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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kas Feb 22. 2021

이별 라섹

휘적휘적 썼읍니다

'기억에 남는 저녁식사'가 무색하게도 그 사람과의 만남은 끝이 나버리고 말았다. 

사랑의 확신을 조금 더 달라는 나의 요구에 그 사람은 '그렇게 할 자신이 없다'라고 대답해주었다. 


차이로 인한 문제가 드러났을 때 그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라도 보여주었으면 싶었지만, 자신이 없다는 그 사람의 말에,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본인의 이러한 태도에 내가 다치게 될 것 같다고 하는 그 사람의 말에 그만 할 말이 없어져버리고 말았다. 누군가와 만나 연애를 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서로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용기를 내고 일정 부분 감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그것이 그 사람의 마음의 크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더 붙잡을 생각도 포기하게 되었다. 


딱딱 떨어져 맞아야 하는 수학공식 같았던 그 사람의 마지막 이별 멘트들 역시 진부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래도 계속된 차 버림에서 비롯한 '차 버리기 매뉴얼 ver 1.0'이 있었던 것 같았고, 나름 상대방을 생각해서 만들어낸 것 같은 이별 문장들에 내 마음은 서걱서걱 베였다. 


그렇게 한 번의 통화로 인연은 끝나버렸다. 


-


그 이후로, 시간이 멈춘듯한 멍한 시간들을 보냈다. 


헤어지고 나서 별별 생각이 다 들던데, 그 사람의 전화를 받던 장소, 저번 만남에서 불러주지 못했던 노래, 이런 사소한 생각들을 하자니 힘이 들었다. 큰 마음이 박살난만큼 그 박살난 조각조각들 하나가 예전 추억이 되어서 내 마음을 아프게 찌르는 것 같았다. 그러한 세세한 추억 조각들을 떠올리고 회상하고 후회하다 보면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별 거 아니라고 스스로 다독이면서 그저 쉽게, '나는 그 사람 스타일이 아니었던 거지', '그냥 타이밍이 안 맞았을 뿐이야'라고만 뭉뚱그려서 생각해버리면 조금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으니, 그 디테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이별에서 오는 아픔은 조금 더 무뎌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냥 그랬던 것뿐이었고 나는 그 상황에서 할 만큼 했을 뿐이다."

"다만 한 대 쳐 맞고 쓰러진 것일 뿐이고, 나는 다시 일어나면 된다."


-


이별을 겪은 사람들은 어떻게 아픔을 극복할까?


폭식을 하거나 새로운 인연을 만나거나 일에 집중을 하는 등의 다양한 방식들이 있겠지만, 나는 라섹 수술을 했다. 여차저차 귀찮기도 하고 아프다기도 해서 지금까지 계속 미뤄왔던 수술이었는데, 그냥 저질러버리고 말았다.


왜 갑자기 라섹 수술을 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라섹 수술 후 회복 기간 동안 고통이 상당해서 엄청 눈물을 뺀다고 하던데, 이 참에 실컷 울자 싶었던 것 같다. 고통을 핑계로 엉엉 울어버리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한번 감정을 털어낸다면 조금은 나아질 듯 싶었다. 


강남 모처의 안과 수술대에 누워서 떠오르는 건, 기계의 레이저가 내 눈을 지지면서도 떠오르는 건 그 사람 얼굴이었다.


'그렇게 내가 별로였나'


'왜 노력하지 않았을까'


'좀 더 이야기해볼걸'


오징어 굽는 냄새를 풍기며 각막을 태워버리는 레이저가 그대로 뇌까지 뚫어서 추억을 관장하는 부분까지 지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는 그 사람을 만날 일은 없겠구나'라는 현실을 깨닫고 너무 슬퍼져 버렸다. 그렇게 수술대에 누워서 울었다. 물론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분들은 모르겠지. 아파서 울겠거니 싶겠지.


-


수술 회복 기간은 내 예상과는 달랐다. 고고하게 어두컴컴한 방 안에 홀로 앉아, 카 더 가든이나 잔나비 노래를 들으며 지난 추억들을 되새기며 울고 싶었으나 24시간 화생방을 하는 것 같은 쓰라림에다가 온 신경이 눈에 가 있으니 별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더군다나, 아픔에 눈물을 줄줄 흘리고 나니, 막상 슬퍼서 울려고 할 때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심지어, 지나간 편지들과 사진들을 보다가 울컥하려 할 때쯤 친구에게서 온 '탈모약 미녹시딜 써봤냐'라는 카톡은 슬픈 상황조차도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버렸다. 이별조차도 스타일리시할 수 없는 내 꼴이 우스웠다. 이러한 회복 기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먹고 자고 친구들과 통화하고, 누나가 추천해준 한국사 강의를 귀로 들으며, 이전 인연에게 선물하려던 초콜릿을 씹어먹는 것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이 지나고 고통은 잦아들었고,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라섹 수술도, 사람과의 만남도 그런 것 같다. 


과정의 힘듦을 생각하고 회피하면 그냥 그런 거겠지라고 환멸을 갖게 되면서 지레 포기하게 되겠지만 그런 힘듦을 무릅쓰고 다시 도전하고 또 다치고 그리고 이겨낸다면 나는 강해질 것이고 삶은 풍요로워질 것이다. 


이번 이별의 아픔을 겪으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 중 하나는, 마음을 크게 다쳤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또 진심으로 다가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여자 만나는 것 역시 한동안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수술을 받고 돌아오는 당일, 지하철 역사 내에 걸려있는 쿠팡 이츠 광고 속 한소희를 한동안 보면서 저런 사람과 만나게 해 준다면 수술 한 5번도 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 보면 기우에 불과했던 것 같기도 하다. 


각막의 상처와 마음의 상처가 잘 아물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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