. 그 뒷모습은 마치 "너는 너의 삶을 살아라. 나도 나의 삶을 살아갈 테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공항의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엄마의 뒷모습은 유난히 힘차고 행복해 보였다.
이제 엄마는 더 이상 돌덩이 같이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니지 않는다. 고양이 캐릭터가 그려진 귀여운 핸드폰 케이스에 신용카드를 끼워 넣고 다닌 후에는 아예 지갑조차 들고 다니지 않는다. 저녁에 함께 산책을 할 때면 엄마는 무릎이 아프다면서도 열심히 걷는다. 영차영차, 두 팔을 흔들며 여전히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엄마와 나란히 걸으며 옛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나는 귀를 기울이고, 그동안 내가 몰랐던, 엄마의 뒷모습에 숨겨졌던 비밀들을 알아간다. 그러다 어느새 엄마의 역사가 서서히 드러나면 나는 그 경이로운 역사를 가슴 깊이 담으며 따뜻한 엄마의 손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